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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문영의 호모디지쿠스] 트래픽 싸움, 응원 대결, 저주 … 한·일 네티즌 사이버대전 20년

중앙일보 2015.08.15 00:28 종합 22면 지면보기
2001~2009년 네이버가 운영했던 ‘인조이재팬’. 양국 네티즌 사이의 사이버 전쟁이 치열했다. [사진 나무위키]
한·일 간의 아픈 역사는 침략전쟁에 대한 사과, 독도 영유권 문제, 위안부 사죄 및 피해 보상 등 정치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감정적 갈등이 계속돼 왔다. 특히 인터넷이 연결되면서 양국 네티즌들은 온라인을 통해 쉽게 접촉하게 되었고, 온라인에서 이런 대립은 기술 발전과 함께 다양한 사건을 만들어왔다.


‘간바레 닛폰’ 등 서로 격려도

 인터넷이 생기기 전인 1990년대에는 PC통신에서 주로 한·일 관계를 다룬 텍스트 중심의 소설류 콘텐트가 유행했다. 대표적인 것이 ‘바이러스 임진왜란’ ‘데프콘’ 같은 PC통신 소설이었다. ‘바이러스 임진왜란’은 우리나라가 통일이 되고 세계 강국이 되어 일본과 전쟁을 벌인다는 내용의 SF소설이었다.



 한창 초고속 인터넷망이 깔리고 인터넷이 대중적으로 성장하던 2004년에는 한국의 디시인사이드(dcinside)와 일본의 2ch 등이 트래픽 전쟁을 일으킨 사건이 있었다. 이른바 ‘사이버 임진왜란’이었다. 서로 상대방 사이트에 감당할 수 없는 트래픽을 발생시켜 서버를 다운되도록 하는 이 싸움은 얼핏 초등학교 운동회 때 콩주머니를 던져 상대 쪽 바구니를 터뜨리는 경기를 연상케 한다. 디도스(DDos·분산서비스거부)와 같은 기술적인 트래픽 위협 방법을 몰랐던 당시에는 한·일번역기를 돌려가며 서로 상대의 전략을 분석하고 공격타점과 시간을 골랐다.



 그 후 TV에서만 보여주던 국제경기가 인터넷으로 실시간 중계될 수 있는 시대가 되자, 이제 경기를 보면서 바로 반응을 쏟아낼 수 있게 됐다. 이때는 스포츠 분야에서 한·일 간의 대결과 응원이 게시판을 뜨겁게 달구었다.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회에 출전한 일본의 이치로 선수는 “앞으로 30년은 일본을 넘을 수 없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발언을 했고 우리나라 네티즌들은 즉각 ‘입치료’라는 별명을 만들어 이 별명이 인터넷을 휩쓸기도 했다.



 김연아 선수와 아사다 마오 두 라이벌 피겨선수가 대결을 벌이던 2010년 밴쿠버 겨울올림픽 전후 시기에는 더 강력해진 컴퓨터 성능으로 각종 동영상을 바로 편집하고 전송할 수 있는 수준이 됐다. 그 결과 한·일 네티즌들은 서로 상대 선수의 표정, 각종 CF 장면, 연기 장면의 영상 편집, 패러디 등을 쏟아내며 격하게 대립했다. 단순 트래픽의 양으로 싸움을 하던 시기가 패러디 및 각종 분석된 이미지, 영상 콘텐트로 바뀐 것이다.



 한·일 간의 다양한 대립 사이에는 서로 ‘나라 망신’이라고 여겨지는 사건까지 생기기도 했다. 한국의 일부 여성이 일본에서 성매매를 하다가 체포된 사건이 알려져 국내 네티즌들의 분노가 인터넷을 뒤흔들더니 일본에서는 한국 네티즌을 사칭한 일본인이 일본 가코 공주에게 위해를 가하겠다는 자작극까지 벌여 일본 네티즌들이 ‘배신자’ ‘일본 전체에 대한 범죄’라며 개탄하기도 했다.



 최근 아베 총리가 일본의 과거사 부정과 군사대국화의 의도를 뚜렷이 한 뒤 한·일 네티즌들의 대립은 단순히 스포츠를 통한 애국심 대결 수준이 아닌 경제와 사회 수준의 저주로 심화되었다. 일본 네티즌들은 ‘한국 경제가 일본처럼 된다’는 보도에 “일본은 복지와 개인 자산, 국가 채권에서 한국과 규모가 다르다”며 “한국은 무너지면 일본처럼 되는 것이 아니라 북한처럼 망할 것”이라는 조롱을 퍼붓기도 했다. 한국 네티즌들도 “일본이 방사능 누출 사고로 이제 더 이상 살 수 없는 나라가 되고 있다”며 일본의 잦은 지진사고 소식에 “일본에서 진도 7 이상 사고 아니면 보도하지 마라”며 심지어 “지진아, 힘내”라는 저주를 보내기도 했다. 며칠 전에는 일본 디즈니 트위터 계정이 “a very merry Unbirthday to you(생일이 아닌 일상을 축하한다)”라는 내용을 내보냈는데 이날이 하필 원폭이 투하된 날이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팻맨(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 이름) 떨어진 경사스러운 날” 등 고소하다는 댓글이 줄을 이었다.



 물론 한·일 네티즌들이 20년 인터넷 기술이 발전하는 동안 서로 싸움만 일삼은 것은 아니다. 특히 우리 네티즌들은 ‘해외에 더 많은 유학생을 보내놓고도 노벨상 수상자가 없다’며 과학기술로 일본을 배우고 이겨나가야 한다는 성찰 운동을 벌이기도 했고, 동일본 대지진 사건 때 ‘간바레 닛폰’을 외치며 일본을 격려하고 성금까지 보내 일본인들이 크게 감동하기도 했다. 넷우익과 혐한 등 갈수록 우경화하는 일본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지만 양심적인 일본의 지식인과 네티즌들 목소리도 온라인에서 꾸준하다. 광복 70주년에는 한·일 인터넷 싸움 20년이 담겨 있기도 하다.



임문영 인터넷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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