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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현의 시시각각] 법치보다 염치

중앙일보 2015.07.31 00:02 종합 30면 지면보기
박재현
논설위원
정부와 여당이 추진 중인 노동개혁에 시비를 걸 생각은 없다. 나 또한 자식들의 장래를 위해 하루 속히 청년 실업이 해소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노동시장 구조개혁에 나라의 미래가 걸려 있다는 정부 주장에 100% 동의한다. 하지만 이인제 새누리당 노동시장선진화 특별위원회 위원장에겐 아쉬움이 있다.



 그는 이달 초 검찰이 성완종 리스트 수사 결과를 발표할 때 “추가 조사가 필요한 인물”로 분류됐다. 새정치민주연합 김한길 의원과 함께였다. 검찰 주변에서 흘러나오는 얘기는 성씨 돈 2000만원가량을 받은 의혹이 있다는 것이다.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다. 혐의가 인정되더라도 통상의 관례에 비춰볼 때 구속 사안은 아니다. 하지만 기소가 되고 혐의사실이 확정되면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의원직이 날아가고 최소 5년간 선거에 못 나올 수 있다. 정치적 생명에 치명상을 입을 위험성이 크다는 얘기다. 이런 사정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현 정부 실세들에 대한 이 의원의 태도가 사뭇 달라졌다는 소리가 나왔다. 유승민 전 원내대표 사태 때가 대표적이다.



 당시 이 의원은 성완종 리스트의 유탄을 맞고 소환 통보를 받았다. 검찰은 이 의원이 소환에 응하지 않자 “체포영장 청구도 검토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강경했던 검찰의 태도는 이내 누그러졌다. “청와대가 검찰 수사를 못마땅해한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김현웅 법무장관 발탁설과 함께 김진태 검찰총장 경질설이 혼재됐다. 이후 사건은 유야무야되고 있고, 이 의원은 노동개혁의 십자가를 짊어지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 의원이 이병기 대통령 비서실장과 함께 정책 협의를 하는 모습은 낯설었다. 검찰 수사 대상자가 청와대에 들어가 회의를 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가. 이 의원의 입장에선 억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검찰의 소환 통보에 “성완종씨의 돈을 1원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검찰에는 나가지 않았다. 이 의원에 대한 아쉬움은 그가 청와대보다 검찰에 먼저 가 자신을 둘러싼 추문을 정리했으면 하는 생각에서 나왔다. 이 의원이 구상하고 있는 개혁 정책이 권위와 설득력을 갖기 위해서라도 자신부터 던지는 모습을 보였으면 한다. 법치주의란 게 별건가.



 이 의원을 위원장으로 추대하고, 회의를 한 현 집권층의 인식도 문제다. “혐의를 벗기 위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충성을 선택했다”는 정치권 일각의 분석은 이해하기 어렵다. 사법 심사의 대상도 정치적 흥정으로 해결할 수 있단 말인가. 성완종 리스트를 수사하기 위해 10여 명의 검사로 구성된 특별수사팀이 찾아낸 혐의 사실이 정권의 양해가 있으면 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이 무섭다.



 이러고도 법치주의를 말할 자격이 있을까. 박근혜 정부는 그 어느 정권보다 법치주의를 강조해 온 것으로 생각된다. 많은 법조인이 요직에 발탁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보여준 현 정부의 인식은 법치는커녕 염치조차 없어 보인다.



 ‘배신의 정치’라는 대통령의 한마디에 집권당 원내대표의 옷을 벗기고도 삼권분립을 말할 수 있나. 청와대 하명을 받아 5개월째 수사에 집착하는 검찰을 보며 정치적 독립을 얘기할 수 있을까. 검찰총장의 ‘걸레질’ 발언과 함께 임기제가 논란이 되자 “검찰총장의 임기제를 지켜주겠다”고 말한 게 이 정부다. 법에 보장된 것을 마치 시혜적 조치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도 ‘법대로’인가. 소수의견 없는 ‘13대 0’이라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법보다는 정치를 대입해야 해석이 가능한 게 이 정부의 사법부다. 상고법원 설치를 의식해 야당 의원에 대한 판결을 미루다 비판여론이 일자 전원합의체로 떠넘기는 염치없는 행동을 하고도 법치를 주장한다.



 검찰도, 법원도, 국회의원도, 대통령도 정의 그 자체는 아닐 것이다. 국민의 위임을 받아 정의를 실현해 나가는 도구이며 통로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자신들이 법치의 완결인 것처럼 말한다. 염치없는 생각이다.



박재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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