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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이 만난 사람] 서대문형무소 ‘무릎 사죄’ 하토야마 전 일본 총리

중앙일보 2015.08.15 00:45 종합 18면 지면보기
하토야마 전 총리는 일본 민주당의 잇따른 선거 패인에 대해 “내부가 분열돼 있고 정책도 자민당과 똑같게 됐다. ‘그렇다면 자민당에 맡기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오종택 기자]
“일본의 가장 존엄한 순간” “의외다” “아베 총리와는 딴판이다”.


나처럼 남도 사랑하는 우애사상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의 밑바탕

 유관순 열사가 투옥됐던 서대문형무소 여옥사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한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68) 전 일본 총리의 모습에 한국뿐 아니라 중국 국민과 언론도 열광했다. 폴란드 바르샤바의 유대인 희생자 위령탑 앞에 무릎 꿇었던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를 떠올리게 했다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 반면 일본 언론은 관련 사실만 전해 온도차를 보였다.



 자국보다 이웃 국가에서 더 환대받은 하토야마 전 총리의 ‘무릎 사죄’는 과거사 문제로 헝클어진 한·중·일 관계를 투영하는 ‘불편한 진실’이다. 전직 총리로서 정치적 부담을 감내하지 않고선 하기 어려운 행동이었다. 여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위한 돌출 행동으로만 치부하기 어려운 이유다. 향후 한·중·일 관계에서 하토야마 전 총리의 ‘무릎 사죄’는 어떤 반향을 불러올 것인가. 그가 총리 재직 시절부터 일관되게 주창해오고 있는 동아시아 평화 공동체 구상은 실현될 수 있을까. 꼬리를 무는 궁금증을 안고 12일 오후 하토야마 전 총리를 만났다. 그는 막 서대문형무소 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직후여서인지 다소 상기된 표정이었다. 그는 “독립 만세운동을 했던 많은 사람이 고문당하고 죽었다. 열여덟 살에 돌아가신 유관순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아팠다”며 “식민통치 때 저질러진 일에 대해 사죄드리고 싶었다”고 했다.



 - 아베 총리가 이끄는 일본은 동아시아 평화와는 정반대의 길로 가고 있다.



 “아베 총리의 ‘적극 평화주의’라는 말에도 평화가 들어가 있지만 군사력을 강화해 평화를 만들자는 것은 목적과 수단이 맞지 않는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나도 걱정을 하고 있다. (평화)헌법 위반을 하면서 안보를 지켜나가겠다는 데 대해 일본 국민들이 위협을 느끼고 있다. 여태까지 움직이지 않았던 국민들, 젊은 사람부터 나이든 사람까지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그런 의미에서 민주주의가 더 육성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 야당과 시민들의 반대 속에 안보 관련 법안 10개가 통과됐다. 한국 국민은 일본이 우경화·군사대국화의 길로 가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그런 위협을 나도 같이 느끼고 있다. 미국을 추종하는 형태의, 국제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전쟁 해도 된다는 것은 일본 헌법에도 위반되는 것이다. 아베 총리에 대한 일본 국민의 지지율도 계속 떨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지지하지 않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참의원에서 법안 통과를 강행하면 지지율은 더 떨어질 것이다. 한국 국민도 일본의 많은 사람이 걱정하고 반대하고 있다는 걸 이해해줬으면 한다.”



 - ‘동아시아 평화공동체’가 가능할까.



 “동아시아 평화가 이뤄져야 세계 평화가 가능해진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런 상태가 안 되고 있다. 특히 한·일 관계가 안 좋으니까 일·중 관계도 안 좋다. 일본의 정치 지도자들이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는데 군사력을 높이는 게 아니라 외교를 통해 협력을 해나가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유럽에서 유럽연합(EU)이 만들어진 것처럼 똑같은 공동체를 아시아에서 만드는 것이 꿈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일·한·중이 사이 좋게 되기 위한 노력을 지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정치 명문가의 자제다. ‘일본의 케네디가(家)’로 불리는 하토야마가(家)는 4대째 정치를 이어오면서 2명의 총리를 냈다. 증조부인 하토야마 가즈오는 1890년대 중의원 의장을 지낸 제국의회의 핵심 인물이다. 자유민주당과 민주당을 창당한 조부 하토야마 이치로(鳩山一郞)는 총리를 세차례 지냈다. 아버지는 하토야마 이이치로 전 외무장관이며, 자민당 소속인 하토야마 구니오(鳩山邦夫·67) 중의원이 친동생이다.



