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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단보도 건너며 비보잉 … 시민이 만든 거리의 예술

중앙일보 2015.07.28 00:03 라이프트렌드 1면 지면보기



‘커뮤니티 아트’ 활짝

예술이 거리로 나오고 있다. 시민이 공연·전시 같은 예술을 단순히 관람하던 수준을 넘어 직접 참여한다. 길거리 공연장은 즉석에서 시민 참여를 유도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판소리·연극을 기획해 직접 무대에 서기도 한다. 시민이 만들고 공연하는 ‘커뮤니티 아트’ 시대다.



‘둥둥~두둥둥~두두둥둥~두둥둥.’ 횡단보도에 파란불이 켜지자 심장이 들썩일 정도로 북소리가 울린다. 퍼커션의 흥겨운 리듬을 타며 비보이(B-boy·힙합을 전문으로 하는 춤꾼)가 춤추기 시작한다. 길을 건너던 사람들이 흠칫 놀라 돌아보더니 하나둘씩 박수로 화답한다. 그렇게 파란불이 켜진 40초간 짤막한 퍼커션·비보이 합동 공연은 빨간불이 켜지면서 잠시 멈췄다. 다시 파란불이 켜지자 이번엔 퍼커션의 북소리에 맞춰 현대무용수들이 횡단보도를 건너며 리듬을 탄다. 쭈뼛거리던 시민 중 몇몇이 리듬에 몸을 맡긴다.



보행자는 춤추고, 운전자는 박수 치고



지난 4일 성균관대 앞 및 대학로사거리(혜화역 1번 출구 앞)에서 네 시간 동안 진행된 플래시몹(불특정 다수의 사람이 특정한 날짜·시간·장소를 정해 약속된 행동을 하고 흩어지는 행위) 공연의 한 장면이다. 융합공연예술축제 ‘파다프(PADAF) 2015’ 기간 중 커뮤니티 댄스 프로젝트로 열린 ‘춤추는 횡단보도’다. 이번 공연 기획자인 국지수(36·여)씨는 “현대무용처럼 공연장을 가야만 볼 수 있던 ‘갇힌 예술’을 일반 시민에게 보여주고 알리고 싶어 고민한 끝에 무대를 횡단보도로 옮겨보자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시민은 예술에 관심이 없거나 예술을 잘 모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횡단보도에서 공연이 펼쳐지면 보행자든, 신호 대기 중인 차량 운전자든 누구랄 것 없이 예술을 접하고 알아갈 수 있다는 게 행사의 취지다.



 이날 때마침 길을 지나던 비보이, 로킹(Locking·몸을 격렬히 흔드는 현란한 춤) 전문 댄서 박인호(가명)씨 커플은 비보이 댄서와 댄스 경연을 벌여 박수갈채를 받았다. 박씨는 “차도를 건너면서 춤춘 적은 처음이었다”며 “보행자가 공연의 관객이자 댄서가 되는 신기한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이날 한 행인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현장 동영상은 이틀 만에 조회수 7000건을 넘어설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스위스 시민들의 반핵 행위예술이 효시



시민이 함께하는 예술 즉, ‘커뮤니티 아트’는 전 세계 예술계의 새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커뮤니티 아트는 2010년 5월 스위스에서 시민 수백 명이 갑자기 쓰러지는 플래시몹이 대표적인 사례로 알려진다. 당시 스위스 정부는 핵발전소를 세우려 하자 이를 반대하는 시민이 밤 12시15분쯤 갑자기 한꺼번에 쓰러지는 행위예술을 선보인 것이다. 이는 핵발전소에서 나오는 방사성 물질 때문에 곳곳의 시민이 쓰러지게 된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이후 반대 운동이 더욱 거세어 결국 스위스 정부는 핵발전소 건립을 포기했다.



 우리나라도 플래시몹 형태의 예술이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올 9월엔 서울 곳곳에서 춤판이 벌어진다. 9월 5일과 12일엔 서울 한강을 따라 시민춤꾼 ‘춤단’의 주도로 게릴라형 댄스 파티가 열린다. 이 ‘춤단’은 서울문화재단이 오디션을 통해 선발해 춤을 배우고 있는 시민 댄서들이다. 19일엔 한강 선유도공원이 무도회장으로 변신한다. 서울문화재단이 2013년부터 매년 9월마다 진행하는 ‘서울무도회’로,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시민 축제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신창호 교수는 “예술이 길거리로 나오는 순간 시민의 관심·참여를 이끌어내면서 새로운 예술 장르를 창조해 낼 수 있다”며 “세계 예술계는 1960년대부터 시작된 ‘포스트모더니즘’의 뒤를 이을 새로운 예술 트렌드를 고민하고 있는데 커뮤니티 아트가 예술계의 큰 트렌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생’ 얘기 담은 판소리 공연



소리공연 단체인 ‘보이스씨어터 몸소리’가 숲 속에서 시민들과 ‘보이스세러피’를 체험하는 모습(위)과 문화예술교육단체 ‘문화놀이터 액션가면’이 연 시민연극제 ‘사천의 선인’ 공연 장면.




단지 즉흥적으로 참여하는 플래시몹 형태의 공연만 있는 게 아니다. 예술을 모르는 시민이 판소리·그림·시·보이스세러피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예술을 익히고 직접 공연하는 프로그램이 생겨났다. 서울문화재단은 올해 ‘서울시민 예술대학’을 첫 개설해 이달부터 시민 수강생 1기를 모집하고 있다. 수강료는 무료다. ‘2015 서울시민 예술대학’ 담당자인 정지원씨는 “학교·직장·집 안 의 고된 업무에 치여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잊고 살아가기 십상”이라며 “시민이 보다 쉽게 예술을 접하고 자신에게 숨겨진 예술의 본능을 일깨우며 자아를 찾아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달 23일 첫 개강한 ‘보이스세러피’ 프로그램은 목소리를 확장해 몸·마음을 치유하는 과정을 배운다. 김진영(보이스씨어터 몸소리 대표) 강사는 “보이스세러피는 몸·마음 상태에 따라 민감하게 달라지는 재료인 소리를 새롭게 발견해 거꾸로 몸·마음을 회복하는 원리”라며 “프로그램 신청자가 많아 모집인원(25명)이 금방 찼다”고 말했다. 수강생들은 프로그램 마지막 날인 10월 31일 성북도원에서 보이스세러피로 공연할 예정이다.



 9월 8일부터 10월 31일까지 남산예술센터에서 ‘직장인 판소리로 연극 만들기 프로젝트’가 진행된다. 직장인이 자신의 고단한 일상을 판소리·연극 대본에 녹여내 11월 1일 ‘서울미생별곡’을 공연할 예정이다.



나만의 시집을 만들고 싶다면 ‘시시시작’ 프로그램에 신청하면 된다. 9월 16일부터 10월 31일까지 매주 수요일 남산예술센터에서 시를 만날 수 있다. 나만의 시를 쓰면 시인 및 북디자이너의 도움으로 시집 한 권을 출간할 수 있다.



 예술가는 아니지만 예술적 재능과 끼를 주체할 수 없다면 하이서울페스티벌2015의 ‘서울거리예술축제’에 도전해 보는 건 어떨까. 시민 예술가라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으며 10월 3~4일 청계광장과 광통교에서 거리공연을 펼칠 수 있다. 이달 31일까지 서류를 접수시키면 된다. 최종 선정되면 공연 홍보 및 일부 진행비를 지원받을 수 있다.







글=정심교 기자 jeong.simkyo@joongang.co.kr, 사진=서보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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