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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야마 “내 담화 계승했다는 느낌이 없다”

중앙일보 2015.08.15 01:27 종합 4면 지면보기
아베 신조 총리의 전후 70년 담화에 대해 일본 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1995년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을 공식 사죄하며 통절한 반성의 뜻을 담아 전후 50년 담화를 발표했던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전 총리는 14일 밤 회견에서 “무라야마 담화와는 내용이 다르다는 인상이어서 담화를 계승했다는 느낌은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단어에 신경을 쓰고 꽤 고생해 만든 문장인데 초점이 흐려져 도무지 알 수 없는 내용”이라고 지적했다.


일본 내에서도 비판 목소리
야당 “자신의 언어로 안해 기만 가득”
민단 “한·일 관계 개선 노력에 찬물”

 무라야마 전 총리는 또 “100년 이상 전에 서방 국가의 식민지가 확산되고 있었다는 내용을 담는 등 식민지 지배와 침략의 의미를 보편화했다”며 “아베 총리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을 완곡하게 에둘러 희석시켰을 뿐”이라고 질타했다.



 학자와 전직 외교관 모임인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발전시키는 모임’은 “핵심을 피하려는 태도가 엿보인다”고 평가했다. 이 단체는 도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과거 대전(大戰)을 침략이라고 확실히 말하지 않고 달아났다”며 “무라야먀 담화의 네 가지 핵심 단어인 식민지 지배, 침략, 통절한 반성, 사죄를 어떻게든 빠뜨리지 않고 넣으려고만 한 괴로운 담화였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헌법은 가치관이나 체제의 차이를 넘어 신뢰 관계를 만들 것을 요구하고 있고 무라야마 담화도 그것을 답습했다. 그러나 이번 담화에서는 그런 것을 읽어 낼 수 없으며 위구(危懼·염려하고 두려워함)를 느낀다”고 덧붙였다.



 아베 담화에 명확한 사죄의 표현을 포함할 것을 요구해 온 야당도 강하게 반발했다.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민주당 대표는 “사죄의 표현은 인용 형태로 말했을 뿐”이라며 “아베 총리의 생각을 확실히 말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시이 가즈오(志位和夫) 일본 공산당 위원장은 “총리 자신의 언어로 말하지 않는 기만으로 가득 찬 담화였다”고 혹평했다. 그는 이어 “무라야마 담화의 역사인식은 전혀 이야기되지 않았고 ‘반성’과 ‘사죄’도 과거의 역대 정권이 표명했다는 사실만 언급했다”고 했다.



 반면 다니가키 사다카즈(谷垣禎一) 자민당 간사장은 “앞선 대전(大戰)에서 일본이 실패한 원인과 전후 그 실패를 극복하며 노력한 성과를 분석했다”며 “앞으로 일본이 취해야 할 방향성도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연립 여당인 공명당의 야마구치 나쓰오(山口那津男) 대표도 “침략이나 사죄 등의 키워드를 써서 역대 내각의 입장을 계승해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재일본 한국인 단체인 ‘재일본대한민국민단(재일민단)’은 이날 성명을 통해 “과거 담화에 비해 후퇴한 인상을 부인할 수 없다”고 평가했다. 특히 담화 내용 중 ‘미래 세대가 사죄를 계속 숙명처럼 짊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고 한 부분에 대해선 “아베 총리 자신의 신조를 전면에 내세웠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번 담화의 내용들은 식민지 피해를 본 한국이 받아들이기 어렵고 한·일 관계 개선 노력에도 찬물을 끼얹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여성의 존엄이란 애매한 표현을 써서는 안 됐다”고 덧붙였다. 재일민단 홍보 담당자는 “일본 정부가 사죄와 반성을 한다면 우선 헤이트스피치(특정 민족·인종에 대한 혐오 발언)부터 법적으로 규제해야 한다”며 “올해는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인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도쿄=이정헌 특파원 jhleehop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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