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1억 창업지원금 준비서류만 500쪽 … 그 시간에 기술 개발”

중앙일보 2015.08.10 01:18 종합 4면 지면보기
올해 상반기 창업에 따른 신설법인 수는 4만6000여 개. 2000년 이후 최대치다. 정부는 “올해 신설법인 수가 9만 개를 넘어설 것”이라며 “창조경제 정책효과가 가시화하고 있다”고 자평하고 있다. 그러나 본지가 ‘창업 새내기’ 4명을 올해 3~7월 5개월간 밀착 취재한 결과 가시밭길 같은 창업 환경은 별반 개선되지 않았다. 현장과 따로 노는 ‘정책’이 많았고 창업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여전했다.


창업국가를 위하여 <상> 창업 새내기 4명, 5개월 밀착 취재

서울대 휴학 후 맥주 추천 앱 만든 22세 박상진씨

“내년엔 홍콩·싱가포르서 맥주 팔겠다”






박상진(22) 엑스바엑스 대표는 휴학생이다. 2013년 서울대 경영학과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창업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실패의 쓴맛을 겪은 뒤 지난해 수입맥주 추천 애플리케이션(앱) ‘오마이비어’ 서비스로 재기했다. 수입맥주 도매 유통을 중계하는 앱 ‘오바이비어’도 개발 중이다.



 “7개월 동안 애만 쓰다가 첫 사업에 실패하고 그 이유를 적어봤는데 50개가 넘더라고요.” 잘 알지도 못하는 아이템(디자이너 패션 판매 앱)을 선택했고, 동아리 친구들과 의기투합하다 보니 제품 개발하는 법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전형적인 ‘안 되는 케이스’였다. 개발자와 디자이너를 갖추고, 아이템도 수입맥주 추천으로 바꿔 다시 시작했다.



 “일주일에 100시간 넘게 일한 것 같아요.”



 3개월 만에 오마이비어 앱 베타버전이 나왔다. 수입맥주 열풍과 맞물려서 반응이 좋았다. 팀원도 늘어 6명이 됐다. 그때 다시 위기가 왔다. 결국 두 명이 그만뒀다. 휴학한 지 1년쯤 부모님의 걱정도 늘었다. 그러다 한 벤처포럼에서 10년 경력의 개발자 김준우(36)씨를 만나 동업을 하면서 안정을 찾았다. 때마침 창업진흥원의 창업정부지원금사업에 선정돼 3500만원을, 정주영창업경진대회에서 우수상(상금 500만원)을 받았다. 지원금을 받자 별도 직원을 두지 않으면 관리가 어려울 정도로 정부 보고 업무가 많아졌고, 다 아는 내용의 강의라도 의무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들어야 했다. 그러다 지난 연말 돈줄이 말랐다. 매달 한 명씩 그만뒀다. 마지막엔 박 대표와 CTO 두 사람만 남았다. 사업을 접어야 하나 싶었다. “처음엔 제품 만드는 방법을 몰랐다면, 나중엔 돈 만드는 법을 몰랐던 거지요. 돈이 얼마나 중요한지 몰랐어요.”



 맥주 수입업체와 주류 도매상 등이 필요로 하는 주문 앱 개발에 나섰다. 간신히 1억2500만원을 투자받았다. 올 연말 정식 진출이 목표다. 한국에서는 주류 통신판매가 안 되기 때문에 수입맥주를 앱으로 판매하는 사업 모델은 접어야 했다. “대신 내년에 홍콩·싱가포르 같은 해외로 진출해 맥주 판매를 하려고요.”



삼성전자 나와 김밥집 차린 33세 박태호씨

“오래 일할 직원 뽑는 게 가장 힘들더라”






삼성전자 연구원 시절 박태호(33)씨는 임원 출근시간인 오전 6시30분에 나와 회사에서 시키는 일만 해야 하는 생활을 바꿔 보고 싶었다. 그렇게 창업한 지 5개월째. 박씨는 여전히 오전 6시30분에 일어난다. 서울 강동구 명일동의 ‘바르다 김선생’(고덕점) 김밥집이 그의 가게다.



