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하경 칼럼] “한쪽 손이라도 서로 붙잡고 있으면 …”

중앙일보 2015.07.29 00:02 종합 31면 지면보기
이하경
논설주간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는 넉 달 전 불의의 테러를 당한 뒤 특별한 책을 읽었다. 워싱턴포스트 기자였던 돈 오버도퍼의 저서 『두 개의 한국』이다. 한국의 식민지와 분단, 전쟁과 독재, 민주화, 남북 대결과 대화의 과정에서 미국의 역할과 시행착오를 냉정하게 기록했다. 리퍼트는 자신을 겨냥했던 분노의 뿌리를 알기 위해 이 책을 선택했을 것이다. 이왕이면 절친인 오바마 대통령에게 독후감을 들려주면 좋지 않을까.



 오버도퍼는 닷새 전 8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프린스턴대학을 졸업하고 1953년부터 2년간 주한미군 포병장교로 근무하면서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두 개의 한국』은 언론인으로 40년간 활약하다 93년 은퇴한 뒤 한·미 정책당국자들을 450여 회 인터뷰해서 97년에 출간한 한국 현대사 비록이다. 그는 한국 대통령과 정치지도자, 북한의 외교부장과 고위 관리들을 직접 만났다. 이 땅에서 벌어진 역사적 사실을 어떤 한국인보다도 철저하게 추적했다.



 오버도퍼는 미국이 한국을 두 번 배신한 사실을 적시했다. 하나는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지배권을 인정한 1905년의 가쓰라 태프트 밀약, 다른 하나는 신탁통치안을 제안한 45년의 얄타회담이다. 얄타회담 당시 미국 국무장관 에드워드 스테티니어스는 “한국이 도대체 어디에 박혀 있는 나라인지 아느냐”고 물었다는 어이없는 일화도 기록으로 남겼다. 오버도퍼는 “미국 정부는 한반도의 미래에 관해 그 주인인 한국인들과는 단 한 번도 협의한 적이 없었다”고 혹독하게 비판했다.



 휴가 중인 박근혜 대통령도 이 책을 읽으면 미국과 북한을 상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79년 6월 30일 박정희 대통령은 카터 미국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미국 측의 만류를 무시하고 주한미군 철수 반대의 논리가 담긴 장문의 서한을 꺼내 카터 앞에 내놓고 45분간 장황하게 설명했다. 분노한 카터의 턱 근육이 조용히 씰룩거렸다. 회담을 마치고 대사관저로 향하는 차 안에서 카터는 분기탱천한 어조로 박정희를 비난하면서 “어떠한 반대 의견을 무릅쓰더라도 철수를 강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홀브룩 국무부 차관보는 “동맹국 정상 간의 회담이라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했다”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주한미군 철수는 무산됐다. 약소국 대통령 박정희가 세계 최강국인 미국과 담판을 벌여서 거둔 외교적 승리였다.



 박정희는 핵무기 개발 추진을 놓고도 미국과 갈등했다. “한·미 관계가 와해될 수도 있다”는 경고에도 물러서지 않았다.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은 비밀전문에서 “ 미국의 안보공약을 불신하게 됐고, 미국에 대한 군사적 자주성을 확보하려는 박 대통령의 염원을 반영하고 있다는 복잡성을 띠고 있다”고 했다. 박정희의 생존전략은 혈맹인 중국과의 불화를 감수하면서까지 핵개발에 올인하는 북한의 사정과 의도를 파악하고 대처하는 데 참고가 될 것이다.



 최초의 남북대화 장면은 남북의 지도자가 놓쳐선 안 될 대목이다. 김일성은 72년 5월 4일 평양에서 박정희를 대리한 중앙정보부장 이후락을 만났다.



 김일성:우리는 어떤고 하니 외세에 의존하는 통일엔 반대입니다. 우선 이것이 박 대통령과의 의견 일치입니다.



이후락:박정희 대통령께서는 외세의 간섭을 가장 싫어하는 분이라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그 무렵 박정희는 “적어도 한쪽 손이라도 서로 붙잡고 있으면 적이 공격해 올 것인지 아닌지 그 여부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오버도퍼는 남북대화를 통해 북한이 외교적 고립을 타파하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대화 개시 전인 70년 말 북한과 외교관계를 수립한 나라는 35개국이었지만 4년 만에 93개국으로 늘었다. 96개국과 교류하고 있는 남한과 비슷한 숫자였다. 그는 “양측 모두 공존의 실험이라는 중요한 결론을 얻었다”고 평가했다.



 2013년 개정판의 공저자는 로버트 칼린이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동북아담당 국장으로 북·미 회담에 참가했고, 평양을 30번가량 방문한 한반도 문제 전문가다. 칼린은 지난해 7월 나와 만나 “북한이 올해 초부터 계속해서 긍정적 제스처를 취해오고 있으며 답변을 기다리고 있지만 답은 오지 않고 있다. 이 상황은 위험하다”고 했다. 몇 달 뒤 대사로 내정돼 한국에 온 리퍼트와 오찬을 함께 했다. 나는 칼린의 경고를 떠올리면서 “미국은 지금 북핵 포기를 대화의 전제 조건으로 내걸었는데, 대화의 결과로 북핵 포기를 끌어낼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리퍼트는 “정말 잘 얘기해줬고, 많이 생각하겠다”고 했다.



 분단 70년을 맞았지만 남북관계는 좀처럼 풀리지 않고 있다. 리퍼트가 오버도퍼와 칼린의 깊은 고민을 이해했다면 절친 오바마에게 남북한을 좀 더 이해하고 유연하게 접근하도록 건의할 것으로 기대한다. 그래야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한 박근혜와 오바마의 생산적인 대화도 가능해진다.



이하경 논설주간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