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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0건 오구라컬렉션, 매장 유물 포함 도굴 관여 암시”

중앙일보 2015.07.31 01:11 종합 2면 지면보기
오구라 다케노스케
오구라 다케노스케(小倉武之助·1870~1964)는 한·일 간 문화재 관련 사안이 터질 때마다 오르내리는 이름이다. 일제강점기에 그가 한반도에서 수집한 방대한 양의 유물 묶음인 ‘오구라컬렉션’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규모와 내용이 우수한 대형 컬렉션인 데다 수집 100년을 바라보면서도 흩어지지 않은 견고함으로 대표 표적이 됐다. 2014년 9월 현재 도쿄국립박물관 동양관에 전시된 한국문화재는 총 241건인데 그중 125건이 오구라컬렉션보존회에서 기증한 1030건 중 일부일 정도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보고서 발표

 지난 50년 동안 오구라컬렉션은 수없이 언급됐지만 정작 그 전모가 파헤쳐진 적은 없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안휘준)이 30일 선보인 『오구라컬렉션, 일본에 있는 우리 문화재』는 이런 해묵은 궁금증을 풀어주는 보고서다. 재단이 지난 2년 동안 전문가들과 함께 국내외 자료들을 수집·정리해 최대한 객관적인 관점을 견지하며 서술했다.



 제1부에서는 오구라가 1904년 한국에 와서 40여 년간 문화재를 어떤 방법으로 수집했고, 45년 일본에 돌아가 컬렉션을 어떻게 관리했는지를 시간 흐름에 따라 다뤘다. 제2부는 현재 도쿄국립박물관에 소장된 오구라컬렉션 개관과 목록, 유물의 장르·성격별 설명에 붙여 유물 입수와 관계된 흥미로운 정황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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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구라컬렉션은 사업가 오구라의 자금력, 확고한 수집 목적, 도굴이 횡행하며 문화재 거래가 활발했던 시대 상황까지 맞물려 탄생했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공권력을 이용해 한국의 문화재를 공식적으로 발굴 조사했다면, 민간에서는 이를 개별적으로 수집했다. 그중 대표 인물이 오구라 다케노스케였던 것이다.



 오다연 조사연구실 팀장 대리는 “오구라가 도굴을 주도하거나 사주했다는 명확한 증거는 없지만 당시 경상북도의 발굴 상황과 도굴 분위기를 보면 오구라가 관여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고종의 관모인 ‘익선관’ 등 조선 왕실 관련 복식과 소용품들이 다수 오구라컬렉션에 넘어간 것은 반환 요구의 정당성을 주장할 수 있는 중요 자료라고 설명했다.



 패전국의 일개 귀환자였던 오구라는 수집한 문화재를 어떻게 일본으로 빼돌렸을까. 오구라는 1930년대부터 이미 수집품을 소량씩 일본으로 옮겼음이 이번 조사에서 드러났다. 31년 도쿄에 지은 사저에 콘크리트로 저장고를 만들어 수천 건을 보관했다. 반출 유물은 도쿄국립박물관 유물담당자에게 보여 감정을 받은 뒤 일본 국보 또는 중요미술품으로 지정받았다. 최영창 조사연구실장은 “매장문화재와 왕실 복식류는 불법·부당한 문화재의 거래와 수집을 암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오구라 다케노스케= 일본 지바현 출신 사업가 겸 한국 문화재 수집가. 1904년 한국으로 건너와 대구전기회사를 설립한 뒤 조선총독부의 정책에 힘입어 금융과 전기사업을 확장해 부를 축적했다. 경주고적보존회의 평의원이라는 신분을 발판 삼아 자금력과 권력으로 수천 건이 넘는 다방면의 한국 유물을 모아 ‘오구라컬렉션’을 만들었다. 58년 재단법인 오구라컬렉션보존회를 설립해 이사장에 취임했다. 64년 오구라가 사망한 뒤 보존회는 81년 도쿄국립박물관에 오구라컬렉션을 기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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