 진보 정치인으로 분류되는 하토야마 전 총리는 1986년 자민당 간판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자민당 내에 ‘유토피아 정치 연구회’라는 모임을 만들어 리크루트 뇌물수수 사건 같은 당내 비리를 폭로하는 등 쇄신 정풍운동을 이끌었다. 이후 쇄신파와 함께 자민당을 탈당, 신당 사키가케를 결성했고 96년엔 간 나오토(管直人) 전 총리 등과 함께 민주당에 들어가 간사장을 맡았다. 2009년 총선에서 압승하면서 54년 집권 자민당 시대를 마감하고 민주당으로 정권교체에 성공한 후 첫 총리(2009년 9월~2010년 6월)를 지냈다. 국수주의·보수적 색채가 짙은 일본 정계에서 서구식 리버럴리즘 성향이 강한 하토야마 전 총리가 독자적인 진보 노선을 개척할 수 있었던 데는 조부의 영향이 컸다. 하토야마 이치로 전 총리가 심취했던 오스트리아 정치인 리처드 니콜라우스 폰 쿠덴호프 칼레르기의 『전체주의 국가 대 인간(Totalitarian State Against Man)』이란 책이 모티브가 됐다.



지난 12일 하토야마 전 총리가 서대문형무소를 찾아 유관순 열사가 투옥됐던 여옥사 ‘민족의 혼 그릇’ 앞에서 무릎 꿇고 사죄하는 모습.
  - 할아버지의 가르침은 무엇이었나.



 “초등학교 6학년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직접적 영향을 받았다기보다 할아버지가 번역한 칼레르기의 책을 읽으면서 사고하는 방법을 배웠다. 할아버지는 은퇴 후 집 베란다에서 서예를 하곤 했는데 ‘우애(友愛)’라는 글을 쓰셨고 쓴 글을 내게 주기도 하셨는데 그게 인상에 남는다. 내가 생각하는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의 원점도 ‘우애정치’다. 우애 철학은 EU 창시자인 칼레르기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 정치와 우애는 잘 어울리지 않는 개념 같다. 우애 사상의 핵심은 무엇인가.



 “자기를 사랑하는 것처럼 상대방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의 존엄을 제대로 가지려면 상대방의 존엄성도 지켜줘야 하듯이 정치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 하토야마 전 총리는 과거 ‘나의 정치철학’이란 제목으로 월간지에 이런 글을 기고한 적이 있다.



 “우애가 없는 자유는 무정부 상태의 혼란을 부르고 (우애가 없는) 평등은 폭정을 부른다. 평등만을 추구하는 전체주의도, 방종에 빠진 자본주의도 인간의 존엄성을 손상시켜 본래 목적이어야 할 인간을 수단으로 전락시킨다. 자유와 평등이 중요하지만 근본주의에 빠지면 그것이 가져오는 참화를 헤아릴 수 없다. 자유와 평등이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할 수 없게 균형을 도모하는 이념이 우애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정치 스타일 못지않게 개인 생활도 리버럴한 편이다. 가문 대대로 도쿄대 법학부를 나왔지만 그는 만화에 흠뻑 빠져 “엔지니어링이 대세”라며 도쿄대 공학부에 입학했다. 스탠퍼드대에서 공학 박사과정을 마쳤다. 장난기 어린 기행을 많이 해 별명이 ‘우주인’이다. 지난 1월엔 정·재계 인사들이 기획한 뮤지컬 ‘Waist Size Story’에 여장 차림으로 출연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한류팬인 부인 미유키 여사는 여성 가극단인 다카라즈카 극단 배우 출신이다. 그는 별명에 대한 질문에 “우주인이라고 불리는 건 내 자랑이다. 지구인보다 우주인이 더 넓지 않나”라고 큰 웃음을 지었다.



 - 어릴 적부터 정치인을 꿈꿨나.