 창업 초반 3개월 동안 주7일 하루 12시간을 근무했다. 한 달 만에 4㎏이 빠졌다. 박씨는 “다른 건 몰라도 몸은 삼성전자 다닐 때가 훨씬 편했다”고 말했다. 이공계 출신이었지만 유행을 덜 타는 아이템을 찾다가 김밥을 낙점했다. 대신 ‘바른 식재료’를 강조하는 프리미엄 김밥을 내세워 품질과 서비스로 승부를 볼 심산이다. 사장으로서 가장 공을 들인 것도, 괴로웠던 것도 사람이었다. 박씨는 “성품 좋고 같이 오래 일할 수 있는 사람을 찾으려고 머리가 깨지도록 노력해 뽑은 직원들이 두 달 새 2명 빼고 바뀌어 버렸다”며 아쉬워했다. 그동안 직접 주방에 들어가 모든 메뉴를 다 만드느라 화상도 여러 군데다.



 박씨는 “이 업종이 얼마나 드나듦이 심한지, 점장과 직원 사이에 적정선을 찾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절감했다”고 말했다. 여전히 매출은 10점 만점에 6~7점 정도로 만족할 수준이 아니다. 그는 “김밥 장사는 어쨌든 객단가가 낮은 박리다매 구조”라며 “잘될 땐 하루에 300~400개까지 팔아 봤지만 꾸준히 시간당 20만원 정도가 나와야 안정적인데 아직은 못 미친다”고 말했다. 바르다 김선생의 경우 본사에 최초 가맹비와 이론·실기 교육비를 내고 매달 식재료비와 로열티를 지불한다. 특히 본사에서 수시로 나와 맛과 가게 위생상태를 검사하기 때문에 철저한 관리가 필수다. 소원은 두 가지다. 더 열심히 해서 매출을 10~20% 올리는 것, 그리고 좀 쉬어 보는 것.



 그는 “올 들어선 그 좋아하는 야구장에 한 번도 못 갔다. 주말에 가게에 오는 손님들이 죽도록 부럽다”며 웃었다. 그는 “창업을 해 보니 내 맘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면서도 “포기는 안 한다”는 말을 되뇌었다. “지금 포기하지 않아야 뭐가 됐든 미래가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겠어요. 그래서 절대 포기는 안 해요.”



온라인 쇼핑 ‘강남캠프’ 창업한 46세 심규석씨

“벤처는 시간·인력이 돈, 본업 집중해야”






‘강남캠프’. 심규석(46) 대표가 20년간 다니던 ‘나우콤’을 2012년 그만두고 지난해 7월 만든 회사다. 자본금 1억원에 직원은 3명. 심 대표는 사업을 구상하던 백수 시절 온라인쇼핑에 재미를 붙였다. 이런저런 쿠폰을 챙기면 때론 시중가의 절반 가격에도 물건을 살 수 있다는 게 재미있었다. 이런 재미 끝에 ‘쇼핑의 신(쇼신)’ 서비스에 착안했다.



 온라인쇼핑몰에서 쿠폰을 받는 가장 쉬운 방법은 매일 출석을 체크하는 것이다. 쇼신 서비스는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엄격한 보안솔루션을 통해 저장한 다음 매일 사이트에 들어가 출석 체크를 대신해 준다. 지난달 말 출석을 대행해 주는 쇼핑몰 계정 수가 5만 개를 넘었다. 심 대표는 “쇼신들의 쇼핑 정보를 공유하면서 쇼핑을 대행하는 사업까지 진행하면 수수료 수입이 들어올 것”이라고 말했다.



