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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탄 94세 신격호 회장 … “후계자 누구냐” 묻자 “어? … ”

중앙일보 2015.07.30 02:30 종합 3면 지면보기
신격호 [박종근 기자]
재계 5위 롯데가(家) 오너십의 정점인 신격호(94) 총괄회장은 70년 가까이 한·일 양측 롯데에서 무소불위의 존재였다. 지금도 롯데 전 계열사 사무실엔 신격호 회장이 70대 시절 찍은 초상화가 걸려 있는데 특히 일본롯데에선 ‘초상화 숭배’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권위가 막강하다. 하지만 결국 두 아들 간의 경영권 분란에 휩쓸려 퇴진을 앞당기게 됐다.


‘원톱’ 열쇠 쥔 총괄회장 건강은

 이번 롯데그룹 2세 ‘형제의 난’을 두고 갖가지 해석과 추측이 나오는 이유 중 하나는 그의 건강 상태다. 그룹의 창업주이자 아들들의 후계 다툼을 정리해줘야 할 신 총괄회장의 입장이 뚜렷하지 않기 때문이다.



 90세를 훌쩍 넘긴 고령 탓이다. 이번 사태에서도 두 아들에 대한 의중이 애매모호하다. 올해 초 일본롯데를 총괄하던 신동주(61) 전 부회장을 모든 직위에서 해임할 때만 해도 신 총괄회장의 마음이 신동빈(60) 회장으로 굳어졌다는 게 자연스러운 해석이었다. 그런데 지난 16일 신 회장이 한·일 롯데의 ‘원 리더’를 선언한 지 불과 열흘 뒤인 27일 신 전 부회장 등과 함께 일본으로 날아가 직접 이름을 호명하며 일본롯데에서 신동빈 회장을 해임했다.



 신동주 전 부회장이 판단력이 흐려진 아버지를 부추겨 해임을 도모한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는 이유다. 신동빈 회장도 “연로한 아버지를 비행기를 태워 한국과 일본을 오가게 하다니 가족이라면 차마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분노했다고 한다. 신 총괄회장은 ‘장남의 난’ 실패 직후인 28일 밤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하는 과정에서 기자들이 ‘후계자는 신동빈입니까’라는 질문에 “어?…”라고 말한 뒤 침묵으로 일관했다.



 지난 5월 22일 스스로 ‘평생의 꿈’이라 불렀던 서울 잠실 제2롯데월드를 방문했을 때부터 심신은 많이 쇠약해진 모습이었다. 당시 신 총괄회장은 롯데타워 내 계단 부분에서 잠시 지팡이를 짚고 부축을 받으며 걷기도 했지만 대부분 휠체어로 이동했다. 롯데 관계자는 “2013년 사무실에서 넘어져 고관절 수술을 받은 뒤 고령에 따른 신체 약화가 겹치면서 건강이 더 악화됐다”고 전했다. 롯데 계열사 핵심 임원이 쇼핑몰 지도를 그린 종이판을 준비해 이동할 때마다 “여기가 지하 1층입니다!”라며 큰소리로 위치나 장소를 안내했다. 당시 한 계열사 대표는 대형 수족관 앞에서 “가오리예요 가오리!”라고 설명했지만 신 총괄회장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총 시찰 시간은 약 30분으로 단축됐다. 롯데 고위 관계자는 그러나 29일 “90세가 넘은 분이 매일 업무보고를 받는 것 자체로 대단하신 것”이라며 건강 이상설에 선을 그었다.



 신 총괄회장의 건강을 둘러싼 논란과 상관없이 이번 사태와 관련, 향후 그가 어떤 결단을 내릴지가 여전히 큰 관심사다.



 신동주-동빈 형제간에 전개되는 그룹지주사(롯데홀딩스) 지분 확보 경쟁 못지않게 신 총괄회장의 의중과 지분 증여 여부가 적지 않은 변수가 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 한 신경정신과 전문의는 통화에서 “치매가 아니더라도 90대 중반이면 옛날 기억을 불러오는 것은 가능하지만 새로운 정보를 입력해 분석한 다음 의사결정을 내리는 고강도의 뇌 활동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대형 로펌 소속 변호사는 그러나 “고령이라고 해도 정신적으로 제약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내린 의사결정이라는 점이 입증되지 않으면 지분 증여나 양도가 일단 적법한 것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그는 “질병·장애·노령 등으로 인한 정신적 제약이 있어 스스로 의사결정을 할 능력이 없는 경우 법원이 대신 의사결정을 해 줄 사람을 선정하는 ‘성년후견인’ 제도를 이용할 수 있지만 재벌가에서 이런 신청을 공개적으로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신 총괄회장의 심신이 예전 같지 않지만 여전히 이번 사태의 결말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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