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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다른 집 애들처럼 살지 않기

중앙일보 2015.08.01 00:02 종합 24면 지면보기
오민석
시인, 단국대 교수
조지 엘리엇의 『플로스 강변의 물방앗간』의 앞부분을 보면 주인공 매기의 어머니가 ‘다른 집 애들처럼’ 자기 딸의 헤어스타일을 고집하는 대목이 나온다. 다른 집 애들처럼 살아야 ‘안전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국가 단위의 부(富)는 소위 ‘선진국’ 수준이라지만 개인 단위로 볼 때 사는 일이 녹록지 않다. 현재 50대 중후반의 친구들을 보면 거의 대부분 ‘우연’과 ‘요행’에 모든 것을 걸고 산다. 직장에서 쫓겨나고, 가진 돈도 없고, 평균수명이 늘어나 앞으로도 20여 년을 더 살아야 하는데 아무런 노후대책도 없다. 자식들은 부모를 부양할 능력도 마음도 없다. 가족도 친구도 국가도, 아무도 이들의 생계, 아니 생명을 책임져 주지 않는다. 걸리는 대로, 닥치는 대로 일을 하니 이 모든 게 대책 없는 ‘모험’이다. 동네 가게들은 수시로 주인이 바뀌고, 가게 외에 달리 할 것도 없어 퇴직금 털어 가게를 열었다가 거덜나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한마디로 말해 ‘불안 사회’다.



불안 사회를 주도하는 대표적 정서는 남들처럼 사는 것이다. 매기의 어머니가 ‘다른 집 애들처럼’ 자기 딸이 자라 주기를 바라는 것도 불안 때문이다. 불안을 조장하는 사회는 수많은 ‘자동인형’을 양산한다. 주체적·비판적인 사유를 포기한 ‘일차원적 인간’들 말이다. 자기 생각이 없으니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 하고, 남들이 사는 방식을 서둘러 쫓아간다. 그러니 속된 말로 ‘가랑이 찢어지는’ 것이다.



국가 단위의 부가 늘면서 소비 지수가 엄청나게 높아졌다. 성인 식구 수대로 자가용이 다 있어야 하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외식을 해야 하며, 가끔 해외여행도 가 주어야 하고, 신발도 유명 브랜드 정도는 신어 주어야 한다. 남들이 하는 소비 패턴을 따라 하지 않으면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소비문화의 배후에 산업이, 자본이 있다. (그럴 리야 없지만) 만일 압도적 다수가 이런 식의 소비를 거부한다면 시스템은 당장 무너지고 말 것이다. 그러니까 시스템은 자동인형의 양산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른 집 애들처럼’ 살도록 ‘유도’된다.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 집채만 한 사교육비를 지불한다. 우리 애들도 ‘다른 집 애들처럼’ 키워야 하니까.



그러나 생각해 보라. 인구 대비 ‘세속적(!)’ ‘성공 인구’를 넉넉히 상위 10%로 잡아주자. ‘다른 집 애들처럼’ 죽어라 키워봐야 확률적 90%는 세속적 실패자, 소위 루저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죽자 살자 사교육에 몰두하는 학부모의 90%는 어차피 ‘공부 못하는’ 자식을 둘 수밖에 없다. 결국 ‘다른 집 애들처럼’의 방식대로 사는 것은 불안 때문에, 공포 때문에, 90%의 실패 확률에 모든 것을 투자하는 것이다.



‘불안 사회’의 불안을 해소할 궁극적인 책임은 당연히 국가에 있다. 그러나 그 성취가 더디다면 당장 어떻게 살 것인가. 이것 역시 또 하나의 모험이지만, ‘다른 집 애들처럼’ 살지 말아야 한다. 그러자면 가치의 전복이 필요하다. 대기업에 입사 못 하면, 세칭 명문대에 못 들어가면, 연봉 얼마 이상 아니면 실패한 인생이라는 단순하고도 못된 생각(이런 기준에 의하면 모든 성자(聖者)들은 형편없는 루저들이다)에 도전하는 것이다.



오래전 바닷가의 한 호텔에서 우연히 목격한 일이다. 변전기를 에워싼 철조망에 갈매기 한 마리가 갇힌 채 쩔쩔매고 있었다. 우연히 철조망 안으로 날아 들어온 갈매기는 철조망의 구멍만을 유일한 출구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구멍마다 목을 들이밀며 갈매기는 무려 한 시간 이상을 헤매다가 겨우 날아갔다. 그 한 시간 동안 갈매기는 자신에게 날개가 있다는 사실을 망각했던 것이다.



‘다른 집 애들처럼’ 세상을 보면 철조망 구멍밖에 보이는 것이 없다. 아쉽게도 그 길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출구가 아니다. 그러니 다른 길과 다른 가치와 다른 세상에 대한 상상력이 필요하다. 자동인형이 아니라 다양성을 앞세운 창조적 개체들이 넘칠 때 시스템은 반성의 계기를 갖게 될 것이다. 획일성을 거부하는 것, 존엄한 인간이 할 일이다.



오민석 시인, 단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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