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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세대에 사죄 숙명 지워선 안돼” 국내용 발언도

중앙일보 2015.08.15 01:26 종합 4면 지면보기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14일 전후 70년 담화는 예상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 보수 근본주의자 아베의 역사관·세계관이 짙게 투영되면서 일본 내각의 역사 인식이 크게 후퇴했다. 쟁점이 됐던 것은 과거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 전쟁, 이에 대한 반성과 사죄 문제였다. 이 넷은 1995년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총리의 전후 50년 담화와 2005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전후 60년 담화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들이다. 아베 담화는 이들 표현을 모두 담았지만 아베 내각의 이름으로 반성과 사죄를 언급하지 않았다. 역내 내각의 방침을 계승한다고 하는 간접화법에 그쳤다. 동시에 전후 세대에게 사죄를 계속할 숙명을 지워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이는 전후 세대의 사죄에 대한 거부감이 강해지고 있는 일본 국내 여론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키워드로 본 아베식 3인칭 화법
침략·식민지 지배…남말하듯 “영원히 결별해야”
위안부 문제…직접 언급 않고 “여성 존엄 상처”
러일전쟁…“아시아 국가에 용기” 일방적 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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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민지 지배와 침략은 세계사의 흐름 속에서 언급됐다. 국제 분쟁 해결 수단으로서의 침략 금지와 더불어 “식민지 지배로부터 영원히 결별하고 모든 민족의 자결권이 존중되는 세계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는 내용이 들어갔다. 지난 4월의 인도네시아 반둥 정상회의 참석 때의 연설과 유사하다. 이는 ‘침략의 정의는 정해져 있지 않다”고 한 아베 총리 발언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후 70년을 총괄하는 담화의 진정성이 의심을 받는 이유다. 일본의 첫 전후 세대 총리인 아베가 전전(戰前)보다 전후(戰後)에 초점을 맞춘 셈이다. 군 위안부 문제는 직접 언급하지 않고 “전시하에 많은 여성들의 존엄과 명예가 깊은 상처를 입었다”고 언급했다. 지지통신은 “아베 내각의 입장을 직접 설명하는 기술이 모자라 ‘역사 수정주의’의 우려를 불식시켰는지는 불투명하다”고 분석했다.



 러일전쟁을 미화한 것은 아베 역사관의 일단을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러일전쟁 미화는 일본 우익 교과서의 단골 주제이기도 하다. 기미야 다다시(木宮正史) 도쿄대 교수는 “러일전쟁이 아시아·아프리카 국가에 용기를 줬다고 했는데, 사실 러일전쟁의 결과 일본의 한반도 식민지 지배가 이뤄졌다고 할 수 있다”며 “해석이 너무 일면적”이라고 말했다. 담화는 전반적으로 무라야마·고노 담화와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 그런 만큼 아베 담화는 역사 인식에서도 아베의 숙원인 ‘전후 체제의 탈피’를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베 내각의 역사인식 후퇴는 일본 사회 전반의 보수적 흐름과 맞물려 있다. 중·일 간 GDP 역전과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토 분쟁, 한·일 관계 악화가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실제 일본인 절반 이상이 제2차 세계대전에 관해 반복해 사과하는 것에 부정적인 의견을 지닌 것으로 조사됐다. 마이니치(每日)신문이 이달 8∼9일 실시한 전화 여론조사 결과 일본이 미국이나 중국 등과 벌인 전쟁(2차대전)에 대해 이웃 여러 국가에 충분히 사죄했다는 의견이 44%였다. 사죄할 필요가 없다는 답변도 13%나 됐다. 사죄가 불충분하다는 견해는 31%였다.



  이번 아베 담화의 파장은 있겠지만 동북아에 아베 정권 출범 초와 같은 역사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은 커보이지 않는다. 히라이 히사시(平井久志) 리쓰메이칸대 객원 교수는 “아베 총리가 과거 무라야마 담화의 흐름을 크게 부정하지 않았던 것은 ‘진의’라기보다는 일본 시민사회의 압력과 한국·중국 등 아시아 각국의 관심 표명의 결과”라고 말했다.



 동북아는 광복과 패전·승전의 70주년이 빚어내는 역사 인식이 교차하지만 현실주의 외교에 더 무게가 쏠려 있는 분위기다. 한국은 일본에 과거사 직시와 군 위안부 문제 해결에 대한 성의 있는 조치를 촉구하면서도 전반적 대일 관계 개선에 나서고 있다. 중국의 실리 외교 경향은 뚜렷하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해 11월과 올 4월 두 차례에 걸쳐 아베 총리와 회담했다. 9월 3일 전승절 기념행사 직후 아베 총리가 방중해 양국 정상회담을 가질 가능성도 있다. 소에야 요시히데(添谷芳秀) 게이오대 교수는 “중국은 일정 비판은 하겠지만 전체적으로 억제된 내용이 될 가능성이 크다”며 “현재 시진핑 체제가 근린제국과의 관계를 안정시키는 것을 전략적인 우선사항으로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가장 어려운 것은 한·일 관계”라며 “아베 담화에는 아베 총리 나름의 ‘타협’도 포함돼 있지만 아베 총리의 타협과 한국의 기대 사이에는 아직 큰 간극이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도쿄=오영환 특파원 hwas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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