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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박상천 빈소의 추억 “밤샘 대화·타협 … 그땐 정치가 있었지”

중앙일보 2015.08.06 01:09 종합 10면 지면보기
위문희
정치국제부문 기자
“그때는 ‘정치’가 있었어요.”


“지금은 여야 만남 자체를 꺼리니 … ”
진영논리에 각박해진 현실 탄식
김기춘 “치밀한 분인데 … 인생무상”

 지난 4일 별세한 박상천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의 빈소에서 만난 신낙균 전 문화관광부 장관의 말이다. 국민회의 부총재, 민주당 최고위원 등을 지낸 신 전 장관은 그러면서 “지금은 왜 그런지 몰라”라고 혀를 찼다.



 4~5일 빈소를 찾은 정치인들은 어느새 고인이 ‘원내총무’로 활약했던 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고인은 15대 국회(1996년 4월~2000년 4월) 때 국민회의 소속으로 두 차례, 16대에선 민주당 소속으로 한 차례 원내총무를 지냈다. 지금은 원내대표 체제지만 예전엔 원내총무가 국회를 이끌었다.



 15대 국회에서 한나라당 원내총무로 고인과 협상테이블에 마주 앉았던 이부영 새정치연합 상임고문은 “그때는 서로 여야 간에 밤새워서 술 먹고 (협상하고) 그런 게 됐단 말이에요. 지금은 여야가 서로 만나는 것 자체를 꺼리게 됐으니…”라고 신 전 장관의 말을 받았다.



 가만히 듣고 있던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도 말을 보탰다. “그분이 원내총무 하실 땐 여야 간에 서로 대화도, 타협도 활발한 시절이었어요. 미국도 보니깐 과거에는 민주당과 공화당이 치열하게 싸워도 원로들을 통해 초당적인 합의를 해냈는데…. 미국도 그런 게 없어진 것 같습니다.”



4일 별세한 박상천 상임고문의 빈소엔 이틀째 정치인들과 각계 인사의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뉴시스]
 원내총무가 ‘원내대표’로 격상된 건 2003년부터다. 예전엔 사무총장·정책위의장과 함께 당 3역의 하나였으나 지금은 당 대표와 함께 투 톱의 반열에 올라섰다.



 비서실장에 원내대변인을 따로 두고, 특보까지 거느릴 정도다. 위상은 커지고 권한도 더 강해졌는데 정객들은 원내총무 시절을 오히려 ‘정치가 있었다’고 말한다.



 고인과 박희태 전 국회의장의 ‘대변인 정치’를 그리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 고문은 “옛날엔 대변인이 1명이라 말의 통로가 딱 일원화되고, 딴말이 서로 안 나왔다”며 “대변인의 권위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게 안 된다”고 말했다. 지금 새정치연합은 당 대변인만 3명(김영록·유은혜·김성수), 원내대변인만 2명(박수현·이언주)이다. 새누리당도 비슷한 규모의 매머드 대변인단을 가동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에게서 박상천-박희태 콤비만 한 촌철살인(寸鐵殺人)의 명논평이 나오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을 아직 보지 못했다.



 이틀간 고인의 빈소엔 수많은 조문객이 다녀갔다. 전남 강진에서 칩거하고 있는 손학규 전 새정치연합 상임고문도 빈소를 찾았다. 야당 인사들뿐 아니라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도 눈에 띄었다. 김기춘 전 실장은 “검사로서도 참 치밀한 사람이었습니다. 참 좋은 분인데 너무나 인생무상을 느끼게 되네요”라고 말했다.



 빈소를 찾은 한 인사는 현재가 과거보다 못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2004년 17대 국회 이후 운동권 출신이 대거 국회에 입성하면서 진영논리가 더 심화됐지요. 예전보다 정치 문화가 더 각박해졌어요.”



 고인에 대한 애도가 어느덧 ‘정치’가 있던 시절에 대한 그리움으로 바뀌고 있었다.



위문희 기자 moonbrigh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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