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고은의 편지] 니체를 나로부터 떠나보내는 씻김굿 여행

중앙일보 2015.07.31 00:02 종합 28면 지면보기
[일러스트=김회룡]


고 은
시인
청사(靑史)에게.



 떠나는 자는 머무는 자의 윤리에 대한 회한을 품게 되는지 모르겠네.



 지구 위의 각처 축제에서 부르는 곳마다 다 호응할 겨를이 없어서 1년에 네 군데쯤으로 참가하다가 최근에는 1년에 두 번만 집을 떠나기로 하고 있네.



 이번 여름에는 영국과 스위스, 그리고 가을에는 이탈리아와 프랑스만으로 올해 일정을 한정하고 다른 초청들은 다음 다음으로 미루고 있네.



 영국 레드버리국제시축제는 10일간의 대미를 한국에서 온 나의 시낭송회로 삼아 나와 아내는 12세기 건립 이후 계속 보존해 오고 있는 그 축제 후원자인 아담 문터 소유의 성관(城館)에서 여러 날의 환대를 받았네. 지난 블레어 정권 ‘그림자 내각’에서 문화부 장관을 하던 마크 피셔가 17세기 시인 존 던에 대한 행사 진행자로 참여한 것도 인상적이었네.



 영국에서의 1주일 시낭송회 이후의 일정으로 스위스 취리히와 중앙알프스 자락의 엥가딘 산맥에서 1주일을 보냈네. 바젤의 시 행사와 유럽 문화인사 모임의 ‘알프스 담론’ 초대가 진작 있었으나 사정상 이루지 못한 적이 있어서 스위스는 이번이 첫걸음이었네. 하지만 아내는 유학 시절 여행 이후 35년 만이었다네.



 스위스 인연의 여러 시인과 지식인들을 떠올리지 않는 바 아니었으니 나에게는 니체 운명의 장소인 질스마리아 일대에 대한 연래의 예방 의도가 강했네.



 저 1950년대 말 나에게는 속수무책의 니체 경도(傾倒)가 있었네. 그것은 섣부른 불교 반야사상과 화엄사상 사이의 허방을 차지하고 있었네. 자칭 ‘유럽의 붓다’로도 행세한 그였기에 그의 산만한 섬광들은 어쩌면 나의 침략적인 광염(狂炎)에도 이입한 바 없지 않았네.



 어떤 사람이 이백과 니체의 합성으로 나를 정의한 사실이 있는데, 어쩌면 소문 없이 지니고 있던 내 니체 흔적이 그렇게 들켜버렸는지도 모르겠네.



 이번의 여행이 이 같은 지병(持病)으로서의 니체를 나로부터 떠나보내는 씻김굿이라는 애틋한 심경으로 그의 편력 거처를 찾았던 것이네.



 나는 엥가딘 일대의 신령스러운 1800m 이상 3000~4000m의 고지 전역에 펼쳐진 웅장한 절경 속에서 나날이 지칠 줄 몰랐네. 아내와 함께 오전 오후를 막론하고 몇 시간도 넘게 계곡으로 이어지는 산길의 횡단등반으로 90도 절벽 산등성이도 잔짐승인 양 쏘다녔네.



 엥가딘에는 스위스 3개어 독일어권, 프랑스어권, 이탈리아권 말고 제4언어인 고대 라틴어계열의 산악방언인 로만시어(語)가 있네. 겨우 3만6000명이 사용하는 수트실반어, 수르미란어, 수르실반어들이네. 이는 로마의 후예들이 중앙알프스 산악지대로 소개된 이래 그 협곡에 갇혀 살아왔기에 이어올 수 있었던 라틴어의 자취이겠네. 스위스 동남쪽 생 모리츠와 실바플라나, 그리고 질스마리아 일대의 산악 고원의 주민들에게 고어(古語)가 다양한 방언으로 이토록 살아남은 것은 새삼 기구하고도 경이로운 노릇이네.



 공교롭게도 올봄 두 개의 편지를 받은 적이 있네. 하나는 포르투갈 시인의 것이고 하나는 바로 스위스의 이 고장 작가 겸 조각가의 것이었네. 둘 다 내 시를 가까이함으로써 내 시 한 편을 자신의 시집 서시(序詩)로 또는 몇 편을 자신의 작품집에 번역 수록하는 것을 승낙해 달라는 것이었네.



 바로 그중의 하나가 이 엥가딘 방언의 시집일 줄이야. 어쩌면 그 편지가 나의 엥가딘 방문의 씨가 되었는지 모를 일일세.



