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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2만 명 방문 … 웃음으로 동네 살린 개그맨들

중앙일보 2015.07.31 00:21 종합 20면 지면보기
개그맨 지망생들이 지난 23일 오후 충남 아산시 도고면 신언리 코미디홀에서 개그 공연을 하고 있다. 이들은 이곳에서 매주 6회 공연 중이다. [프리랜서 김성태]


엄태경
보슬비가 내리던 지난 23일 오후 4시. 충남 아산시의 한 시골마을에서 여자 천하장사 씨름대회가 열렸다. 건장한 개그우먼 김예림(24)·기현주(25)가 나섰다. 샅바를 잡으려고 무릎 꿇은 기현주가 갑자기 기도를 한다. 아나운서가 말했다. “기현주 선수, 시합 전에 기도를 하네요.” 그러자 해설자가 받아쳤다. “다리에 쥐가 난 거죠~.”

도고온천역 사라진 아산시 신언리
공연·전시장 ‘코미디홀’ 세우자
개그맨 엄태경, 지망생들과 둥지
하루 14시간 연습 … 주 6일 공연



 콧등에 침을 바른 기현주가 다리를 주무르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100여 명이 들어찬 객석은 웃음바다가 됐다. 공연이 끝나자 관객들은 무명의 출연진과 인증샷을 찍으라 여념이 없었다.



 개그 공연이 이뤄진 마을은 충남 아산시 도고면 신언리다. 한때 장항성 도고온천역이 있던 곳으로 당시는 역을 중심으로 인파가 붐볐다. 하지만 2007년 마을은 큰 타격을 입었다. 구불구불한 장항선을 곧게 펴는 사업이 진행되면서 역이 사라졌다. 외지인 발길이 뚝 끊겼고, 역 주변 상가 50여 곳은 대부분 문을 닫았다. 주민들도 마을을 떠났다. 2006년 300여 가구였던 마을은 2013년 135가구로 줄었다.



 그러던 마을이 서서히 부활하고 있다. 지난해 4월 KBS 공채 16개 개그맨인 엄태경(37)과 개그맨 지망생 10여 명이 마을에 둥지를 틀면서다. 이들은 월요일만 빼고 매일 공연을 펼친다.



 공연장은 이들이 아니라 아산시가 만들었다. 스러져가는 마을을 되살리기 위해 50억원을 들여 레일바이크 체험장과 공연·전시장 ‘코미디홀’을 세웠다. 코미디를 내세운 건 아산시가 남성남·최양락·이영자·장동민·안상태 등 유명 코미디언과 개그맨을 많이 배출해서다. 전유성이 경북 청도군에 ‘철가방극장’이란 개그학교 겸 공연장을 만들어 성공한 것에서도 힌트를 얻었다.



 코미디홀을 만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엄태경이 연락했다. 자신이 운영을 맡아보겠다고 했다. 당시 그는 개그콘서트 등에 출연하다가 케이블TV 방송 진행자로 활동하던 중이었다. 엄태경은 “개그맨을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무대에 설 기회를 주고 싶다는 생각을 전부터 해오던 차에 아산시 코미디홀 얘기를 듣게 됐다”고 말했다.



 건물 두 곳 중 하나는 코미디 박물관으로 활용했고, 또 하나는 객석 198석을 갖춘 공연장으로 꾸몄다. 입소문이 나면서 외지인들이 다시 찾아왔다. 지난해 2만여 명이 다녀갔다. 마을도 다시 활기를 띠게 됐다. 주민도 150여 가구로 조금씩 늘고 있다.



 엄태경과 개그맨 지망생들은 이곳에서 먹고, 자고, 개그 연습을 하고, 공연한다. 공연 관람료(어른 2만원, 학생 1만5000원, 어린이 5000원) 수익으로 공동생활비를 충당하고 개그맨 지망생들에게 출연료를 준다.



 이곳에서 생활하며 꿈을 이룬 개그맨 지망생도 있다. 올 초 유재필(23)이 SBS 신인 개그맨이 됐다. 군 복무 중이던 2013년 8월 ‘슈퍼스타 K’에 출연한 적이 있는 그는 지난해 개그맨의 꿈을 이루기 위해 아산에 왔다. 지난해에는 또 4명이 KBS 개그맨 공채 최종 오디션에 올랐다가 마지막에 고배를 마셨다.



 엄태경 코미디홀 관장은 “방송에서는 볼 수 없는 특색있는 공연으로 관객들을 계속 불러 모으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객석에서 터지는 웃음 뒤에는 젊은이들이 하루 14시간씩 연습하며 흘리는 땀이 있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아산=강태우 기자 kang.tae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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