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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갑고 똑 부러지는 이미지가 내 강점

중앙일보 2015.08.05 13:59




[인터뷰| ‘암살’ ‘베테랑’의 신스틸러 진경]차갑고 똑 부러지는 이미지가 내 강점



신스틸러. 출연 분량에 상관없이 관객의 뇌리에 남는, 강렬한 연기를 선보이는 배우를 말한다. 요즘 배우 진경(43)이 딱 그렇다. ‘암살’(7월 22일 개봉, 최동훈 감독)과 ‘베테랑’(8월 5일 개봉, 류승완 감독), 두 편의 화제작에 모두 출연한 그는, 기개 있는 여성 독립운동가(암살)와 강단 있는 형사 아내(베테랑) 역할을 능란하게 넘나들며 관객의 눈을 사로 잡았다. “너무 조금 나와 민망하다”던 그는 ‘짧지만 강렬했다’는 말에 환하게 미소지었다.





-두 영화에서 뚜렷한 존재감을 보여줬다. “두 영화 모두 처음엔 분량이 짧아 아쉬웠는데, 찍으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짧지만 결코 짧지 않은 역할이었다. 내겐 뜻깊고 배운 게 많은 작품이다.”



-‘암살’에서 꼼꼼하기로 소문난 최동훈 감독과 처음 만났는데. “‘암살’은 이틀간 찍었는데, 하루가 1년처럼 느껴졌다. 최 감독은 테이크마다 주문을 하나씩 추가했다. 친일파 남편 강인국(이경영)에게 안성심(진경)이 독립운동가인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는 부엌신의 경우, 담배 연기를 내뿜는 타이밍과 앉는 각도 등 굉장히 디테일한 주문을 했다. 라이터 불꽃의 크기까지 고려해야 했다. 나중엔 식은땀이 나더라. 류승완 감독도 최 감독 못지않았다. 오랜만에 신선한 자극을 받았다.”



-분량이 짧을수록 연기하긴 더 어렵지 않나. “그래서 준비를 더 꼼꼼히 했다. 시나리오를 읽으며, 한복 차림으로 담배 피우는 이미지가 정말 좋았다. 상반된 두 문화가 묘한 이미지를 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자네 앞에서 왜 눈을 감나’라는 대사도 좋았지만, 그 이미지가 내겐 더 강렬했다. 자료를 찾아보니 한복 입고 의병 활동을 한 여성 독립운동가가 많았더라. 안성심이란 인물을 갖고도 한 편의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그가 비장한 최후를 맞는 장면에선, 내가 연기했지만 소름 돋았다.”



-‘베테랑’에선 ‘나도 사람이고 여자야. 알았어?’란 대사가 인상적이었다. “많은 주부의 공감을 얻을 것 같다. 형사의 아내인 주연(진경)이 명품 백과 돈다발의 유혹을 뿌리치는 모습은 정의롭지만, 그것만으로는 단선적인 캐릭터로 비칠 수 있다. 경찰서로 쳐들어가 남편에게 항의하면서도 잠시나마 유혹에 흔들렸다는, 솔직하고 인간적인 고백을 하기 때문에 입체적인 인물로 보이는 거다. 어떤 캐릭터도 허투루 낭비하지 않는 게 두 감독의 역량이다.”



-‘베테랑’에서 가장 기억나는 대목을 꼽는다면. “씩씩대며 경찰서에 찾아간 주연이 남편을 지갑으로 때리다가도, 남편의 후배 경찰이 음료수를 쓱 내밀자 바로 받아마시는 대목이다. 그거 하나로 주연의 캐릭터는 물론 남편 팀원들과의 관계가 모두 설명된다. 류 감독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영화계에서 지명도가 높아진 계기는 ‘감시자들’(2013, 조의석·김병서 감독)의 이 실장 역 아닌가. “그 영화로 지난해 백상예술대상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2012, KBS2, 이하 ‘넝쿨당’)을 본 제작사 대표가 과감하게 날 캐스팅해줬다. 경찰 감시반원을 통제실에서 지휘하는 인물인데, 립스틱을 꼼꼼하게 바르며 등장하는 신과 벌컥 문을 열고 들어서는 황 반장(설경구)을 ‘노크!’란 한마디로 돌려세우는 신은 지금도 이야기하는 분들이 많다.”



