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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둔감한 대통령, 나약한 군대

중앙일보 2015.08.12 00:05 종합 35면 지면보기
김 진
논설위원
지뢰 폭발은 연평도 포격 이후 5년 만에 다시 터진 북한의 군사 도발이다. 그사이 5~6 차례 사이버 테러가 있었지만 무력 공격은 처음이다. 이번 사태는 심각한 것이다. 김정은의 첫 도발이고, 천안함 기습을 반복했으며, 3단계 보복 타격이라는 남한의 의지를 시험하기 때문이다.



 지난 10여 년간 이 나라의 지도자들은 무고한 젊은이들을 적의 공격에 바쳤다. 2002년 연평해전 때 김대중 정권은 병사들에게 ‘먼저 쏘지 말라’고 했다. 적이 국경선을 넘어와 포를 겨누어도 쏘지 말라는 것이었다. 2010년 천안함이 당했다. 기습 자체야 막기 힘들었지만 보복은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못했다. 어뢰를 건지고도 못했다. 8개월 후 적은 다시 도발했다. 이번엔 섬마을이 불탔다. 그런데도 이명박 대통령과 군 지휘부는 제대로 응징하지 못했다. 1000억원짜리 F-15를 띄워놓고도 못했다. 철모 끈이 불에 타도 해병은 용감히 싸웠다.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대통령은 지하벙커에서 한없이 나약했다.



 이 나라에서는 지도자와 지휘관은 살고 병사들만 죽었다. 그런 부끄러운 역사가 있다면 후임 정권은 각오가 각별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 정권도 크게 나을 게 없다. 대통령은 군 통수권자다. 자신의 젊은 부하 2명이 적의 공격에 다리를 잃었다. 그런 위중한 상황이라면 대통령이 국민 앞에 나서야 한다. 상황을 설명하고 대책을 말해야 한다. 그런데 대통령은 이상하게 조용하다.



그는 어제 영국 외무장관 면담에서 이 문제를 거론하기는 했다. 그런데 제대로 북한을 질타하지도, 응징을 천명하지도 않았다. 청와대 대변인이 북한에 책임자 처벌을 촉구한 일은 있다. 하지만 그것도 대통령의 직접화법은 아니다. 대통령은 8일 국가안전보장회의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여성이어서 군대를 모르므로 공부를 위해서도 주재해야 하는데 그는 그러지 않았다.



 국가안보 사태 때 안보 참모들이 여성 대통령을 보좌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다. 대통령의 양대 군사참모는 한민구 국방부 장관과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이다. 한 장관은 2010년 연평도 피격 때 합참의장이었다. 합참 작전회의에서 어느 대령이 “비행기로 폭격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한 의장은 끝내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사실상 그는 패장인 것이다. 그의 할아버지는 일제와 싸웠던 영웅적인 의병장 한봉수다. 그런 할아버지의 손자가 부끄러운 기록을 남겼다. 퇴임 이후 그는 사석에서 전술 실패를 인정하곤 했다. 그가 국방장관 물망에 오르자 “패장이 어떻게 국방장관이 되나”라는 시선이 있었다. 그는 “실패의 경험이 있으므로 더 잘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그는 지난해 6월 국방장관이 됐다. 그는 ‘창조국방’이라는 걸 내놓았다. 과학기술과 창의성을 국방 분야에 융합한다는 것이다. 이후 ‘창조국방’은 국방정책의 핵심적인 구호가 됐다. 과학기술과 창의성은 새로운 게 아니다. 정권과 시대를 넘어 추구해야 하는 가치다. 그런데 왜 유독 그만이 장관이 되자마자 ‘창조’라는 단어를 붙이는가. 이는 대통령의 ‘창조경제’를 의식한 것 아닌가. 국방장관이 북쪽의 적을 쳐다봐야지 왜 대통령을 바라보는가. 누가 집권하든 다음 정권에서 ‘창조국방’이라는 단어가 살아남을까.



 장관이 이상한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보고 나는 그의 ‘국방 진정성’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그는 공언(公言)을 지키지 않고 있다. 지뢰폭발에 대해 군은 “북한이 혹독한 대가를 치르도록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군의 응징 조치라고는 대북 확성기 방송뿐이다. 적의 공격으로 병사들의 다리가 허공으로 날아갔는데, 병사들은 “응징하고 싶다”고 절규하는데, 이 나라 군대는 총 대신 확성기를 쏘고 있다.



 대(對)국민 약속을 지키지 못한 건 김관진 국가안보실장도 마찬가지다. 그는 2010년 11월 연평도 피격 직후 국방장관이 됐다. 국민의 분노와 허탈감 속에서 그는 응징 3단계 원칙을 천명했다. 북한이 도발하면 원점-지원세력-지휘세력을 타격하겠다는 것이다. 군 지휘관들이 하도 자주 얘기해 웬만한 국민은 이 문장을 달달 왼다. 그런데 지금 그것은 어디에 있나. 군에서는 북한 경비초소를 포격으로 부수자는 의견이 있었다고 한다. 이른바 원점 타격이다. 그런데 이번에도 군 지휘부는 구차한 변명으로 수풀 뒤에 숨었다.



 1973년 3월 북한이 비무장지대에서 작업하던 한국군을 공격했다. 대위와 하사가 중상을 입었다. 박정인 3사단장은 대포를 동원해 북한 경비초소를 부숴버렸다. 북한은 응전하지 못했다.



그때 남한은 지금보다 훨씬 못살았다. 그런데 훨씬 용감했다. 지금 한국군에겐 용기가 있는가.



김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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