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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시시각각] 무령왕과 두 아들, 그리고 롯데

중앙일보 2015.08.06 00:05 종합 34면 지면보기
이정재
논설위원
이것은 롯데가(家) 얘기가 아니다. 2000년도 더 지난 옛날, 저 멀리 중국 땅에서 일어난 일이다. 롯데 신동빈 회장 측은 총수 일가의 골육쟁투를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세키가하라 전투에 빗댔다. 롯데는 왜 하필 국적논란 시비가 한창일 때 굳이 일본의 옛 전투를 끌어댔을까. 내겐 그보다 사마천의 『사기』 조씨세가편의 주인공 무령왕이 와 닿았다.



 때는 춘추전국시대. 조나라 무령왕은 호복기사(胡服騎射-오랑캐 옷을 입고 말 달리며 활을 쏘는 것)를 받아들였다. 기원전 307년 일이다. 그때까지 중원에선 전차를 타고 싸웠지, 직접 말을 타고 활을 쏘며 싸우지 않았다. 호복기사는 월등한 기동력을 자랑했다. 걸림돌은 화복(華服). 격식 차린 화복은 치마같이 치렁치렁해 말 타고 활을 쏘기 불편했다. 신하들이 호복은 안 된다며 말렸지만 밀어붙였다. 세상을 바꾸는 일에 어찌 사소한 반대를 신경 쓰랴. 호복기사로 전투력이 커진 조나라는 중산국을 공격, 숙원이던 내몽고 지역 점령에 성공한다.



 영웅은 호색이라더니 사달은 여자에게서 났다. 꿈에 본 미녀가 현실에 나타나자 취했다. 아들 하(何)를 낳았다. 장자 장을 태자에서 폐하고 둘째인 하를 왕에 앉혔다. 자신은 주부(主父-국부, 상왕)가 됐다. 어린 왕 대신 나라를 좌지우지했다. 중원을 공략해 천하를 품에 안는 원대한 꿈을 꿨다.



 그런데 아뿔싸. 어린 하가 장성하면서 실권이 왕에게 실리자 폐위된 장자 장이 불쌍하고 안쓰러워졌다. 나라를 나눠 장자도 왕을 시키려 했다. 이게 ‘형제의 난’을 불렀다. 장자 장이 반란을 일으켰다. 둘째의 가신 공자 성과 이태가 반란한 장자 장을 공격했다. 쫓긴 장은 아버지 무령왕이 머물던 사구궁(沙邱宮)으로 도망쳤다.



 장자 장이 죽었지만 공자 성은 포위를 풀지 않았다. 포위를 풀었다가 무령왕에게 거꾸로 당해 목숨을 잃을까 두려워한 것이다. 무령왕은 참새 새끼까지 잡아먹으며 석 달을 버티다 사구궁에서 굶어 죽었다. 그제야 공자 성과 이태는 포위를 풀었다.



 때는 한·일 국교정상화 직후. 롯데 신격호는 롯데제과를 세웠다. 한국에 처음 일본식 껌과 과자를 들여왔다. 1967년 일이다. 한국에선 그때까지 미군이 던져주는 풍선껌을 씹는 게 고작이었다. 껌팔이로 성공을 거두자 관광·유통업으로 영역을 늘렸다. 50년 만에 연매출 80조원이 넘는 재계 5위 회사로 일궈냈다.



 영웅은 호색이라더니, 둘째 여자에게서 두 아들을 봤다. 일본롯데는 장자 동주, 한국롯데는 둘째 동빈에게 맡겨 서로 경쟁시켰다. 자신은 총괄회장이 돼 그룹을 좌지우지했다. 장자 동주를 폐하고 둘째 동빈을 회장에 앉혔다.



 그런데 아뿔싸. 둘째 동빈에게 힘이 실리자 폐위된 장자 동주가 불쌍하고 안쓰러워졌다. 다시 그를 불러 회장을 맡기고자 했다. 이게 ‘형제의 난’을 불렀다. 장자 동주가 반란을 일으켰다. 둘째 동빈의 후계 승계가 무효라는 동영상과 서류를 만들어 언론에 뿌렸다. 둘째 동빈의 가신 황각규와 노병용이 반란한 장자 동주를 공격했다. 동주는 아버지 신격호가 머물던 롯데호텔 34층으로 들어왔다. 황각규는 롯데호텔을 포위했다. 노병용을 비롯한 한국롯데 사장단은 “둘째인 동빈이 정통 후계자”라며 지지성명을 냈다. 그 다음 얘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결말은 어떨까. 이천 몇 백 년 전 무령왕 얘기의 끝은 비극이다. 굶어 죽은 무령왕에 이어 나라를 물려받은 둘째 혜문왕은 진나라를 위협할 만큼 강력한 나라를 만드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조나라는 이후 왕권이 약해지면서 진나라에 삼켜진다. 인상여·염파·조사 같은 맹장이 등장해 힘을 낸 것도 잠깐이었다.



 역사는 돌고 돈다. 사마천은 이렇게 적었다. “(무령왕은) 둘째에 대한 사랑이 식자 원래의 태자를 불쌍히 여겨 두 사람을 모두 왕으로 삼으려다 우물쭈물 결정하지 못했다. 이에 난이 일어나 부자가 모두 죽는 지경에 이르러 온 세상의 비웃음을 사니, 어찌 애석하지 않은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것은 결코 롯데가(家) 얘기가 아니다.



이정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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