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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달빛’이 스러지게 하지 말라

중앙일보 2015.08.13 00:07 종합 37면 지면보기
[일러스트=박용석 기자]


이에스더
사회부문 기자
부모라면 한번쯤 한밤중이나 휴일에 갑자기 아이가 아파 가슴 졸이는 경험을 한다. 아픈 아이를 안고 응급실로 달리지만 두어 시간 대기는 기본이고, 더 무서운 병을 옮지는 않을까 걱정도 한다. 부모들이 365일 밤늦게까지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근무하는 ‘달빛어린이병원’을 반기는 이유다. 이 병원은 보건복지부 지정 병원이다. 야간·휴일에 문을 여는 대신 연간 평균 1억8000만원을 지원받는다. 지난해 9월 전국 병·의원 공모를 통해 시범사업을 시작했고 전국 15곳이 됐다. 부모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늦은 시간이나 휴일에 아이가 아프더라도 ‘도떼기시장’ 같은 응급실에 가지 않아도 되니 쌍수를 들고 반길 수밖에.



 그런데 이런 환호는 오래가기 힘들게 됐다. 두 곳이 지정 취소 요청을 했고, 한 곳은 제대로 운영을 못하고 있다. 이 병원의 의사는 “소아과개업의사회가 반대하고 나서면서 이곳에서 일하는 의사가 ‘배신자’로 몰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른 달빛어린이병원에선 소아과 의사 셋 중 두 명이 “동료 의사들에게 욕먹고 싶지 않다”며 그만뒀다고 한다. 다른 달빛어린이병원 의사는 “동료 의사들의 인신공격성 비난과 따돌림에 정신적인 충격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소아과의사회의 주장도 이해는 간다. 지정 병원이 정부 지원을 받으면서 환자를 끌어가면 나머지 소아과는 고사할 것이라는 게 의사회의 주장이다. 차라리 야간·휴일 진료수가를 높이고 달빛어린이병원 제도를 폐지하라고 복지부에 요구하고 있다. 복지부는 “의사를 3명 이상 확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 탓에 소규모 의원은 참여할 수 없다”는 의사회 입장을 받아들여 “3곳 이내 의원이 연합해 참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지난 10일 대책을 내놨다.



 그런데도 의사회는 여전히 “무조건 반대”를 외치고 있다. 15곳뿐인 달빛어린이병원 탓에 전국 2207곳 소아과가 문을 닫을 거란 주장에 대해 속 타는 부모들이 과연 납득할 수 있을까. 오히려 의사회는 현재 자체적으로 야간·휴일 진료를 보는 병원이 몇 곳인지, 수가를 어느 정도 인상하면 그런 병원이 몇 곳 더 늘어날 수 있는지 대안을 내놓는 자세가 필요하다. 복지부도 “의사회의 방해 행위에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엄포만 놓을 게 아니다.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며 의사회를 설득해야 한다.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교실 교수는 “정부가 달빛어린이병원 주변의 병원 수익이 얼마나 줄어들었는지 조사해 의사회의 피해 주장이 실질적인 것인지 아니면 추정에 불과한지 구체적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수요자인 부모와 아이들의 애타는 마음도 기억해야 한다. 양측이 타협점을 찾지 못하면 ‘달빛’은 이대로 스러질지 모른다.



이에스더 사회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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