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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부동산 아랫목에만 온기가 도는 까닭

중앙일보 2015.07.29 00:02 종합 28면 지면보기
김종윤
중앙SUNDAY 경제산업에디터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취임 전부터 화끈했다. 지난해 7월 인사청문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여름에 겨울옷을 입고 있다. 주택 거래 규제를 정상화 하겠다. 가계부채가 조금 늘겠지만, 대출 구조가 개선되면 리스크가 줄게 될 것이다.” 즉각 행동이 따랐다. 취임하자마자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각각 60%와 70%로 완화했다. 간단히 말해 금융회사에서 돈 빌리기 쉽게 만들었다. 고꾸라지던 경기를 확 잡아내겠다는 의지였다.

 한국은행도 윽박질렀다. 표현은 점잖았다. “경제 활성화를 위해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적절한 결정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속내는 기준금리를 내리라는 뜻이다. 이주열 총재가 이끄는 한은 금통위는 처음에는 왔다 갔다 했지만 나름 일관성을 보였다. 금통위의 움직임을 세밀하게 관찰한 시장에서는 이런 결론을 냈다. ‘최 부총리가 내리라고 하면 내리더라.’

 기준금리는 지난해 중순 이후 줄곧 내려가 현재 1.5%다. 금융회사에서는 얼른 돈을 빌려 가라고 금고문을 열었다. 한은은 금리를 내려 이자 부담을 줄여 주었다. 시중엔 ‘빚내서 집 사라’는 신호가 넘쳤다.

 울림이 컸다. 올 들어 6개월간 서울 아파트는 6만5000여 가구가 거래됐다. 그 전 6년간(2009~2014년) 상반기(1~6월) 평균 거래량이 3만2000가구였다. 가격도 뛰었다. 지난 6개월간 서울 아파트값 상승 폭은 2.2%나 됐다. 역시 최근 6년 새 최대 상승이다.

 이 정도로 아랫목에 불을 지피면 온기는 서서히 윗목으로 퍼지는 게 종전 한국 경제의 공식이었다. 아무리 못해도 방 중간까지는 데워졌다. 부동산은 경기 부양 효과가 큰 업종이다. 아파트를 지으면 미장에서 인테리어까지 고용 효과가 크다. 공급되는 각종 자재의 규모도 크다. 단기간에 경기를 띄우기 위해 전가의 보도처럼 부동산을 꺼내는 이유였다.

 1년이 지났다. 분위기 참 이상하다. 아랫목엔 온기가 돌긴 돈다. 그런데 그게 전부다. 이마저 곧 식을 것 같아 걱정스럽다. 최 부총리가 취임한 지난해 3분기부터 경제성장률은 4개 분기 연속 0%대로 바닥을 면치 못했다. 올 2분기에도 0.3%에 그쳤는데 그나마 건설투자가 1.7% 성장해 버텼다. 민간 소비는 0.3% 감소했고, 순수출의 성장 기여도는 4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영향이 컸지만 메르스 이전인 4~5월에 이미 광공업 생산은 줄기 시작했고 투자도 저조했다.
 


 이런 숫자, 불길한 징조다. 내수와 수출 모두 일시적 침체가 아닐 수 있어서다. 구조적 저성장의 덫에 갇히는 게 아니냐는 암울함이 배어 있다. 부동산을 경기 부양 불쏘시개로 써봤자 효과가 별로인 건 그런 이유다. 최경환 경제팀이 대책이라고 쓰는 카드는 구태의연했다. 단기 부양책도 펴야 하지만 더 필요한 건 ‘구조개혁’이다. 당장 고통스러워도 썩은 상처를 도려내야 새 살이 돋는 법이다. 4대 개혁(공공·노동·금융·교육)을 하겠다고 나서긴 했다. 미덥지 않다. 여기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최경환 경제팀은 출발부터 한계가 있어서다.

 최 부총리는 현역 3선 지역구 의원(경북 경산-청도)이다. 친박계의 좌장 격인 힘 있는 정치인이다. 한때 여권의 차기 대권 후보군에 포함되기도 했다. 이런 경력, 화려하지만 능력 있는 경제부총리와는 별개다. 내년 4월 총선 출마는 기정사실이다. 비록 여당 깃발만 꽂아도 당선되는 지역구라고 해도 실적이 필요하다. 더 큰 정치인이 되려면 더욱 그렇다. 이런 현실에서 한참 후에 효과가 나는 구조개혁의 가시밭에 몸을 던질 수 있을까.

 쉬운 길을 택한 부작용은 심각하다. 부동산이라는 달콤한 사탕에 취한 순간 가계 빚은 1100조원을 넘어섰다. 빚의 둑이 무너졌다. 겁이 난 걸까. 갑자기 급선회했다. 1년 만에 “함부로 빚내지 마라”로 돌변했다.

 서민들은 당혹스럽다. 최 부총리가 자랑스러워하는 ‘거래 활성화’의 뒷면에는 어두운 그림자도 배어 있다. 집을 산 상당수는 사고 싶어서 산 게 아니다. 미친 전셋값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빚낸 사람들이다. 전셋값은 여전히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다. 내년부터는 빚내기도 힘들어진다. 전세도 못 살고, 주택담보대출 받기도 어려워지면 선택은 하나밖에 없다. ‘월세’. 월세 내면 소비는 더 줄어든다. 살기 더 팍팍해진다. 부동산 불쏘시개가 젖은 땔감으로 전락하는 건 시간 문제다. 박근혜 정부의 신뢰도는 바닥으로 떨어진다.

 해법은 없는가. 결자해지(結者解之)가 있다. 최 부총리, 유일호 국토교통부 장관, 유기준 해양수산부 장관 등 국회의원 겸직 장관들이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한국경제호(號) 구하기’에 매진하는 거다. 박근혜 정부의 임기는 이미 반을 돌았다.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는데 경제팀은 마음이 콩밭(총선)에 가 있는 ‘식물 장관’들로 꾸려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개혁에 동력을 싣고, 경기 불쏘시개를 활활 타오르게 할 수 있겠는가. 의원을 겸하는 장관들이 기득권을 내려놓고 경제 살리기에 헌신하는 장면, 얼마나 멋진가. 이게 박근혜 대통령이 중시하는 ‘의리의 길’이 아닐까.

김종윤 중앙SUNDAY 경제산업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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