 위기도 있었다. 지난 3월 모 쇼핑몰 사이트에 접속하려는 시도가 너무 많아지자 이 사이트 서버가 쇼신의 접속시도를 디도스(DDoS·분산서비스거부) 공격으로 오인했다. 지난 6월에는 특허청에서 쇼신 비즈니스 모델 특허에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심 대표는 “스타트업이 발전하는 데 걸림돌은 역시 구인”이라고 말했다. 많은 급여를 줄 수 없으니 비전을 보여 주고 주식이나 인센티브를 약속할 수밖에 없다. 정부나 지자체에서 1억원 정도를 지원하는 제도가 있기는 한데 이걸 받으려면 500쪽 넘는 준비자료가 필요하다. 심 대표는 “그 시간에 기술 개발 하나를 더 하자는 쪽으로 결심했다”며 “벤처는 시간과 인력이 돈이라 본업에 집중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창업 성공의 관건은 수입 없이 비용만 발생하는 ‘데스밸리(Death Valley)’를 어떻게 잘 건너가느냐에 달려 있다. 가장 저렴한 사무실을 확보하기 위해 지난 1년간 이사만 두 차례 했다. 클라우드 호스팅 서버를 사용하면서 서버를 직접 구입해 24시간 돌릴 때에 비해 비용을 10분의 1로 줄였다.



 지금까지는 목표한 대로 잘 가고 있다. 지금은 설레는 마음이 더하다. “희망이 사라지지 않는 한 배가 고파도 즐겁습니다. 조금만 더 달려가면 물이 들어오고 배를 띄울 수 있다는 희망이죠.”



한화 CEO서 간접광고 창업 64세 정수봉씨

“90대까지 현역으로 … 창업이 용기 줬다”






지난달 15일 서울 여의도 국제금융로에 있는 한 빌딩. 60대 노신사가 샴푸를 들고 20~30대 직원들과 아이디어 회의를 하고 있다. 정수봉(64) 코리아미디어스퀘어 대표. 한화그룹 최고경영자(CEO) 출신으로 ‘사장님’ 소리 듣다 퇴임했는데 다시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2002년 한화역사 대표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꼬박 14년째 사장님 소리를 듣고 있다.



 정 대표는 현대자동차 특수차량 엔지니어를 거쳐 태평양건설(현 한화건설) 해외 담당, 한화역사 부동산개발 담당 임원 및 대표이사 등을 지냈다. 얼마 전 두산으로 인수된 한화의 광고대행사 한컴의 대표로 7년간 일하기도 했다. 정 대표가 생각한 창업 아이템은 간접광고(PPL)다. 정 대표는 “15초짜리 TV CF를 만들려면 20억원 이상 든다”며 “1억원 내외로 효과를 보는 PPL이 중소기업을 위한 길”이라고 말했다.



 정 대표는 2013년 7월 개인 돈 1억원으로 코리아미디어스퀘어를 창업했다. 현재는 투자를 받아 자본금 20억원으로 운영한다. 창업 이후 정부 시범 PPL 사업을 진행했다. 중소기업청·중소기업진흥공단·드라마제작협회와 함께 중소기업 제품을 방송 드라마에 PPL로 홍보하는 일을 맡았다. 소매를 걷어붙이고 뛰어다닌 끝에 박신혜·이종석 주연의 드라마 ‘피노키오’ 등에 중소기업 제품을 알렸다. 아들뻘 되는 드라마 제작자에게 깍듯이 고개를 숙이는 게 처음엔 어색했지만 이젠 ‘내 일’이다.



 판매되는 제품에 매기는 수수료가 주요 수입원이어서 최근 1년간 매출은 몇 억원대에 그쳤다. ‘한류’만 믿고 창업했다가는 ‘쪽박’ 차기 십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중소기업 제품을 인천공항 면세점에 입점시키기도 했지만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여파로 중국 관광객이 썰물처럼 빠지면서 곤란을 겪기도 했다.



 정 대표는 “집사람이 나이도 있는데 무슨 창업을 하느냐고 핀잔을 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대표의 장인인 김덕인(95) 동승통상 회장이 롤모델이 됐다. 동승통상은 요넥스의 배드민턴 용품을 수입한다. 김 회장은 57세에 창업했다. “90대까지 현역으로 뛸 수 있다는 용기를 얻었습니다. 나도 늦지 않았어요.”



◆특별취재팀=심재우(팀장)·구희령·손해용·박수련·이소아·이현택 기자, 사진=신인섭·오종택·강정현 기자, 정수경 인턴기자 jwshim@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