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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나흘 휴가 뒤 하루 만의 예기치 않은 ‘실언’

중앙일보 2015.08.10 00:05 종합 30면 지면보기
김형구
정치부 차장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이달 1~4일 여름휴가를 떠난다고 했을 때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문 대표가 경남 양산 자택을 오랜만에 찾는다는 소식에 잠시나마 ‘비움의 미학’을 실천하는 기회가 되길 바랐다.



 하루 동안 벌어진 복잡한 일도 수면 과정을 거쳐 기억이 가지런히 정리되듯 리더에게 휴식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생각에서다. ‘노 홀리데이’를 선언하고 쉴새 없이 국정 운영에 몰두했다는 이명박 정부가 남긴 성과가 어땠는지는 사람들이 다 안다.



 그런데 문 대표가 나흘의 휴가를 마치고 당에 복귀한 지 하루 만인 지난 6일 의도치 않은 ‘설화’(舌禍)가 빚어지고 말았다. 단순한 해프닝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전말을 전하자면 이렇다.



 발단은 그날 아침 비노 진영의 김동철 의원이 라디오에서 “최근 문 대표와 단둘이 만나 대표직 사퇴와 함께 ‘대선 주자급 비상대책위’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고 밝힌 인터뷰 내용이었다. 이를 놓고 당일 오후 한 취재기자와 문 대표가 나눈 대화다.



 ▶기자=오늘 김 의원의 대선 주자가 함께하는 지도체제 구성 제안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문 대표=제가 이야기는 듣지 못했는데요. 김 의원께서 제기하셨다는 의견은 확인해 보고, 우리가 최고위원회에서 논의를 해보겠습니다.



 이 얘기를 전해 들은 많은 기자가 고개를 갸웃했다. 자신의 임기를 “내년 총선까지”(지난달 22일 ‘당원에게 보내는 글’)라고 했던 문 대표가 “(대선 주자 비대위 구성 제안을) 최고위원회에서 논의해보겠다”니….



 곧바로 당 대변인 휴대전화가 불이 났다. 당연히 발언의 진의를 묻는 기자들 전화였다. 대변인은 “김 의원이 실제로 그런 말을 했는지 알아보겠다는 원론적인 답변일 뿐”이라며 불을 끄기 바빴다. “문 대표 본인이 물러나는 사안을 최고위원회에서 논의하겠다면 그게 보통 일인가. 그럴 생각은 전혀 없다”고도 했다.



 나도 이날 문 대표의 발언은 일종의 ‘실언’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최근 문 대표가 기자들과 만나 현안에 대한 문답을 주고받다 종종 그런 경우가 있던 터였다. “요즘 문 대표 머릿속이 여간 복잡한 게 아니다”(한 당직자)는 얘기도 들려왔다. 그도 그럴 것이 문 대표를 겨냥한 비주류의 공격은 연일 치열해지고 있다.



 요즘 새정치연합, 그리고 문 대표가 위태롭게 느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흔들리는 배의 키를 쥔 문 대표로선 머릿속이 복잡해 가끔 뜻하지도 않았던 말이 툭툭 나올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가 맡은 자리와 엄혹한 당 상황을 생각하면 아쉽다는 생각을 지우기 힘들다. 문 대표는 자신의 책 『운명』 맨 마지막에 “나야말로 운명이다. 당신(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고 했다. ‘노무현의 비서실장 문재인’에서 ‘정치인 문재인’으로 거듭나겠다는 다짐으로 들렸는데, 여전히 진행형인 숙제인 걸까.



김형구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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