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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잡겠습니다 … 필승, 육군 병장 이정협

중앙일보 2015.07.30 00:02 종합 26면 지면보기
육군 병장 이정협이 동아시안컵에 출격한다. 그는 지난 1월 호주 아시안컵 때처럼 포효를 꿈꾸고 있다. [뉴시스·한국프로축구연맹]


“이 병장, 북한에 지면 영창 감이야.”

“지면 영창 감이다” 동료들 농담
현역 군인의 패기 보여줄 것



 다음달 1일 중국 우한에서 개막하는 동아시안컵(JTBC 단독 생중계)에 출전하는 축구대표팀 공격수 이정협(23)이 요즘 자주 듣는 말이다. 이정협은 군 팀인 상주 상무 공격수이자 대한민국 육군 병장이다. 그래서 8월 2일 중국전, 5일 일본전보다 9일 열리는 북한전이 더 특별하다. 지난 27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이정협은 “군인의 패기로 북한전에 임하겠다”고 말했다. 축구대표팀은 출국 전날인 30일 영화 ‘연평해전’을 단체 관람하며 필승 의지를 다진다.



 이정협의 별명은 ‘군데렐라(군인+신데렐라)’다. 무명 공격수였던 이정협은 지난 1월 호주 아시안컵에 깜짝 발탁돼 2골을 터뜨리며 한국의 준우승을 이끌었다. 이제는 대표팀 주축 공격수(A매치 11경기 4골)로 성장했다. 이정협의 다음 목표는 7년 만의 동아시안컵 우승이다. 이정협은 29일 파주 스타디움에서 열린 축구대표팀과 K리그 챌린지 서울 이랜드와의 연습경기에서 결승골을 넣으며 1-0 승리를 이끌었다.



 - 군인이라 북한전이 특별하겠다.



 “주변 분들이 ‘북한에는 절대 지지 말라’고 당부했다. 오는 10월 경북 문경에서 세계군인체육대회가 열린다. 북한 참가가 확정되지 않았지만 우리 팀은 아침마다 경기장 15바퀴를 뛰며 치열하게 준비 중이다.”



 - 일본 감독은 지난해 브라질 월드컵에서 알제리를 이끌고 우리에 2-4 참패를 안긴 할릴호지치다.



 “선수들 모두 복수하고 싶을 것이다. 박지성(34) 형이 2010년 5월 사이타마에서 열린 한·일전에서 펼친 ‘산책 세리머니(천천히 달리며 일본 응원단을 응시)’를 보고 감동을 받았다. 나도 한·일전에서 골을 넣는다면 산책 세리머니를 한 뒤 거수경례를 하고 싶다.”



 - 아시안컵에서 거수경례 세리머니를 했다.



 “아시안컵 직전 사우디아라비아와의 평가전에서도 골을 넣은 뒤 거수경례를 했다. 엄지손가락을 펴야 하는데 구부렸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 이후 장현수(24·광저우 부리)를 세워두고 엄지손가락에 쥐가 날 만큼 연습했다. 그 덕분에 아시안컵 호주전에서 골을 넣은 뒤 멋지게 거수경례를 할 수 있었다. 대회 후 육군참모총장께서 ‘국군의 위상을 높여줘 고맙다’고 쓴 손편지를 보내주셨다.”



 - 무명 생활이 길었다.



 “동래고 2학년 때 지동원(24·아우크스부르크)이 뛴 광양제철고에 0-5로 졌다. 감독님께 울면서 ‘잘하는 친구들이 많아 성공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축구를 그만두겠습니다’고 말한 적도 있다. 프로 데뷔 이후엔 ‘수비형 스트라이커’란 소리도 들었다. 지난해 12월 대표팀 첫 소집 때 군복을 입고 공항에 갔다. 차두리(35·서울) 형이 ‘건장한 군인이 사인 받으러 온 줄 알았다’고 뒤늦게 말씀하시더라(웃음).”



 - 슈틸리케 감독의 황태자로 불리는데.



 “감독님이 아시안컵을 앞두고 ‘넌 대타가 아니다. 네가 필요해서 뽑았다. 네가 잘하든 못하든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고 힘을 실어주셨다. 나를 솔다도(soldado·스페인어로 군인)라 부르셨다. 아시안컵 첫 경기 때는 22명의 유니폼 색깔이 똑같아 보일 만큼 긴장했다. 당시엔 무작정 죽기살기로 뛰었는데 이젠 발전한 모습을 보여드려야 한다.”



 - 아시안컵 이후 달라진 점은.



 “거리에서 ‘혹시 이정협 아니냐’며 알아봐 주는 팬들이 종종 있다. 아시안컵 후 잠시 들떴지만 혼자 방에 머물며 마음을 다잡았다. 군데렐라 꿈에서 깨기까지 딱 2주 걸렸다. 국군체육부대 주위에 산밖에 없어 축구에 집중할 수 있다. 대표팀에 다녀온 뒤 여유도 생기고, 동료들의 움직임도 보이기 시작했다.”



 - 등번호 18번은 황선홍(47) 포항 감독의 현역 시절 번호인데.



 “2002년 부산에서 열린 한·일 월드컵 한국-폴란드 경기를 보러 갔다. 황 감독님은 당시 노장인데도 몸을 사리지 않았다. 나도 황 감독님처럼 팀을 먼저 생각하는 플레이를 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동아시안컵에서 누가 경기에 출전하든 선수들이 하나가 돼 우승하는 게 목표다.”



 - 축구판 미생(未生)이다.



 “아버지는 화물선원, 어머니는 식당 일을 했다. 누나는 나 때문에 미술을 포기했다. 얼마 전 ‘나도 이정협처럼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달려볼란다’란 댓글을 봤다. ‘가족을 생각하며 노력한 게 헛되지 않았구나’ 생각했다. ‘군데렐라’란 별명을 들을 때면 군대에 말뚝을 박아야 할 것만 같다. 10월 12일 전역 후에도 계속 군데렐라라 불리고 싶다. 초심을 잃지 않도록….”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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