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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희의 시시각각] ‘갓 영만’으로 돌아온 색종이 아저씨

중앙일보 2015.07.29 00:02 종합 30면 지면보기
양선희
논설위원
지난 주말 다 큰 아들 녀석이 TV에 코를 박고 싱글벙글했다. 꽤 연세가 있어 보이는 아저씨가 색종이를 오리고 붙이며 만들기를 가르치는 프로였다. 자기가 어렸을 때 접었던 종이 작품들은 다 아저씨한테서 배운 것이란다. 색종이 아저씨 김영만씨의 귀환에 2030세대가 열광한다는 건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 젊은이들은 그를 ‘갓(God) 영만’으로 부르며 그의 방송에 눈물을 흘린다고도 했다. 그는 2030세대의 추억팔이 혹은 힐링과 위안의 아이콘으로 꼽혔다. 한데 아들과 함께 방송을 보면서 ‘갓 영만 현상’을 젊은 세대가 추억팔이나 하는 걸로 말하는 건 오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은 추억이 아니라 그가 여전히 색종이·종이컵·빨대 같은 것들로 말하는 인형, 도깨비 같은 것들을 만들어 내는 데 감탄했다. 이에 그는 힘없는 작은 아이들에게 색종이로 세상을 만드는 법을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고, 그래서 아이들이 세상을 좀 더 즐겁고 만만하게 볼 수 있도록 도와준 어른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인형 눈·코를 큼지막하게 붙이면서 “아이들 것은 다 크게 만들어 줘라. 그래야 마음도 커진다”거나 인형 눈을 노란색 색종이로 붙인 것을 누군가 황달이라고 하자 “옛날엔 빨간색으로 눈을 붙여도 아무 말도 못했는데 황달이라네. 다 컸네”라며 감탄하는 모습에 가슴이 뭉클해진 것은 오히려 나였다. 그는 젊은이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아는 어른이었다.



 한편으론 그의 등장에 아이돌 스타보다 더한 열광을 보내는 젊은이들이 딱했다. 아이들은 어른 세대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소통할 수 있는 어른에 대한 갈증을 느낀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세대 단절’ ‘세대 갈등’ ‘세대 전쟁’이 마치 이 시대의 키워드처럼 나대고 있지만 말이다. 실제로 우리 사회의 세대 갈등에 대한 위기의식은 매우 높다. 중앙SUNDAY가 서울 행정대학원과 조사한 ‘국민인식 조사’를 보니 응답자 두 명 중 한 명(48.2%)꼴로 세대 갈등을 심각한 사회문제로 인식했고, 갈등의 정도는 1(매우 낮음)~5(매우 높음)점 척도로 점수를 매긴 결과 3.43점이나 됐다.



 무엇이 이런 갈등을 만들었을까. 이유는 많다. 일자리 전쟁은 가장 눈에 띄는 첨예한 갈등요인이다. 40%대의 청년고용률, 100만 명이 넘는 청년 백수. 정부는 지난 월요일 청년일자리 대책을 내놓았는데 대다수가 인턴직 등으로 지속가능하지가 않다. 여기에 명예퇴직 등 기성세대의 양보를 담보로 늘리는 자리도 많다. 일자리가 제로섬게임이 된 시대에 일자리를 구하는 젊은 세대와 지키려는 기성세대가 충돌할 수밖에 없게 된 거다.



 그러나 어느 시대든 어떤 층위에서든 구조적 갈등요인은 항상 있다. 갈등을 위기로 키우는 건 상대에 대한 이해 부족 정도가 아니라 이해하지 않으려는 강한 의지 혹은 오해의 시나리오가 작용한 때였던 것 같다. 지금이 바로 구조적 상황뿐 아니라 세대 간 오해가 증폭되는 때는 아닐까. 이런 오해의 상당 부분 책임은 기성세대에 있다고 본다.



 한 예로 스스로를 ‘삼포세대’ ‘칠포세대’라며 자조하는 젊은이를 ‘열정페이’로 거리낌 없이 착취하는 건 기성세대다. 포기밖에 대책이 없도록 사회를 만든 책임도 기성세대에 있다. ‘한강의 기적’이라는 흘러간 옛 노래를 되뇌며 대책 없이 젊은이의 나약함을 훈계나 하려 드는 어른에게 누가 공감하겠는가.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이고, 우리에겐 살아내야 할 현재와 미래가 있는데.



 젊은이에게 ‘포기’를 강요하는 이 어려운 시대에 기성세대가 할 일은 훈계나 회고담이 아니라 그럼에도 무언가 모색하는 젊은 세대를 응원하고 응석을 받아 주는 건 아닐까. 색종이 아저씨처럼 말이다. 아저씨는 아이들이 아니라 기성세대가 보고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의 웃는 얼굴, 아이들의 말을 알아듣는 그의 소통 방식, 자신이 아는 걸 아낌없이 주려는 태도…. 그럼 고단한 삶은 변치 않겠지만 그래도 우리 아이들 마음은 따뜻해지지 않을까.



양선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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