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삶의 향기] 옛것이 아름다울 때

중앙일보 2015.08.11 00:16 종합 28면 지면보기
민은기
서울대 교수·음악학
여름 휴가지로 하회마을을 정한 것이 그리 현명한 선택은 아니었나 보다. 안동 지방의 더위를 얕잡아 본 것이 화근이다. 찜통더위가 말 그대로 장난이 아니다. 선풍기와 에어컨 없이도 시원하다던 고택 대청마루는 바람 한 점 없이 얼마나 후덥지근하던지. 몸을 조금만이라도 움직일라치면 땀이 줄줄 흐르니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그러니 어쩌랴. 가만히 있을 수밖에. 호기심으로 시작한 고택 체험은 본의 아니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체험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고 얻은 것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가만히 있자니 오감은 생생하고 생각은 깊어진다. 무위의 도라고나 할까. 오래된 나무 특유의 냄새가 느껴지고 고택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조용한 소리를 낸다. 누워서 풀벌레 소리를 듣자니 이보다 싱그러운 화음이 없다. 시선을 돌리니 닳아서 반들반들해진 마루가 눈에 띈다. 긴긴 세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여기에 이렇게 앉아 있었을까? 그들에게는 어떤 고민이나 기쁨이 있었을까? 답도 없고 굳이 알 필요도 없는 질문이지만 신기하게도 그렇게 나의 현재는 누군가의 과거와 연결되고 있었다.



 과거에 작곡된 음악을 그 시대의 방식 그대로 연주하는 고음악이 요즘 인기다. 사람들은 애써 개량해 놓은 좋은 악기를 제쳐두고, 과거의 악기를 복원하고 그 시절의 주법과 해석을 찾아내느라 분주하다. 클래식 음악계의 유례없는 불황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여러 고음악 연주자들이 한국을 찾았고, 성황리에 공연을 마치고 돌아갔다. 국내에서 결성된 고음악 단체들의 활동도 돋보인다. 아직은 고증이나 연주가 허술할 때가 많지만 의욕과 발전 속도는 놀랍다. 특히 지난달 몬테베르디의 오페라 ‘오르페오’ 공연은 우리 손으로 그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사건이다.



 악기의 성능만을 놓고 보면 이러한 현상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바로크 바이올린 소리가 현대 바이올린보다 나을 리 없고, 하프시코드 소리가 피아노보다 풍부하지 못할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양의 창자를 꼬아 만든 거트현은 온도와 습도에 약해 뒤틀리기 일쑤고 그나마 줄을 팽팽하게 매지 않아 음량도 작다. 바이올린보다 하프시코드는 더 불편하다. 소리가 작을 뿐 아니라 음량을 크거나 작게 조절할 수 없어 답답하기 그지없다. 오죽하면 피아노가 처음 나왔을 때 이름을 ‘피아노포르테(pianoforte)’라고 지었을까. 악기 이름을 ‘여리게 강하게’라고 붙인 것만 봐도 강약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피아노가 그 당시 얼마나 획기적인 발명품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바흐가 환생한다면 피아노를 놔두고 하프시코드를 선택했을까. 아예 신시사이저를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생에서 편리함이나 기술적 성능이 다는 아니다. 수백 년 전에 작곡된 음악을 작곡가가 원했던 소리 그대로 듣는 일이야말로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사실 하프시코드를 위해 작곡된 바흐 음악을 바흐가 생전에 본 적도 없는 피아노로 듣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피아노의 성능이 월등해도 말이다. 그래서일까. 과거 악기로 그 시절의 연주기법을 고수하는 연주자들은 자부심이 대단하다. 이들이 ‘고음악’이나 ‘시대 연주’라는 중립적인 명칭 대신, 자신들의 연주를 ‘정격연주(authentic performance)’ 혹은 ‘원전연주’라고 부르는 것도 그 때문이다.



 기술의 진보가 사람들을 편하게만 만들어주지는 못하는 듯하다. 과거에 얽매인 삶이 변화가 없어 답답하다면 과거를 잃어버린 삶은 뿌리가 없어 불안하다. 그래서 현재의 삶이 빡빡하고 힘이 들수록 과거를 더 그리워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과거를 모두 미화할 수는 없는 일. 사실 과거보다 좋아진 것이 더 많으니까 말이다. 과거에 대한 맹목적인 향수는 그래서 때로 위험하기도 하다.



 그래도 가끔은 과거로 돌아갈 일이다. 둔탁하고 소박하기에 오히려 감동을 주는 소리들이 있으니 말이다. 삐걱거리던 교실의 풍금 소리가 그렇고, 교정의 미루나무에서 들리던 은은한 매미 소리가 그렇다. 영화 ‘워낭소리’의 감동도 그런 것이 아닐까. 모든 이들에게 추억할 소리가 있는 인생이기를. 때로 오래된 것이 아름답다.



민은기 서울대 교수·음악학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