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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금요일] '아라비아의 워런 버핏'에서 '중동의 빌 게이츠'로,알 왈리드

중앙일보 2015.07.30 18:41
위기 때 새로운 영웅이 탄생하는 법이다. 1990년 11월, 미국 시티코퍼레이션(시티코프ㆍ현 시티그룹)의 부도 위기가 그랬다. 1812년 창립된 월가의 대표은행 시티코프는 부동산 사업 손해와 남미 외채 위기에 노출되며 4억 달러(4676억원)가 넘는 손실을 기록했다. 은행의 운명이 위태로웠다. 45억 달러에 이르는 구제자금이 필요했다. 제너럴일렉트릭(GE)과 제너럴모터스(GM), 세계 최대 보험사인 AIG에 접근했지만 누구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다. 투자자가 간절했다.



그 때 구세주가 나타났다. 세계적인 투자회사 킹덤홀딩스의 알 왈리드 빈 탈랄 알 사우드 사우디라비아 왕자다. 90년 9월 2억700만 달러를 들여 시티코프 지분 4.9%를 취득한 그는 이듬해 2월 5억9000만 달러(6898억원)를 추가로 투자해 주식 9.9%를 더 매입했다. 시티코프 주가가 주당 3~4 달러 오르내리면 그의 자산도 하루에 6억~7억 달러가 늘었다 줄었다 했다. 상당히 위험한 투자였다.



그의 도박은 성공했다. 당시 주당 15달러 수준에서 매입했던 시티그룹의 주가는 2006년 한 때 557달러로 최고점을 찍었다. 그는 상당한 차익을 챙겼다.‘시티 구하기’는 알 왈리드의 이름을 세계 금융시장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그는 이때부터 세계 금융 시장의 스타가 됐다. 이후 그는 기업 지분 투자 등으로 세계 최고의 부자 대열에 올랐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현재 알 왈리드의 자산은 289억 달러(약 34조원)로 세계 25위다.



알 왈리드가 시티코프에 투자한 건 운명적 관계 때문이다. 시티가 없었다면 알 왈리드의 성공 신화도 없었다. 79년 사우디 리야드에 킹덤계약상사(현재 킹덤홀딩스)를 세울 때 그에게는 아버지에게서 받은 3만 달러(3507만원)와 방 네 칸이 달린 컨테이너 사무실이 전부였다. 돈은 곧 떨어졌다. 시티코프가 지분을 갖고 있던 사우디아메리칸 은행(SAMBA)에서 80년 100만 리얄(당시 3만 달러)을 대출받아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쯤 되면 일반인들은 알 왈리드의 성공을 ‘금 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사우디 왕족의 흔한 성공 스토리의 하나로 여긴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는 ‘자수성가한 사우디 왕족’이다. 오일 머니로 재산을 일구지 않았다. 그는 ‘검은 황금(원유)’의 특권을 누리지 않았다. 누릴 수 없는 처지였다. 알 왈리드는 사우디를 건국한 압둘아지즈 이븐 사우드 초대 국왕의 21번째 아들 탈랄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왕자와 레바논 초대 총리 리아드 엘 솔의 딸인 모나 엘 솔의 장남으로 55년 태어났다. 올해 예순이다. 혈통은 왕족이었지만 삶의 궤도는 달랐다.



알 왈리드의 아버지인 탈랄 왕자는 진보주의 성향의 왕자들을 규합해 ‘자유 왕자단’을 조직하고 개혁을 요구했다. 당연히 왕의 분노를 사 이집트로 피신해 망명 생활을 했다. 탈랄 왕자는 이후 백기를 들고 사우디로 돌아왔다.



알 왈리드에게는 새로운 시련이 닥쳤다. 부모의 이혼으로 사우디와 레바논을 오가게 된 것이다. 그는 어머니 편에 섰다. 왕족이면서도 유복한 생활을 누리지 못한 이유다. 청소년기는 반항과 방황으로 뒤엉켰다. 미국 유학은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먼로대에서 경영학을 공부하며 학업에 전념했다. 미국에서의 경험은 그가 사우디와 중동에서 벗어나 전 세계에 ‘알 왈리드 투자 제국’을 건설하는 바탕이 됐다.



그는 건설과 부동산 투자로 돈을 모은 뒤 85년 은행업에 뛰어들었다. 파산 직전이던 사우디연합상업은행(USCB)을 적대적 M&A로 인수한 뒤 혹독한 체질개선 작업을 통해 89년 사우디에서 가장 수익성 좋은 상업은행으로 탈바꿈시켰다. 이후 사우디카이로은행(SCB)과 자신이 한 때 창업자금을 빌렸던 SAMBA 등을 잇달아 M&A하며 성공 가도를 달렸다. 그가 ‘아라비아의 워런 버핏’으로 불리는 이유다. 알 왈리드는 버핏처럼 뛰어난 통찰력을 바탕으로 한 M&A를 통해 부를 일구었다.