 엥가딘이라는 심오한 매혹의 이름에서 ‘엥’은 강 이름이고 ‘가딘’은 골짜기를 뜻하는 로만시어이네. 바로 이 ‘엥’이라는 강물의 시원지가 질스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의 말로야인데 이 긴 강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인’강이네. 동알프스 산악도시 인스부르크도 ‘인강의 마을’이란 뜻이겠지. 강은 거기를 거쳐 데샤우 북해로 이어진다네.



 엥가딘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바로 이 강의 발원지인 말로야라네. 말로야는 이탈리아 코모호수에서 일어난 구름더미가 그 알프스 협곡에 갇혀 이동하며 이곳을 타고 넘는데 그 형상이 뱀과 같아서 ‘말로야 스네이크’라 한다네. 이 긴 구름의 행렬이 그 고개를 넘어 질스마리아 일대에 이르면 그 뒤로는 어김없이 거대한 폭풍우가 온다는 것이네. 이런 비경을 반영한 쥘리에트 비노슈 출연의 영화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를 감상한 적이 있네.



 하지만 나는 이번의 엥가딘 여기저기에서 니체1881~1888 기숙지(寄宿地)를 거닌 것으로 니체와의 고별을 삼을 것이네. 그가 극적인 ‘영겁회귀’ 사상을 일으킨 실바플라나 호수 기슭의 바위와 그 위의 주를레이 바서 폭포, 그리고 질스마리아에서 8년간의 여름을 보냈던 하숙집(지금의 니체하우스)과 무엇보다 그가 묻히고 싶어 했던 질스 호의 샤스테반도 끄트머리 ‘차라투스트라 바위’ 언저리와 그가 지칠 줄 모르는 독백으로 거닐었던 질스와 말로야까지의 긴 호반 산책로를 다니며 나는 ‘위버멘쉬’를 주언(呪言)으로 불렀다네. 샤스테 반도에서는 바위에 새겨진 ‘오 사람이여 귀 기울여라…’의 독일어를 흉내 내며 큰 소리로 읊었다네.



 낙타로서의 잠자기, 사자로서의 힘 갖추기, 용과의 일전(一戰)을 벌일 그 임무, 그리고 사자조차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어린 아이’에 이르는 니체의 정신궤적이라는 것도 그의 현란한 시적 수사(修辭)의 비약과 함께 이제 물 위에 떠내려 보내는 하나의 혼백이 되어야 했네.



 무릇 한 생애라면 그 안에 담겼다가 빠져나가는 사상과 정신현상들이 어찌 없겠는가.



 지난 전후 허무주의 이래 나의 사방풍(四方風) 같은 무작정의 감관(感官)에 부딪쳐온 관념의 위업들도 그것이 오랫동안 나의 체질로 고정된다면 그 자체로도 쓰레기이고 나에게도 거적대기이고 말 것이네.



 나는 내가 무엇 하나에도 꽁꽁 묶인 것처럼 주박당한다면 그것은 참을 수 없네. 나는 무엇의 충신에도 졸병에도 맞지 않네. 나는 천하 어디서도 도제(徒弟)일 수 없는 동물이네. 심지어는 나 자신에게 노예가 되는 것에도 나는 참을 수 없네.



 이것이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의 나일 테고 어떤 절대도 어떤 지상(至上)도 타파하는 임제(臨濟)의 선포가 어찌 내 선언으로 둔갑하지 않겠는가. 자아란 무아의 미개(未開) 아니겠는가.



 스위스는 적막하다시피 안정된 나라더군. 낭비가 용납될 수 없고 허세도 전혀 통용되지 않더군. 유럽 속에 찡겨 있으면서도 지난날 레닌의 취리히 망명이 가능했고 히틀러 시대에는 헤르만 헤세의 국적지가 되어준 곳이라네. 보르헤스도 스위스에 묻혀 있지. 이런 중립의 존엄성은 유로화의 군림 속에서도 엄정한 화폐경제행위로 자신들의 스위스프랑을 고수하게 하더군.



 내 한반도 통일의 시범이 스위스 다연방인 것은 이미 밝힌 바 있네. 이와 함께 내 민족의식에서의 일정한 자기부정과 승화 역시 앞으로의 지적 실천적 당위인 것도 되새겨보네.



 15세짜리 소년 니체가 쓴 시건방진 단편에 이런 대담한 진술이 있네. ‘우리는 이 세상의 순례자다. 우리 조국은 어디에나 있고 아무 곳에도 없다. 우리 모두에게는 같은 태양이 비춘다. 우리는 이 세상의 시민들이다. 지구가 우리 왕국이다!’



 이로부터 150년 뒤 나는 ‘엥가딘시편’을 쓸 것이네.



 청사. 자네 안부도 생략하고 여기 한 장의 사신(私信)을 자네의 여름 아침에 보내네.



고은 시인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