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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관계, 양국 정상이 허심탄회하게 대화하면 반전

중앙일보 2015.07.30 00:54 종합 8면 지면보기
안보법제 반대 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총리. 일본의 식민지배와 침략에 대해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로 유명하다. [도쿄=오영환 특파원]


제2차 세계대전 종전 70주년을 맞아 일본의 선택에 전 세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해외에서 자위대의 무력행사 길을 여는 안보법제를 국민 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성립시킬 것인가. 전후 70년 총리 담화가 정말로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을 계승할 것인가. 한·일 간 현안인 위안부 문제에는 어떻게 나올 것인가. 이들 문제에서 아베 총리와 대척점에 있는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91) 전 일본 총리를 본사 김영희 대기자가 도쿄에서 만나 대담을 가졌다. 무라야마 전 총리는 현재 안보법제 반대운동에 앞장서고 있으며, 아베 내각에 사실에 바탕을 둔 역사관을 주문해 왔다. 대담은 28일 사민당 당사에서 1시간가량 진행됐다.

무라야마 - 김영희 대담





김영희 대기자(왼쪽)가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일본 총리와 28일 도쿄 사민당 당사에서 대담하고 있다.
김영희=무라야마 전 총리께서는 1945년 8월 15일 어디서 무슨 일을 하시다가 종전을 맞으셨습니까. 그때 패전 일본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셨는지요.



 무라야마=패전 당시 구마모토(熊本)현의 군대에 있었습니다. 일본 전체가 폭격당하고 원폭도 투하돼 마치 지옥이었는데 ‘아 정말로 전쟁이 끝났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동시에 앞으로 나라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걱정도 하게 됐습니다.



 김영희=바이츠제커 전 독일 대통령은 독일의 패전을 히틀러의 문명 파괴적인 폭정으로부터의 독일 국민 해방이라고 말했습니다. 마찬가지 논리로 일본의 패전을 군국주의 로부터 일본 국민의 해방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무라야마=그렇게 생각합니다. 당시는 언론의 자유는 물론 모든 자유가 없었습니다. 가까스로 전쟁이 끝나 해방된 기분이었습니다.



 김영희=자민당과 공명당이 지난 16일 중의원에서 안보관련법 11개를 가결한 데 대해 반대여론이 들끓고 있습니다. 아베 내각에 대한 지지율도 30%대로 떨어졌습니다. 1만6000명의 학자가 항의성명에 서명하고 일반 시민들도 상당수 법안에 반대해 일본 전역에서 시위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여론의 반대가 아베 총리를 실질적으로 견제하는 효과를 낼 것으로 보십니까.



 무라야마=(국민이) 점점 더 추궁해 나갈 것으로 생각합니다. (안보법안에 대해선) 무엇보다 압도적 다수의 헌법학자가 위헌이라고 단정하고 있습니다. 이를 무시하고 수의 힘으로 처리를 강행하려는 국회 운영을 보면서 젊은 사람들이 ‘일본이 이래도 괜찮은 것인가’라며 떨쳐 일어났습니다. 이런 힘은 전국적으로 확산될 것입니다.



 김영희=아베 총리의 정책을 보면 의회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인상을 주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무라야마=그렇습니다. 정말로 (총리) 독재정치입니다. 압도적인 대중이 들고일어나 반대하고 있고, 게다가 보수계의 여론조사를 봐도 압도적으로 (내각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수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국민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강행하는 것은 파쇼와 같은 것입니다. 이것은 옳지 않습니다.



 김영희=다르게 말하면 일본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무라야마=그렇게 생각합니다.



 김영희=아베 총리는 8월 15일 직전 각의 결정이 아닌 개인 담화 형식으로 전후 70년 담화를 낼 계획인 것 같습니다. 아베 총리는 무라야마 담화와 고이즈미 담화 등 역대 내각의 담화를 계승한다고 하지만 ‘식민지 지배’와 ‘침략’, ‘반성’과 ‘사죄’ 가운데 식민지 지배와 사죄가 들어갈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습니다. 무라야마 담화의 당사자로서 종전 70년을 맞는 일본의 기본 자세는 어떠해야 하고, 그 연장선상에서 아베 담화의 바람직한 방향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무라야마=나의 뒤를 이은 후계 내각은 모두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한다고 국제적으로 약속했습니다. 아베 총리도 1차 내각 때는 계승한다고 해서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2차 아베 내각이 들어서면서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한다고 했지만 침략은 국제법적인 정의가 없다고 하면서 여러 의문을 나타냈습니다. 70주년 담화는 국제적으로 매우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역사적 사실은 시간이 지났다고 해서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담화는) 과거의 역사적인 사실을 확실히 바탕으로 삼아야 합니다. 과거의 역사인식을 바꾸려고 하는 사고방식은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영희=총리 개인 담화로 하려는 데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무라야마=총리 개인 담화든, 각의(국무회의) 결정 담화든 총리가 내는 담화입니다. 외국 입장에선 일본을 대표하는 총리 담화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구별하지 않는 쪽이 좋다고 봅니다.



