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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 영사 1호’ 황기환, 일제에 끌려갈 뻔한 한인 35명 구출

중앙일보 2015.08.13 01:41 종합 4면 지면보기
1919년 가을, 200명의 한인 노동자가 영국에 도착했다. 러시아 무르만스크에서 연합국 지휘 아래 일하다 영국군과 함께 철수한 사람들이다. 임시정부 파리위원부가 나섰으나 일본은 이들을 중국 칭다오(靑島)로 데려가겠다고 했다. 영국 정부는 한인들을 파리위원부에 넘겨주려 하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이들을 받아들이겠다고 구두로 약속했던 프랑스도 국내 여론을 의식해 없던 일로 하자고 말을 바꿨다. 이때 런던과 파리를 오가며 양국 정부 설득에 나선 이가 임정 파리위원부 서기장 황기환(?~1923·사진)이다. 백방으로 뛴 끝에 35명을 구해 냈다. 그 35명은 재법한국민회를 설립했다. 당시 한인들은 프랑스를 법국(法國)이라고 불렀다. 유럽에서 설립된 최초의 한인단체다. 한인 노동자들을 위해 96년 전 황기환이 한 일은 지금의 재외국민 보호, 영사 업무였다. 임정의 외교관이 교섭을 통해 국민을 구해 낸 최초 사례다.


외교가 힘이다 <2> 임시정부의 항일 외교
파리위원부서 활동 뒤 미국 이주
현충원에 유해 이장 3년째 표류

 미국에서 유학한 황기환은 1919년 6월 프랑스로 와 김규식의 파리강화회의 참석을 보좌하다 파리위원부 일을 이어 맡게 된다. 20년 10월부터는 런던 주재 외교위원도 겸했다. 그는 친한 언론인 매켄지와 협의해 ‘한국친우회’를 결성하는 등 한국 문제에 관심이 없던 유럽인들의 관심과 동정을 이끌어 내기 위해 애썼다. 21년 이승만의 워싱턴회의 참석을 보좌하기 위해 미국으로 돌아간 뒤에도 런던을 자주 왕래하며 외교활동을 계속했다. 그는 23년 4월 뉴욕에서 심장병으로 사망했다.



 황기환의 유해는 지금까지 92년째 뉴욕 퀸스의 마운트 올리벳 공동묘지에 쓸쓸히 묻혀 있다. 무관심 속에 방치됐던 황기환의 묘는 2008년 뉴욕한인교회 장철우 목사에 의해 발견된다. 사망 당시 미혼으로 유가족이 없어 무덤 위치가 잊혀졌다고 한다.



 국가보훈처는 2013년 묘소를 확인하고 유해를 대전 현충원에 안장하겠다고 밝혔으나 3년이 돼 가는 지금껏 진전이 없다.



 보훈처 관계자는 12일 “유족이 없는 독립유공자의 시신을 해외 법원의 확인을 거쳐 국내에 모셔 오는 경우가 처음이라 시간이 많이 걸렸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유지혜·안효성 기자, 왕웨이 인턴기자, 김유진·송영훈 대학생 인턴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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