그의 제국은 어마어마하다. 알 왈리드가 95%의 지분을 가진 킹덤홀딩스의 투자 리스트는 세계 최대 기업 리스트를 옮겨 놓은 듯하다. 금융(시티그룹)과 호텔(포시즌ㆍ페어몬트 래플스ㆍ뫼벤픽ㆍ사보이)을 비롯, 언론(뉴스코퍼레이션ㆍ타임워너), 엔터테인먼트(유로 디즈니), 소매(사볼라ㆍ삭스ㆍ징둥닷컴ㆍ이베이), IT(애플ㆍ트위터ㆍAOLㆍ모토롤라), 부동산(카나리 워프ㆍ킹덤 타워 등)을 총망라하고 있다. 대륙으로 따지면 중동과 유럽ㆍ미국ㆍ아시아를 아우르고, 업종으로는 사람들이 ‘먹고 보고 만지는’ 거의 모든 분야에 투자를 했다. 덕분에 그는 오일 머니 없이, 25년 만에 200억 달러가 넘는 자산을 축적했다. CNBC는 “유가 하락으로 사우디 갑부들이 올 들어 자산 감소에 시달리지만 투자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한 알 왈리드의 재산은 오히려 늘어났다”고 보도했다.



투자자로서 그는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 ‘알 왈리드가 투자하면 오른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성공 전략은 철저히 연구해 좋은 자산을 싸게 살 수 있을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기회가 오면 과감히 행동에 나섰다. 그는 97년 애플컴퓨터의 주식 5% 가량을 조용히 사들였다. 50달러까지 치솟았던 주가가 18달러로 떨어진 뒤였다. 99년 12월 애플 주가는 96달러까지 올라 그는 상당한 이익을 봤다. 영국 런던의 신흥 금융 중심지인 카나리 워프도 마찬가지다. 92년 완공됐을 때 영국 경제가 둔화하며 임대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프로젝트가 좌초될 위기였다. 알 왈리드가 투자해 6% 지분을 확보했다. 카나리 워프는 99년 상장했고, 주가가 정점을 찍으며 5년간 연 4.7%의 수익을 기록했다.



정확한 투자 판단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건 정보다. 매일 아침 그는 세계 각국의 주요 신문과 잡지를 정독한다. 그가 내는 전화 요금은 월 8만 달러(9353만원)가 넘는다. 하루 수면 시간은 5시간. 오전 5시에 잠들어 오전 10시에 기상한다. 일 평균 근무시간은 17시간이다. 전용기를 이용해 이동하는 출장 거리만 연간 40만㎞가 넘는다. 재산이 ‘하루에 1040만 달러, 한 시간에 43만4000달러, 1초에 120달러씩 늘어난다’고 할 정도니 1분, 1초가 아쉬울 수밖에 없다.



그는 이렇게 분초를 다투며 돈을 벌었지만 쓰는 데도 남다른 모습을 보였다. 지난 1일 전세계 언론은 깜짝 놀랄 소식을 전했다. 알 왈리드가 전 재산(320억 달러ㆍ약 37조원)을 기부하겠다고 밝혔다는 내용이다. 세계 최고 기부왕인 빌 게이츠에 빗대 이번에는 그를 ‘중동의 빌 게이츠’로 불렀다. 이 기부는 2003년 그가 설립한 ‘알 왈리드 재단’을 통해 이뤄질 예정이다. 자카(Zakatㆍ자선기부)는 고백ㆍ기도ㆍ순례ㆍ금식과 함께 무슬림(이슬람 교도)이 지켜야 할 의무사항 중 하나다. 그는 이미 35억 달러를 기부했고, 이번에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혔다. 그의 기부의 변은 분명했다. “사람은 전성기 때 극적인 결정을 내려야 한다. 자선사업은 이슬람 신앙의 본질적 부분이다. 이 축복받은 나라에서 부를 일궜으니 환원하는 게 당연하다. 다른 문화간 이해 증진, 사회적 경제적 약자 지원, 재난 구호, 청소년 교육, 여성 권리 향상에 힘쓸 것이다.“



알 왈리드는 한국과도 상당한 인연을 맺고 있다. 그의 공식 전기인 『알 왈리드, 물은 100도 씨에서 끓는다』에 따르면 그는 82년 한국 기업이 맡은 사우디 수도 리야드 인근 군 막사에 장교 클럽을 건설하는 800만 달러짜리 공사의 컨설턴트로 참여하면서 사업가로 첫 발을 내디뎠다. 이때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던 그는 2011년 사우디 제다에서 홍수가 나 차량 피해를 입은 수재민에게 재단을 통해 기아차 1000대를 구입해 기증했다. 외환위기를 겪던 97년에는 대우와 현대차 전환사채를 각각 5000만 달러 어치씩 사주기도 했다.



하현옥 기자 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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