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프로야구 불문률…한화 99번·넥센 16번이 비어있는 이유

중앙일보 2015.08.05 18:53
프로야구 구단들은 위대한 업적을 남긴 선수를 기리기 위해 그 선수가 쓰던 등번호를 영구결번으로 지정하곤 한다. 지난해에는 SK 박경완(현 SK 2군 총괄)이 은퇴하면서 프로 통산 12번째 영구결번의 주인공이 됐다. 첫번째 영구결번은 교통사고로 사망한 OB베어스(두산의 전신)의 포수 김영신(54번). OB투수 박철순이 달던 21번과 '무등산 폭격기'로 불리던 해태(KIA의 전신) 선동열의 18번도 현재 두산과 KIA에선 영구결번으로 분류된다.



최신 유행은 '임시 결번'이다. 해외 리그에 진출한 스타들을 위해 등번호를 비워두는 것이다. 류현진(28·LA 다저스)은 2006년 한화에 입단한 뒤 줄곧 99번을 달았다. 7년 동안 한국 최고의 투수로 성장한 그는 2012시즌을 마치고 메이저리그로 떠났다. 류현진은 다저스에서도 99번을 달고 있지만 한화에선 아무도 99번을 쓰지 않는다. 99번을 달지 않는 건 한화의 불문율이다. 류현진은 미국으로 떠나기 앞서 "난 영원한 한화 선수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99번이 비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올해 피츠버그에 입단한 강정호(28)가 넥센에서 썼던 16번도 비어 있다. 강정호의 뒤를 이어 넥센의 주전 유격수가 된 김하성(20)에게 16번을 물려주자는 말도 나왔지만 넥센은 강정호가 돌아올 때까지 그의 번호를 비워두기로 했다. 0번을 쓰던 김하성은 간판 유격수들이 선호하는 7번으로 최근 교체했다.



삼성에선 오승환(33·한신)의 21번이 임시 결번이다. 2005년 입단한 오승환은 2013년까지 21번을 달았다. 지난해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한 그는 한신의 전설적인 마무리 후지카와 규지(35)의 22번을 물려받았다. 그래도 삼성에서는 오승환을 예우하는 차원에서 21번을 비워놓고 있다. 이승엽(39·삼성)도 비슷한 경우다. 이승엽이 2004년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한 뒤에도 삼성 선수들은 36번을 달지 않았다. 이승엽은 2012년 삼성에 복귀하면서 이 번호를 되찾았다. 김남형 삼성 홍보팀장은 "이승엽과 오승환 모두 구단이 정한 건 아니었다. 암묵적으로 다른 선수들이 선배들을 예우하기 위해 이 번호를 달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구단들은 걸출한 스타의 등번호를 예우하는데 인색한 편이었다. 2007년 KIA는 계약금 7억원을 받고 입단한 대형 신인 김진우(32)는 18번을 배정받았다. 18번은 해태 최고의 투수 선동열의 번호였다. 해태의 유산을 이어받은 KIA가 김진우에게 18번을 주자 팬들의 반발이 심했다. 결국 김진우는 18번을 포기했다. 통산 214세이브를 올린 구대성(46·시드니)의 15번도 영구결번이 되지 못했다. 한화가 2010년 구대성과 같은 좌완 신인 유창식(23·현 KIA)에게 15번을 줬기 때문이다.



각 포지션마다 선수들이 선호하는 번호도 있다. 7번은 유격수들이 특히 좋아하는 번호다. KIA는 이종범이 달던 7번을 영구결번으로 정했다. 현역 시절 명유격수로 이름을 날린 김재박(61) 전 LG 감독도 7번을 달고 뛰었다. SK 박진만도 현대 시절 김 전 감독으로부터 7번을 물려받았다. 이종범은 "학창 시절부터 김재박 선배처럼 되고 싶어 7번을 달았다. 내 뒤를 이어 7번을 쓴다는 후배들이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포수들은 2·12·22번을 많이 쓴다. 야구기록지에서 포수의 포지션 번호가 '2' 이기 때문이다. 47번은 왼손투수, 10번은 강타자들이 애용하는 번호다.



등번호에 야구 철학을 담은 지도자들도 있다. 김성근(73) 한화 감독은 70번대 이상을 쓰는 다른 지도자들과 달리 38번을 쓰고 있다. 화투의 최고 족보인 '38광땡'에서 유래한 번호다. 김경문(57) NC 감독은 두산을 이끌 때부터 74번을 쓰고 있다. 야구든 인생이든 행운(7)도 있고 죽을(4) 고비도 있다는 뜻이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