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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취제 없이 이 뽑아야" 명물 숫사자 '세실' 죽인 치과의사 비난

중앙일보 2015.07.29 23:28
짐바브웨 왕립국립공원에 사는 13살 숫사자 ‘세실’은 스타였다. 특유의 우아함에 검은 색 갈기 덕분이다. 옥스퍼드대 연구팀이 위치추적기를 달았던 연구 대상이기도 했다.



세실은 그러나 이달 초(1일로 추정) 참혹하게 살해됐다. 황게 국립공원에 머물던 세실은 차에 매단 죽은 동물의 사체와 자극적인 향수로 공원 밖으로 유인됐고 사냥꾼의 화살에 맞아 이틀간 쫓기다 결국 총탄에 목숨을 잃었다. 이후 가죽이 벗겨졌고 머리도 잘렸다.





짐바브웨 법상 국립공원 안에서 사냥이 금지되어 있지만, 국립공원 밖으로 나온 밀림의 왕은 인간에게 하나의 사냥감일 뿐이었다.



세실을 사랑했던 이들이 공분했다. 제각각 카메라에 담았던 사진을 인터넷에 올리며 추모하기도 했다. 사냥꾼이 스페인 출신으로 알려지면서 스페인을 향해 비판이 쏟아졌다. 그러다 영국의 데일리 텔레그래프가 27일(현지시간) 미국 미네소타 출신의 치과의사인 월터 파머(55)를 지목하면서 파머가 쫓기게 됐다. ‘사냥꾼이 사냥 당하게 된 격’이다. 텔레그래프는 “파머가 현지인들에게 5만5000달러(6300만원) 주고 사냥했다”고 보도했다.



파머가 운영하는 치과병원의 인터넷 홈페이지가 다운됐다. 병원 문도 닫았다.



파머는 잠적 상태에서 미네소타주 지역신문 미니애폴리스 스타트리뷴을 통해 성명을 냈다. 그는 “이달 초 사냥 여행을 위해 짐바브웨로 향했고 전문 가이드를 몇 명 고용했다. 그들이 모든 허가를 받았기 때문에 내가 아는 한 사냥은 합법적이고 적법하게 처리됐다”고 주장했다. 또 “세실이 지역 스타이자 연구대상인 줄 사냥이 끝날 때까지 몰랐다”며 “사냥 행위를 깊게 후회하지만 책임 있게 행동했고 모든 게 합법적으로 이뤄졌다”고도 했다.



하지만 파머의 미심쩍은 사냥 전력 때문에 의혹이 가시지 않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파머가 2006년 위스콘신의 허가 지역 밖에서 흑곰을 사냥했다가 적발돼 1년간 자격 정지와 함께 벌금 3000달러를 냈다고 전했다. 파머는 2009년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활 사냥 솜씨를 자랑하기도 했다. 그가 올린 사진을 보면 큰 뿔 산양, 표범, 곰 등 다양한 동물을 사냥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에는 아프리카에서 코뿔소를 사냥한 후 그 앞에서 찍은 사진을 공개하기도 했고 175파운드(약 80kg)짜리 표범을 짐바브웨에서 사냥한 사진도 올렸다.



세실의 사냥 소식이 알려지며 그에 대한 비판도 확산되고 있다.199년부터 세실의 이동경로를 추적해온 데이비드 맥도널드 교수는 CNN과 인터뷰를 통해 “세실이 사냥 허가 구역으로 향하는 모습을 초조한 마음으로 지켜봤던 게 불과 몇 달 전”이라며 “그 때 세실은 공원의 보호구역 안으로 돌아왔지만 이번에는 그렇지 못했다. 엄청난 슬픔을 느낀다”고 말했다.



구글과 트위터 등에서는 #세실사자(CecilTheLion)라는 해시태그가 확산됐다. 파머의 이름도 전 세계 트렌딩에 이름을 올렸다. 온라인에는 ‘세실을 위한 정의’라는 청원사이트가 개설됐으며 26만 5000명 이상이 '짐바브웨 정부가 더이상 위험종에 대한 사냥 허가를 내주지 않기를 바란다'며 서명했다. 페이스북 사용자들은 “파머를 공개적으로 망신 주어야 한다”거나 ‘똑같이 파머를 사냥해 죽여야 한다’, ‘마취제 없이 그의 이를 뽑아야 한다’는 글을 올렸다.



한편 짐바브웨 당국은 세실을 사냥한 혐의로 파머가 고용했던 사냥꾼과 농부를 체포했다. 사양허가 없이 사냥을 했다는 이유다. 이들은 최대 15년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 짐바브웨측은 파머도 밀렵 혐의로 기소될 수 있다고 밝혔다.



세실의 이름은 과거 영국의 모험가이자 케이프식민지의 총리였던 세실 로즈의 이름을 딴 것이다. 그는 황금전쟁을 일으켜 아프리카 원주민을 학살하고 대량의 금과 다이아몬드를 영국으로 가져온 것으로 유명하다. 세실 로즈의 동상은 최근 케이프 타운에서 끌어내려졌다. 아프리카에 살고 있는 사자는 최대 3만 5000마리로 추정되며 연간 665마리가 사냥당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2013년 기준 짐바브웨에서만 49마리의 사자가 사냥당했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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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첨부



세실 [AP=뉴시스]







짐바브웨에서 표범을 사냥한 파머. [사진=트로피헌트 아메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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