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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다윈과 웨지우드, 이한응

중앙일보 2015.08.13 00:07 종합 39면 지면보기
고정애
런던 특파원
글의 제목을 보고, 대한제국의 영국 주재 외교관으로 외교 순국 1호인 이한응 열사의 우국지정에 대한 글이라고 여겼다면 성급하다.



 찰스 다윈의 얘기부터다. 그는 잔병치레했지만 다복했다. 유언으로 부인에게 “당신이 내게 얼마나 좋은 아내였는지 기억해 달라”고 했다. 에마 웨지우드, 그의 부인이다. 맞다. 그릇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하나쯤은 갖고 싶어 하는 바로 그 웨지우드가 출신이다.



 외출을 꺼렸던 그가 부인과 종종 방문한 데가 있으니 리스힐이다. 해발을 따지기 면구한 야산(294m)이지만 대충 평평한 인근 지형 덕에 관악산(632m)급 조망이 가능한 곳이다. 비탈에 리스힐 플레이스란 집이 있는데 웨지우드가 소유였다. 처가인 셈이다. 유명한 작곡가인 랠프 본 윌리엄스가 자란 곳이기도 하다.



 다윈·웨지우드와 본 윌리엄스는 서로 왕래하는 명문가들이었다. 그 본 윌리엄스 가문이 챙긴 이들 중엔 이한응 열사 등 대한제국의 외교관들도 있다. 이기현은 본 윌리엄스 여사에게 거의 매주 서한을 보내는 등 살갑게 굴었다. “당신의 착한 한국인 아들”이라고 했다. 반면 이한응 열사는 담백했다. 그럼에도 한국에 대한 외교적 지배권을 인정한 영일동맹 체결을 막아 보겠다고 애쓰다 몸도 마음도 피폐해져 요양해야 했던 그에게 뉠 곳을 제공한 이도 본 윌리엄스였다.



 주영한국문화원의 폴 웨이디가 5월 서울에서 발표한 논문 ‘이한응-어느 외교관의 죽음/대한제국 주영공사관의 약사’에서 소개한 대한제국의 영국인 친구들의 얘기다. 생생하다. 풍부한 사료와 공간 얘기 덕분일 게다.



 사실 다들 공개된 ‘자료’다. 다윈의 집도, 리스힐 플레이스도. 공간은 사고를 지배한다. 그네들 공간 속에선 그네들의 사고를, 그래서 삶까지도 알게 된다. 대영제국의 위세와 풍요로움 안에서 고군분투했던 이 열사의 빈한한 처지를 오늘날 일반인도 통렬하게 느끼게 되는 이유다.



 그러고 보면 영국에선 공인들의 공간이 공공재인 경우가 많다. 윈스턴 처칠의 말년이 궁금하면 차트웰 하우스란 데를 가면 된다. “돈이 우리 시대의 신이며 그는 신의 예언자”란 말을 들었던 로스차일드가의 영국 집도 언제든 방문 가능하다. 100여 년에 걸쳐 부수기보다는 보존하고 공유해온 시민운동의 결실이다. 덕분에 역사는 책 속에 박제된 채가 아닌 언제든 오늘로 소환할 수 있는 ‘날것’인 상태로 있다. 웨이디가 이한응 열사의 마지막 모습을 불러낼 수 있듯 말이다. 우린, 못한다.



고정애 런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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