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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병건 특파원 빗장 푼 아바나를 가다] 관광객 몰려 카페 활황 … “여종업원 월급이 의사보다 많죠”

중앙일보 2015.08.13 01:02 종합 14면 지면보기



헤밍웨이 집필한 호텔 옆 헌책방
“미국서 책 반입 허용 땐 잘 팔릴 것”
민박·식당 등 관광 관련업 부푼 꿈
거리엔 1950년대 포드 택시 다녀





아바나의 태양은 11일(현지시간) 오전 10시에도 뜨겁게 달아 올랐다. 땡볕 속에서도 시내 아르마스 광장엔 이 시간이면 매일같이 길거리 헌책방이 펼쳐진다.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집필했던 암보스 문도 호텔이 바로 옆이다. 땡볕을 피해 그늘에 앉아 있던 헌책방 주인 안토니오(37)는 “백만장자를 꿈꾸는 건 아니지만 돈을 벌어 냉장고를 바꾸고 집도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과 국교가 정상화되기 이전엔 미국 관광객들이 들어오더라도 쿠바에서 산 책이나 상품은 미국에 갖고 들어갈 수 없었다”며 “대사관이 새로 열리면 이젠 그런 제한이 다 풀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과의 관계 회복은 아바나에 잘살아 보세 열풍을 만들고 있다. 쿠바를 향한 미국과 국제 사회의 제재가 풀리면서 관광객도 늘고 돈벌이도 늘어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시작됐다. 안토니오는 1990년 초중반 쿠바가 겪었던 ‘고난의 행군’ 세대다. 91년 소련 연방의 해체는 쿠바에겐 외교적 위기뿐 아니라 경제적 위기도 초래했다. 매년 40억∼60억 달러에 달했던 소련의 대쿠바 원조가 그해 중단됐다. 쿠바 교민은 “당시 쿠바인들이 가장 고마워했던 선물이 감자 한 동이였다”고 전했다. 안토니오도 초등학교를 겨우 마친 채 중학교는 야간으로 다녀야 했다. 휴대폰 수리업자 출신인 그는 그러나 이제 변화를 예측하고 있다. 안토니오는 “전 세계에서 관광객들이 늘 것”이라며 “요즘이 디지털 시대라도 책 구입에는 낡은 것에 대한 애착이 담긴 만큼 쿠바의 역사와 문화가 담긴 책은 수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성조기 티셔츠를 입은 현지 시민. [채병건 특파원], [AP=뉴시스]
헌책방 옆에서 쿠바의 영화 포스터를 팔던 20대 여성 리산드라는 “국교 정상화 발표 이후 곧바로 미국 관광객이 급증한 건 아니지만 앞으로 늘 게 분명하다”며 관광객들의 포스터 주문에 손을 바삐 움직였다. 오후 시내에서 만난 민박집 주인 할머니 오아키나는 “과거 지미 카터 미국 정부 때 쿠바와의 관계가 잠시 좋아진 적이 있는데 당시 미국 관광객들이 몰려와 침대가 모자라 담요를 깔고 자기도 했다”며 “아바나엔 호텔이 부족한 만큼 민박 수요가 크게 늘 것”이라고 기대했다.



 국교 정상화로 수입 증가를 기대하는 분야는 관광업만이 아니다. 전날 찾았던 아바나 내 미라마르 지역의 동네 식당인 ‘카페테리아 베네수엘라’. 5평 남짓한 작은 가게이지만 점심 시간을 넘긴 오후 3시께인데도 손님들이 줄지어 들어간다. 앉는 의자도 없는 작은 가게 안에선 샌드위치와 함께 쿠바에서 만드는 자체 콜라인 ‘투콜라’를 들고 선 채로 먹는 손님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곳의 매니저 로드리게스는 “이 가게는 10년 됐는데 지난해 미국과 국교 정상화 얘기가 나온 후로 중국 관광객들이 찾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근처에 해수욕장과 리조트들이 모여 있는데 이곳의 관광객들이 가게에 들른다는 얘기다. 동네 맛집이던 이곳은 쿠바와 미국의 관계 개선 이후 관광 맛집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로드리게스는 “점포 뒤쪽으로 가게를 확장하려 한다”고 말했다.



30여 분 후 찾아간 햄버거 가게인 ‘라 추체리아’에선 붉은색 미니 스커트와 하얀 블라우스 복장을 한 젊은 여종업원들이 손님을 맞고 있었다. 쿠바에도 자체적으로 현대식 패스트푸드점이 등장하고 있었다. 현지 관계자는 “이런 가게는 정부로부터 땅을 임대받은 뒤 자기 사업을 하는 것”이라며 “교사 초봉이 40세우세(40달러)인데 이보다는 서비스업 종사자들의 수입이 훨씬 많다”고 귀띔했다. 한 여종업원은 월급이 150세우세(150달러)라고 밝혔다.



관광과 식당 등의 분야에서 자영업과 서비스업을 활로로 찾으려는 쿠바인들이 생기는 배경엔 이 같은 소득 구조가 있다. 공식 월급보다는 미국과의 국교 정상화에 맞춰 변화의 추세를 따라가는 게 잘 살아 보세에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현지 교민은 “의료 산업이 발달한 쿠바에선 의사가 존경받는 직업임에도 월급은 40세우세 정도”라고 말했다.



 이날 아바나 중심가에서 대화를 나눴던 택시기사 디가스는 잘 살아 보세의 열기를 다른 방식으로 표현했다. 햇볕을 피해 택시 문을 열어 놓고 뒷좌석에 앉아 손님을 기다리고 있던 디가스는 “관광객들이 몰려 들어도 수입이 늘려면 장거리를 뛰어야 한다”며 “하지만 지금 이 택시로는 그게 안 된다”고 하소연했다. 그의 택시는 1950년대 만들어진 푸른색 포드 승용차다. 너무 낡아서 정부가 안전 규정상 아바나 바깥으로의 운행을 금지했다는 것이다. 그는 “자동차가 너무 비싼 데다 돈이 있어도 살 차가 없다”고 말했다.



 잘 살아 보세의 이면에는 미국에 대한 불만도 깔려 있다. 국교 정상화로 달러 유입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미국은 보다 적극적으로 쿠바를 존중하는 조치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다. 택시기사 디가스는 “우리는 (미국이 조차한) 관타나모 기지의 반환을 요구하고 있지만 미국이 하겠느냐”며 “미국이 움직여야 쿠바가 문을 여는 게 더 빨라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채병건 특파원 mfem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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