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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근린궁핍화’에 무기력한 한국

중앙일보 2015.08.13 01:35 종합 8면 지면보기


중국이 이틀 연속 위안화 값을 끌어내리며 세계 ‘환율전쟁’에 가세하자 한국 금융시장이 크게 출렁거렸다. 증시와 원화 값이 동반 급락했다.

환율전쟁 손발 묶인 한국 외환당국
미국·IMF가 시장 개입 못하게 압박
원화 변동성 커져 수출 위기 가중
“중국판 아베노믹스 시작” 분석도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2일 오전 경제관계장관회의를 마치고 “외환시장을 중심으로 동향을 면밀하게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중국 위안화 평가절하로 중국의 수출이 증가한다면 한국의 대중(對中) 수출이 중간재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한국 수출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했다.



 최 부총리가 시장의 불안감을 누그러뜨리려는 목적에서 한 발언이었지만 통하진 않았다. 이날 코스피지수는 전날보다 0.56% 하락하며 1975.47로 주저앉았다. 원화가치 역시 3년10개월 만에 최저치인 달러당 1190.8원으로 밀려났다. 특히 이렇게 다급하게 위안화 가치를 낮춰야 할 정도로 중국 경기가 나쁘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으면서 금융시장의 충격은 증폭됐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중국 정부가 지난해 환율을 달러화에 묶어두면서 실질적으로는 원화·유로화·엔화 대비 위안화가 절상(상대적 통화가치 상승)이 된 측면이 있다”며 “수출 주도형 경제 구조인 중국으로선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는 판단 아래 평가절하에 나선 것”이라고 해석했다.



 ‘중국판 아베노믹스’의 시작일 수 있다는 경고다. 2011년 40.8%에 달했던 한국의 대(對)일본 수출 증가율은 ‘아베노믹스’ 출범 이후 2012년 -2.2%, 2013년 -10.7%, 2014년 -7.2%로 추락했다. 올 들어 7월 20일까지 대일 수출은 1년 전과 견줘 29.5% 급감했다.



 중국의 ‘근린궁핍화 정책(beggar my neighbor policy)’의 본격화란 분석도 나온다. 근린궁핍화는 말 그대로 주변국의 경제를 희생시켜 자국의 경기 회복을 추구하려는 정책이다. 중국은 증시 부양을 위한 무차별적 시장 개입으로 이미 한국 금융시장에 충격을 줬다. 유안타증권에 따르면 중국 증시 변동성이 커진 지난 6, 7월 외국인 투자자는 주요 10개 신흥국 시장에서 79억 달러를 순매도했는데 이 중 한국 시장에서만 26억 달러를 순매도했다. 외국인이 중국 시장에서 자금을 빼면서 한국 시장에서 함께 철수한다면 한국 증시는 더욱 약세를 보일 가능성이 있다. 또 위안화 가치 하락에 따른 방문비용 상승으로 ‘유커(중국 관광객)’의 한국행이 줄어들면 내수시장은 직격탄을 맞게 된다.



 김지섭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연 7% 성장이 위태로울 만큼 경기가 나빠지자 중국 정부가 수출로 위기를 돌파해 보려는 의도로 위안화 가치를 내렸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대중국 중간재 수출은 좋아질 가능성이 있겠지만 ‘삼성전자 대 샤오미’ 구도처럼 중국 완성품 업체와 경쟁해야 하는 한국 기업은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렇게 한국을 둘러싼 금융 환경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는데도 한국 외환당국은 무기력한 모습이다. 국내총생산(GDP)의 6%가 넘는 경상수지 흑자와 외환시장 개입에 대한 미국·국제통화기금(IMF) 등의 압박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잇따라 낮추긴 했지만 경기 대응 성격이 강했다. 환율전쟁 속에서 원화 값 변동성만 커지고 있다. 한국 수출 위기를 가중시키는 요인이다.



 김상훈 KB투자증권 수석연구원은 “위안화 평가절하가 한국 경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는 만큼 연내에 한국은행 기준금리를 더 낮춰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하준경 교수는 “외환당국은 중국 환율 정책 변화에 따른 충격을 극소화하는 추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박진석 기자, 세종=조현숙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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