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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35번 환자, 그 문제는 끝나지 않았다

중앙일보 2015.07.29 00:02 종합 31면 지면보기
이상언
사회부문 차장
제동장치가 고장 난 열차의 기관사가 두 갈래 길에 다다랐다. 원래 행로 쪽 선로에는 여러 명의 인부가 작업 중이다. 응당 기차가 멈춰 설 줄 알고 무방비 상태로 있다. 다른쪽 선로 위에는 한 명의 인부가 있다. 당신이 기관사라면 예정된 길로 갈 것인가, 아니면 방향을 틀 것인가. 진로를 바꾸면 한 사람의 희생으로 여러 목숨을 구할 수 있다. 하지만 기관사는 살인 또는 상해치사의 죄를 짓게 된다. 정해져 있던 길로 그대로 가면 사고의 원인이 그에게 있지 않기 때문에 져야 할 법적 책임은 크지 않다. 윤리학 강의(특히 공리주의 수업에서)에 단골로 등장하는 ‘기관사의 딜레마’다.



 지난 6월 4일 오후 박원순 서울시장은 기관사와 비슷한 심정으로 고민했을 것이다. 삼성서울병원 의사의 행적 공개에 따른 당사자의 피해와 공개하지 않았을 때 생겨날 수 있는 서울시민(더 나아가 국민)의 위험을 따져가면서. 인권변호사 출신인 박 시장이 그 의사가 받을 사회적 지탄과 그로 인한 정신적 충격을 고려하지 않았을 리 없다는 믿음을 전제로 한 얘기다.



 그 의사는 ‘35번 메르스 환자’다. 부인과 자식이 있는 38세 외과 전문의다. 50여 일간 서울대병원에서 치료받는 중이다. 메르스는 완치됐지만 폐 손상으로 인공호흡기에 의지하고 있다. 입원 초기에 한 방송사가 ‘사망’이라고 오보를 내는 소동도 있었다.



 세상에는 아직도 그를 비난하는 여론이 있다. 박 시장의 결정을 칭찬하고 정부의 무능을 비판하는 맥락에 주로 등장한다. 선로 위에서 홀로 작업하던 인부와 달리 그를 ‘무고한’ 피해자로 보지 않는 시각이다. 그가 증상 발현을 알고도 아파트 재건축 조합원 총회 등에 참석했다고 의심한다. 하지만 본인의 주장은 다르고, 이를 무시할 수 있는 분명한 근거도 없다. 그로 인한 메르스 감염이 발생하지 않기도 했다. 엄밀하게 보면 메르스 환자와 일반 환자가 뒤섞여 있던 응급실(더 나아가 우리나라 의료체계)에 책임이 있는 일이다.



 이해득실을 따지는 것 자체가 옳지 않아 보이지만 시중에는 ‘메르스 사태 최대 수혜자는 박 시장’이라는 말이 있다. ‘35번 환자의 병세는 박 시장이 악화시켰다’는 주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늦은 감이 있지만 박 시장이 그의 가족을 찾아가 “본의 아니게 상처를 줬다면 용서해달라” 정도로 미안한 마음을 표현하는 것은 어떨까. ‘사실상’의 메르스 종식 선언과 더불어 이 사태로 인한 원망도 함께 종식돼야 하지 않겠나.



이상언 사회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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