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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밭 다지느라 … 비례대표 52명 중 18명 법안 통과 ‘0’

중앙일보 2015.08.05 00:55 종합 10면 지면보기
19대 국회 비례대표 의원들이 대표발의한 법안들의 본회의 통과 확률이 지역구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들보다 작은 것으로 나타났다.


가결률 4.7% … 지역구 의원보다 낮아
30명, 당협위장 맡거나 사무소 개소
입법활동 뒷전, 다음 총선 준비 골몰
“전문성 높이려는 제도 취지 살려야”

 국회 모니터링 단체인 바른사회시민회의 ‘법안 가결률’ 조사 결과다. 지난 6월 21일을 기준으로 할 때 여야 비례대표 의원 52명이 대표발의해 통과시킨 법안은 119건으로 이들이 대표발의한 법안 2559건의 4.7%였다. 이는 지역구 의원 246명의 법안 가결률인 6.5%(1만23건 중 653건)보다 1.8%포인트 낮고, 19대 국회 전체 발의법안의 평균 가결률(6.1%·1만2581건 중 772건)에도 못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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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54석(해산된 통합진보당 몫 2석 포함)인 비례대표의 정수를 늘릴지 줄일지, 비례대표 의원들이 너도나도 지역구 출마에 뛰어드는 상황이 바람직한지에 대한 정치권의 논란이 가열되는 상황에서 나온 분석 결과다.



 비례대표들 중 가장 많은 법안(18건)을 통과시킨 의원은 새누리당 윤명희 의원이었다. 그는 기능성 쌀 생산업체인 라이스텍 대표이사 출신으로 산업·어촌 발전 기본법안, 농어촌마을 주거환경 개선 및 리모델링 촉진을 위한 특별법안 등 농수산업 관련 법안을 많이 가결시켰다.



 쌀 재포장 금지를 골자로 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가 “본인의 회사에 특혜를 주려 했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윤 의원은 경기도 이천 지역에 사무소를 여는 등 지역구 출마에 의욕을 보이고 있다.



 2위는 의사 출신인 새누리당 문정림 의원으로 의료법·약사법 개정안 등 14건을 가결시켰다. 그는 서울 중구 당협 위원장에 공모했다가 스스로 사퇴했다.



 새정치민주연합 김광진·최민희 의원은 각각 8건씩을 통과시켜 공동 3위에 올랐다. 이들은 각각 전남 순천-곡성과 경기도 남양주에 지역 사무소를 내고 지역구 출마를 위한 표밭을 다지는 중이다. 특히 김 의원은 비례대표로는 이례적으로 지난해 11월 전남 순천, 올해 1월 곡성에서 의정보고회를 열기도 했다.



 대표발의한 법안 중 단 한 건도 본회의에서 통과시키지 못한 ‘실적 0건’의 의원들은 모두 18명이었다. 또 단 한 건을 통과시킨 이도 6명이었다.



 ‘실적 제로’ 의원 18명 중 12명이 지역 사무소를 개소했거나 당협 위원장을 맡고 있다.



 본지가 집계한 결과 비례대표 52명 중 지역 당협 위원장을 맡고 있거나 지역 사무소를 개소한 의원은 30명에 달한다. 새누리당은 27명 중 13명, 새정치연합은 21명 중 13명, 정의당은 4명 모두였다. 지역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지는 않지만 20대 총선 출마를 염두에 두고 활동 중인 비례대표도 여럿이다. 건강상의 이유로 이미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새누리당 손인춘 의원과 4일 청와대 고용복지수석으로 임명되며 의원직을 사퇴한 김현숙 의원을 빼면 사실상 대부분이 출마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다.



 이 때문에 국회 주변에선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이나 정수 확대를 논의하기 전에 “입법활동의 전문성을 살리자”는 비례대표의 취지가 제대로 구현되고 있는지부터 따져 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바른사회시민회의 이옥남 정치실장은 “비례대표는 환경·노동·과학 등 전문 분야에 관한 입법활동을 충실히 할 의무가 있는데도 임기의 절반 이상을 지역구 잡기에 몰두하고 있다”며 “비례대표제도의 취지가 현실적으로 충분히 반영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숫자만 늘리겠다는 건 국민이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희 기자 am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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