 “어릴 땐 전혀 정치할 생각이 없었고 하고 싶지 않았다. 정치는 동생이 뒤를 잇는다고 얘기해서 저는 안심하고 공학 분야에서 일을 하자고 생각했다. 미국에 유학하면서 생각이 크게 달라졌다.”



 - 그때 무슨 일이 있었나.



 “미국에서 일본을 보면서 진정한 애국심이 뭔지를 배웠다. 당시 일본은 경제는 성장했지만 경제 이외엔 평가를 못 받고 있었고 정치적으론 존재감이 없었다. 일본 사람으로서 일본을 사랑한다는 소극적인 데서 벗어나 좀 더 적극적으로 일본이란 나라를 존엄성 있는 나라, 정치적 의미에서도 세계로부터 존경받을 수 있는 나라로 만들어야 되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때 정치를 해야겠다고 결심했고 그걸 지지해준 사람이 어머니와 아내다.”



 모친 야스코(2013년 작고) 여사는 하토야마 전 총리의 정치 멘토였다. 세계적인 타이어업체 브리지스톤 창업자인 이시바시 쇼지로(石橋正二郞)의 장녀로 민주당 창당 당시 21억 엔을 기부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 9개월 만에 총리직에서 하차했다. 아쉬움은 없나.



 “많은 사람이 내게 화를 내고 있다. 오키나와 현민에게 후텐마 미군기지 이전을 약속했는데 안타깝게도 배반한 결과가 됐고 어머니로부터 받은 정치자금의 세금 문제가 있었다. 나로 인해 참의원 선거에서 지면 민주당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게 될 것 같아 일부러 사퇴했다. 후임인 간 나오토 총리가 생각했던 이상으로 소비세 인상을 들고 나와 결과적으로 민주당의 정책이 아주 망가져버렸다. 그게 유감스럽다.”



 - 정치를 재개할 것인가.



 “그런 말을 주변에서 많이 한다. 민주당과 사민당, 오자와 이치로의 생활정치당 등이 있지만 너무 힘이 없다. 야당을 그냥 뭉쳐선 국민 지지를 받을 수 없다. 아베 정권에 대해 제대로 반대할 수 있는 보수적인 리버럴의 정치 흐름을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 안에 내가 들어가면 미디어가 공격할 것이다. 협력하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지만 정치가로 돌아가는 건 신중하게 생각해보려 한다.”



 - 새로운 흐름을 만드는 게 가능할까.



 “딱히 ‘안철수(의원)’를 말하는 건 아니지만 정치가가 아니더라도 제대로 반대 의견을 펼 수 있고 국민의 지지를 받는 사람이 나오는 게 일본에서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글=이정민 정치·국제 에디터 jmlee@joongang.co.kr

사진=오종택 기자



[S BOX] “내가 도쿄 한식당 응원단장” … 한식 사랑 각별



하토야마 전 총리 내외는 한국 음식을 즐기고 한국 드라마에 푹 빠져 있는 한류팬이다. 총리 재직 때 드라마 ‘이산’에서 정조대왕으로 나왔던 배우 이서진을 집으로 초대해 화제가 됐었다. “최근엔 조선통신사를 주제로 한 영화를 봤다”는 그는 “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 가까운 친구 같은 친근감이 든다”고 말했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자신을 도쿄 아카사카(赤坂)의 한식당 ‘옹가네’의 응원단장이라고 소개하며 자필 사인이 담긴 명함 한 장을 기자에게 건네줬다. “그걸 갖고 가면 음료수 1잔과 일품요리를 무료로 먹을 수 있다”는 설명을 곁들였다. 명함 앞면엔 자신의 이름이, 뒷면엔 ‘응원단장특별초대장’이란 글귀가 적혀 있었다. 그의 한식 사랑과 유쾌한 성격이 드러난다.



 하토야마 전 총리의 유머감각을 보여주는 일화가 하나 더 있다. 부인 미유키 여사가 전 남편과 이혼하고 자신과 결혼한 것을 빗대 지인들에게 “다른 사람들은 미혼 여성들만을 대상으로 아내를 고르지만 나는 이 세상 모든 여자 중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고 말한 게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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