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앙시평]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중앙일보 2015.08.13 00:06 종합 39면 지면보기
복거일
소설가
“비전이 없다”는 얘기가 부쩍 자주 들린다. 당장 사업이 힘들 뿐 아니라 앞길이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실제로 전자와 조선처럼 경쟁력 있는 산업들도 처지가 어렵고 전망도 밝지 않다.



 이번 ‘롯데 사태’에서 마음에 가장 무겁게 얹힌 것은 중국에 진출한 롯데가 1조원가량 손실을 보았다는 사실이다. 외국에 진출한 우리 유통 기업은 우리 기업들엔 해두보와 같다. 롯데의 중국 매장에 자기 제품들을 진열해 중국 소비자들을 직접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그런 해두보가 흔들리는 것이다.



 이런 어려움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고 믿는 사람이 많다. 여러 해 전부터 우리가 걱정해 온 ‘협공(nut-cracker)’이 견디기 어려울 만큼 거세어졌다는 것이다. 우리는 두터운 문화적 지층 위에 선 독일이나 일본보다 저력이 훨씬 약하고 외부 충격에 크게 흔들린다. 그래서 선진국 대열에 성큼 합류하지 못하고 어정쩡한 중진국에 머물면서 후발 사회들에 쫓긴다. 이런 협공에 대처할 전략을 정부도 기업들도 찾아내지 못했다. “비전이 없다”는 탄식이 나올 수밖에 없다.



 큰 위기를 맞으면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얘기가 나온다. 위기의 본질을 가장 근본적 수준에서 진단하고 처방을 내자는 뜻이다.



 우리 사회의 경제적 구성 원리는 시장경제다. 동서고금의 경험과 현대 경제학 이론은 시장경제가 가장 낫다는 것을 이론의 여지 없이 보여준다. 경제활동에 대한 정치적 또는 종교적 권력의 규제가 덜 심했던 사회들에선 늘 경제적 번영과 정치적 자유 및 문화적 풍요가 나왔다.



 안타깝게도 우리 경제는 시장경제의 이상형에서 아주 멀다. 근본적으로 정부가 차지하는 몫이 너무 크다. 공무원은 이제 100만 명을 넘어섰다. 실질적으로 정부 부문에 종사하지만 공무원으로 분류되지 않는 사람들은 얼마나 되는지 짐작도 하기 어렵다. 자연히 시장은 위축되고 활기를 잃어간다.



 정부가 비대해지니 세금이 무거워지고 경제활동에 대한 규제는 엄중해진다. 우리처럼 부패한 사회에선 공무원들은 적극적으로 시장의 움직임을 방해해 자신의 이익을 늘린다. 기업들이 인허가 업무에서 치르는 거래 비용은 뻘처럼 기업의 발목을 잡는다.



 게다가 재산권이 제대로 확립되지 않았다. 민중주의의 득세에 재산권은 오히려 약해진다. 요즈음엔 주민의 ‘민원’에 기업의 합법적 활동이 막히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이런 상황에선 우리 기업이 힘을 기르고 재빠르게 움직여 후발국 기업에 따라잡히지 않고 선진국 기업과 대등하게 경쟁하기 어렵다. 공무원 시험마다 젊은이가 구름처럼 몰려드는 ‘중세적 풍경’이 이런 사정을 유창하게 말해 준다.



 당연히 위기에 대한 대책은 우리 경제를 시장경제의 이상형에 보다 가깝게 다듬어가는 것이다. 정부의 크기와 기업에 대한 규제를 되도록 줄여 시장이 보다 활발하게 움직이도록 하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비전이다.



 지금 정부가 추진하는 경제개혁도 이런 비전에 따라 수행돼야 한다. 무슨 정책이든 시장경제의 원리를 거스르면 안 된다. 우리 경제를 조금이라도 시장경제의 이상에 가까이 가도록 도와야 한다.



 노동개혁이 특히 그렇다. 노동시장의 근본적 문제는 노동조합의 존재다. 노조가 노동력의 공급을 독점하도록 만든 것은 자유로운 거래와 경쟁을 추구하는 시장경제 원리에 어긋난다. 게다가 노조가 노동력의 공급을 거부할 수 있게 하고, 기업이 다른 노동력을 공급받을 수 없도록 했다. 심각한 문제들이 나올 수밖에 없다.



 노조의 폐해는 열거하기 지루할 정도로 많다. 그런 폐해들은 우리 사회에서 유난히 커 외국 전문가들은 우리 노동시장을 ‘독성(toxic)’이라고 부른다.



 그렇다고 노조 덕분에 노동자가 혜택을 입는 것도 아니다. 노조는 스스로 기업의 이익을 높이거나 경제를 성장시킬 힘이 없다. 따라서 힘센 노조의 조합원이 생산성 증가율보다 많이 받으면 그들은 약한 노동자의 몫을 가져가는 셈이다. 힘센 노조에 든 소수의 유복한 노동자들을 위해 약하고 가난한 노동자들이-하청업체의 종업원들, 비정규직 및 외국인 노동자들이-희생되는 셈이다. 노동자의 권익을 지켜주는 법이 정비된 우리 사회에서 노조는 긍정적 역할은 없이 그저 무거운 짐으로 얹힌다.



 이런 기본적 맥락을 정부는 시민에게 잘 알려야 한다. 비록 헌법에 보장됐지만 노조의 특권은 시장경제에 어긋난다는 사실을 시민이 깨달아야 한다. 그래야 노조가 시장경제에 덜 해로운 모습으로 진화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 시민이 막연하게 노조가 노동자를 돕는 기구라고 여기는 한 노동개혁은 뜻있는 성과를 내기 어렵다.



복거일 소설가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