 김영희=한·일 관계는 6월 22일 국교 정상화 50주년 기념행사에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각각 교차 참석하면서 개선의 계기를 마련한 듯했습니다. 그러나 일본 근대 산업시설의 세계 문화유산 등록을 둘러싼 마찰로 따뜻해지려던 분위기가 다소 냉각된 것 같습니다. 특히 한·일 간 최대 현안인 위안부 문제에서 큰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위안부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보십니까.



 무라야마=한국 속담에 결자해지(結者解之)가 있습니다만 그 말 그대로입니다. 위안부 문제는 일본 군대가 만든 것으로, 일본 정부가 한 것입니다. 일을 벌인 쪽에서 해결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는 의사를 정부 책임하에 나타내고 논의를 진척시켜 나가야 합니다.



 김영희=그런 의지가 아베 총리에게 있다고 보십니까.



 무라야먀=의지 여부에 관계없이 그것밖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김영희=일본 내 혐한(嫌韓) 분위기가 도를 넘고, 일부 정치인 은 그런 분위기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되는데 동의하십니까. 근본적인 해결책은 없습니까. 한국 국민과 정부에 대해서도 하실 말씀이 있으실 것 같은데요.



 무라야먀=일본은 언론 자유가 있기 때문에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국민은 (한국이) 이웃 국가이기 때문에 그런 것을 넘어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양국이) 서로 도와가며 가야 한다는 마음을 전체적으로 갖고 있다고 봅니다. 한국 국민도 그렇다고 봅니다. 이웃 나라이기 때문이지요.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이 방일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낸 후에 한류 붐이 일었습니다. 그것이 본래의 모습입니다.



 김영희=어떻게 해야 그런 분위기를 부활시킬 수 있겠습니까.



 무라야마=양국 정상이 온화하게 허심탄회하게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상들이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해서 서로 협력해 나간다고 하는 분위기가 나오면 (혐한 현상 등은) 해소됩니다. 언론이 쓸데없이 선동하지 말고 원래의 모습을 보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김영희=8월 13일과 14일 서울에서 열리는 ‘2015 동아시아평화국제회의’가 발표할 ‘2015 동아시아 평화선언’은 일본의 평화헌법 9조가 동아시아 평화의 주춧돌이며 불행한 과거사의 반복을 방지하는 최선의 장치의 하나라고 할 예정입니다. ‘전쟁할 수 있는 보통국가’를 지향하는 아베 총리의 대외전략 구도 아래서 평화헌법이 유지될 수 있겠습니까.



 무라야마=일본은 전후 70년간 평화헌법 아래서 전쟁은 하지 않는다고 해서 지금까지 평화가 유지됐습니다. 헌법 해석을 바꿔 전쟁이 되지 않는 국가를 전쟁이 가능한 국가로 만드는 것은 엄청난 것입니다. 위기가 있으면 외교 노력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그것이 평화헌법 아래서 당연히 일본이 취해야 할 길입니다. 헌법을 바꿔 함부로 전쟁이 가능한 나라가 되는 것은 절대로 허용돼서는 안 됩니다.



 김영희=오랜 시간 감사합니다.



정리=오영환 특파원 hwasan@joongang.co.kr





무라야마 전 총리는



전후 50년인 1995년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을 반성·사죄한 무라야마 담화의 주인공. 94년 사회당(현 사민당) 당수로서 자민당·신당 사키가케와의 연정을 통해 총리에 취임했다. 55년 자민당 결성 이래 2010년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가 탄생할 때까지 자민당 당적을 한 번도 가지지 않은 유일한 총리였다. 1924년 규슈 오이타(大分)현 오이타시에서 어부의 아들로 태어나 오이타시·현 의원을 거쳐 72년 처음으로 중의원 의원에 당선됐다. 통산 당선 횟수는 8회. 총리 재임 시에는 사회당 정책을 전환해 ‘자위대 합헌과 미·일 안보조약 견지’ 입장을 밝혔다. 2000년 정계를 은퇴하면서 재단법인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의 2대 이사장을 맡았다. 현재 사민당 명예당수로서 오이타시와 도쿄를 오가며 안보법제 반대 등을 위한 시민단체 운동에 활발히 참가하고 있다. 아흔을 넘어서도 왕성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건강 비결에 대해서는 “꼭꼭 씹어먹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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