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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고야 만다" 지하철역 직원들 일주일 추적해 60대 성추행 용의자 검거

중앙일보 2015.07.31 14:23
서석환 역장.
“어떤 남자가 자꾸 흘깃흘깃 훔쳐보고 여자화장실에도 몰래 들어가는 것 같아요. 몇번이나 그러더라니까요.”



지난 16일 오후 8시30분쯤, 한 20대 여성이 두려운 표정으로 서울 지하철 5호선 청구역 고객안내센터를 찾았다. 여성은 “여자화장실에 출입하는 60대 남성이 있는데 성추행범으로 의심돼 사진까지 찍어왔다”며 민원을 접수했다.



다음날 아침 직원들이 서석환(55) 역장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다. 그렇지 않아도 여름은 지하철 성추행 범죄가 기승을 부릴 때다. 서 역장은 피해자가 더 생기진 않을까 걱정됐다. 그때부터 청구역에서 일하는 10명의 직원이 모두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성추행 의심자’ 추적에 돌입했다.



먼저 직원들은 역사에 설치된 폐쇄회로TV(CCTV) 화면을 모니터링하며 비슷한 사람이 등장하는지 확인했다. 그러나 신원도 모르는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직원들은 3일동안 비슷한 남성이 나타나지 않자 20일 서울 지하철경찰대에 신고를 접수했다.



그런데 21일 오전 6시 40분쯤, 고객안내센터에서 근무하고 있던 김의식(42) 대리가 수상한 남성을 발견했다. 남성은 지하철역을 내려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직원들이 있는지 살폈다. 불안한 모습으로 여자화장실 입구를 서성이기도 했다. 그러나 김 대리가 지켜보는 것을 느낀 남성은 급히 자리를 떴다.



직원들은 다시 경찰에 신고하고 예전 폐쇄회로TV(CCTV)를 확인했다. 지하철역에 설치된 CCTV는 49대로 약 보름동안 화면이 저장된다.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확인을 계속한 결과 60대 남성이 중년 여성을 따라 여자화장실에 몰래 들어가는 모습을 발견했다. 오전에 김대리를 보고 줄행랑을 친 그 남성이었다. 화면 속 그는 거의 매일 오전 6시 40분쯤 지하철역에 도착해 항상 주변을 경계하다가 표를 끊지 않고 지하철 비상통로로 무임승차를 했다. 또 여자화장실 앞을 서성이며 안을 훔쳐보거나,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을 뒤따라 계단을 올라가며 흘끔거리기도 했다.



지난 22일, 직원들은 경찰과 함께 그가 오는 시간에 맞춰 지하철역에 대기했다. 그러나 1시간 넘게 기다려도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직원들은 그가 매일 역을 이용하는 만큼 지하철을 내려 역을 빠져나가는 모습도 확인하려 계속 영상을 확인했지만 아침에만 한번 등장할 뿐이었다.



그런데 23일, 긴장하며 기다리고 있던 직원들 사이로 그가 등장했다. 어김없이 6시 40분이었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 지하 2층까지 내려온 그를 위경호(47) 부역장이 뒤쫓았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그는 평소 타는 지하철이 아닌 반대 방향 지하철을 타고 급히 달아났다. 그는 함께 탄 위 부역장을 따돌리기 몸싸움을 벌였지만 결국 한 정거장을 가서 붙잡혔다.



서 역장은 “지하철 직원들은 성추행에 대해서 물을수도 없고 체포할 권한도 없기 때문에 일단 무임승차 단속 사실을 알려주고 사무실로 데려왔고, 이후 도착한 경찰에게 인계했다”고 말했다. 7일간 직원들이 모두 동원돼 성추행 용이자를 추적하고 직접 붙잡기까지 한 것이다.



경찰 조사 결과 남성은 인근에 사는 A씨(63)로 매일 출근을 위해 지하철역을 이용하며 여자화장실 등에 출입해 왔다. 경찰은 A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서 역장은 “내 딸이나 직원들의 가족들도 매일 지하철을 이용하는데 그냥 두고만 볼수가 없었다”며 “전 직원들이 합심하고, 경찰도 적극적으로 도와준 덕에 조금이나마 더 안전한 지하철을 만든 것 같아 다행”이라고 말했다.



윤정민 기자 yunj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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