-냉철한 카리스마도, 날선 차가움도, 심지어 코믹도 잘 소화해낸다는 평가다. “그런 것들이 모두 내 안에 있는 것 같다. 나를 세상에 늦게 드러낸 편이다. 은둔하며 칼을 갈았다고나 할까. ‘넝쿨당’ 전에 정말 일에 굶주려 있었다. 그간 내 안에 축적돼 있던 여러 가지가 작품을 통해 조금씩 나오는 것 같다. 주변에선 ‘넝쿨당’의 따박따박 제 말 다하는 교사 이미지가 굳어질까봐 걱정했는데, 난 아무렇지도 않았다. 이후 ‘감시자들’ 같은 작품에서 다른 모습을 보여줄 기회가 많이 생겼잖나. 새롭게 변신하고,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것에 재미를 느끼기에 연기를 하는 거다.”



-연기를 업으로 삼겠다고 결심한 때는 언제인가. “고교 시절 내성적이고 폐쇄적인 학생이었다. 감정 표현에 서투르고, 분출할 통로도 없어 많이 힘들었다. 연극 무대에서 마음껏 감정을 표현하는 배우들을 보며 저거다 싶었다. 그래서 재수해 동국대 연극영화과에 들어갔다. 배우가 되고 싶다기보다는,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우울증에 걸리거나 사회 생활을 할 수 없을 것 같아 연기를 시작했다. 생존의 차원에서 선택했다. 연기를 배워가며 제대로 하고 싶은 욕망이 커졌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도 다녔다.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창조적인 일이 연기라고 생각한다. 연기 외의 다른 것은 관심도 없고, 중요하지도 않다.”



-연극 무대에서 10년 넘게 칼을 갈았는데, 일찍 드라마나 영화를 할 걸 그랬다는 아쉬움은 없나. “모든 일엔 때가 있는 법이다. 옛날엔 나 같은 캐릭터나 내가 잘할 수 있는 연기를 선호하지 않았다. 트렌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넝쿨당’ ‘감시자들’ 그리고 드라마 ‘피노키오’(2014~2015, SBS) 등에서 내가 연기한 역할처럼, 똑 부러지고 강단 있는 여성이 각광받는 시대가 되면서 내가 배우로서 부각되는 때가 온 것 같다. 어릴 땐 세 보이고, 차가워 보이는 외모가 약점이라 생각했다. 난 왜 여성스럽지 않을까 자괴감에 빠진 적도 있다. 하지만 그런 약점이 나를 배우로서 특화하는 강점이 됐다.”



-‘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하반기 개봉, 정기훈 감독)에선 악덕 연예 기획사 대표로 출연한다고 들었는데. “다들 깜짝 놀랄 정도로 외모 변신을 한다. 복고 느낌의 가발과 선글라스를 내가 제안했는데, 다들 만족하는 결과가 나왔다. 그런 맛에 연기한다. ‘넝쿨당’의 안경도 내가 제안했던 상투적인 설정이었는데, 사람들이 신선하게 받아들이더라. 결국 디테일 싸움인 것 같다. 상투적인 외적 이미지와 상투적이지 않은 연기 디테일이 만날 때 신선한 화학 작용이 나오는 게 아닐까.”



-롤모델로 삼고 있는 배우가 있나. “‘파고’(1996, 조엘 코엔 감독)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프란시스 맥도먼드의 연기에서 힌트를 많이 얻는다. ‘베테랑’ 찍을 때도 참고했다. 미국 드라마 ‘위기의 주부들’(2004~2012, ABC)에 출연한 펠리시티 허프만도 관심 있게 보는 배우다.”



-‘슬로우 비디오’(2014, 김영탁 감독) ‘암살’ ‘베테랑’ ‘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등 오달수와 출연하는 작품이 많다. “같은 소속사여서 회사 차원에서 미는 건가(웃음)? ‘대배우’(하반기 개봉, 석민우 감독)에선 부부로 출연한다. 의외로 잘 어울린다. (오)달수 선배가 예전에는 차가워 보인다며 옆에도 안 왔는데, 부부로 호흡을 맞추면서는 ‘너도 나이 드니까 유들유들해지는구나’라며 좋아하더라.”





글=정현목 기자 gojhm@joongang.co.kr 사진=라희찬(STUDIO 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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