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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오디세이 릴레이 기고] (10) 당장 압록강 건너가 북한 구호활동 하고 싶다

중앙일보 2015.08.13 18:11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 랴오닝(遼寧)성 단둥(丹東)에서 본 북한. 강 위를 떠가는 북한 선박 뒤로 신의주 시가가 보인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릴레이 기고] 한비야 한비야 국제구호전문가
왕가뭄 들어 수십만명 굶어 죽게 생겼는데
2007년 대북지원 4400억…지금은 100억대

중국과 북한 사이를 무심히 흐르는 압록강은 가뭄으로 강폭이 좁을 대로 좁아져 있었다. 단동에서 배를 타고 강을 거슬러 오르자 신의주가 손에 잡힐 듯 가까웠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압록강 단교 위를 걷고 있자니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

‘도대체 언제까지 안타까워만 할 건가?’

벌써 몇 번째인가 말이다. 세계일주 중 두만강변 도문에서, 국토종단 중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해안 일주 중 강화도 철산리에서 지금처럼 북한이 빤히 보이는 곳에서 안타까워한 게. 수 십 년간 반복되는 이런 감정이 이젠 지겹기까지 하다. 그래서 통일에 대해 시큰둥하거나 냉소적인 반응, 당연히 이해하고 깊이 공감한다. 그래도 유유히 흐르는 압록강 위에서 한 번 더 생각해본다. 멀게만 느껴지는 평화통일을 위해 내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정말 하나도 없는 걸까?

나는 15년째 국제 구호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을 시작으로 아프리카, 중남미, 아시아 그리고 며칠 후 떠날 터키 남부 시리아 난민촌 현장에서 수십만 명의 재난민들에게 물, 식량, 의료, 피난처를 지원하며 보호하고 있다. 전 세계의 긴박한 현장에서 구호 식량과 의약품을 나눠줄 때마다 늘 마음 한편이 아리다.

“지금 북한도 누군가 들어가서 도와야 하는데... 우리 집 앞가림도 못하면서 내가 여기서 이래도 되는 건가?”

이건 단지 우리 아버지 고향이 함경도여서가 아니다. 북한은 긴급구호 상황 지표로 볼 때 명백한 구호현장이기 때문이다. 국제사회는 5세 미만 아이 중 신장 대비 체중 비율이 80%인 어린이가 전체의 10% 이상일 때, 1인당 하루 섭취량이 2,100킬로칼로리 미만일 때 등등을 긴급상황으로 규정하고, 이런 지역에 즉각적이며 조건없는 인도적 지원을 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북한은 식량부족률, 영유아 영양실조율 등 거의 모든 면에서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올해는 가뭄으로 더욱 그렇다. 여기 오기 직전에 듣기로는 북에도 왕가뭄이 들어 2주일 내로 비가 안 오면 1990년대 중반 아사자만 33만여 명을 냈던 ‘고난의 행군’ 때의 식량생산량에도 못 미칠 거라고 했다.

식량 상황이 이 정도로 심각하면 UN 및 공여국 등은 인도적 지원책을 마련하고 즉각 실행에 옮겨야 마땅하다. 그런데 국제사회는 조용하기만 하다. 구호자금과 인력과 정보가 없어서가 아니다. 북한과 주변 국가의 얽히고설킨 정치적 상황 때문이다. 수십만명이 굶어죽게 생겼는데도 말이다.

남 얘기 할 것도 없다. 우리 정부도 정권에 따라 소위 퍼주기와 안 주기를 하고 있지 않은가? 5년 전 미국에서 인도적 지원학을 공부할 때 깜짝 놀랐다. 정치적 상황에 따라 인도적 지원이 가장 크게 좌지우지되는 현장이 바로 북한으로, 이 분야의 대학원생과 학자들은 가장 바람직하지 않은 케이스로 한국과 미국 등의 대북 지원정책을 수없이 연구, 발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7년 우리나라 대북 지원 총액은 약 4천 4백억 원이었는데, 2011년부터는 100억 원대로 내려갔다. 북한 상황은 변한 게 없는데 지원금은 무려 3,40배 줄어든 거다. 지난 3년간 UN 중앙긴급대응기금 자문위원으로 일하면서 보니 UN의 대북지원액도 해마다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국제구호 전문가로, 이산가족의 한 사람으로 안타깝고도 안타깝다. 누군가 북한으로 구호활동을 가야 한다면 내가 기꺼이 가고 싶다. 갈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이 압록강을 건너고 싶다. 가서 그동안 세계 재난 현장에서 익힌 경험과 이 뜨거운 열정을 ‘우리 집 사람’ 살리는 데 몽땅 쏟아 붓고 싶다.

우리나라 대북지원 단체들도 나와 같은 생각일 거다. 물론 정부는 세금으로 대북협력을 하는 만큼 국민 정서와 합의가 중요하다. 그러나 정치적 이슈와 상관없이 영유아, 임산부 등 북한 취약계층의 생명과 직결되는 도움만큼은 계속해야 한다며 대북협력 민간단체에게 지원금품을 보내는 국민들도 생각보다 많다. 이런 민간단체들은 오랫동안 대북사업을 하며 양쪽 사정을 잘 알고 있어서, 이들을 통해 인도적 지원만이라도 재개한다면 꽁꽁 얼어붙은 서로의 마음을 녹이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게 어렵지만 포기할 수 없는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가다 보면 UN 및 국제사회와의 공조도 훨씬 쉬워질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우리가 인도적 지원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 ‘퍼주기’와 ‘안 주기’를 넘어서 ‘제대로 주기’의 틀을 마련해 가야 한다.

나는 더 이상 먼발치에서 북한을 바라만 보고 싶지 않다. 압록강, 두만강 타령도 싫다. 그래서 두 눈 부릅뜨고 찾아볼 거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내가 해야 할 일을.

한비야 국제구호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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