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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추임 - 메김

중앙일보 2015.07.28 00:02 종합 28면 지면보기
이건용
작곡가
서울시오페라단 단장
판소리 공연장에 가면 소리도 소리지만 추임새가 그날의 흥을 좌우한다. 물론 고수가 소리꾼의 동반자로서 쉴 새 없이 추임새를 띄워 주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제대로 흥이 나려면 객석의 반응이 뜨거워야 한다. 그 열기는 추임새로 나타난다. 객석의 추임이 받쳐주면 소리꾼은 흥이 나 더욱 열창을 하게 되고 이는 다시 객석의 열기를 높여 더 뜨거운 추임으로 터져 나온다. 창자와 청중이 같이 소리판을 이끌어가는 것이다.



 추임새 넣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는 않다. 흥 나는 대로 하라지만 들어가기 적합한 장단과 순간이 있고 또 같은 “잘한다”라도 그 억양에 따라 노래를 맺어주기도 풀어주기도 한다. 적당하지 않은 순간에 맞지 않는 추임새를 시도하다가 오히려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 수 있다. 추임새는 그 자체가 리듬이고 가락이어서 음악의 한 부분을 이루기 때문에 그렇다.



 일본의 가부키 공연에서도 때로 객석에서의 외침을 들을 수 있는데 특정한 장면에 제한적이다. 소리판의 흐름에 전반적으로 참여하는 판소리의 추임새와는 역할이 다르다. 노(能) 공연에도 “으잇” “호오” 하는 소리를 타악 주자가 내는데 이 경우는 아예 음악 안에 편입돼 있어 연기자와 흥을 주고받는 것이라 보기 어렵다.



 서양의 고전음악은 아예 청중이 정숙하기를 원한다. 객석은 숨을 죽인 상태에서 무대 위의 소리만이 홀을 울린다. 이 숨죽임과 연주 끝의 박수 또한 추임의 한 방식이긴 하다. 다만 추임새에 비할 때 그 참여의 정도는 제한적이다. 대중음악, 특히 록 페스티벌 같은 것은 청중의 참여를 적극 받아들이지만 워낙 무대 위의 음향이 압도적이어서 청중이 보내는 박수와 환호로는 열기 이상의 추임을 연주자들에게 전하기 어렵다. 내가 아는 한 판소리에서처럼 정교하고 참여적인 청중의 반응은 다른 문화에 유례가 없다.



 우리 전통음악에는 메기고 받는 소리라는 것도 있다. 예를 들어 “대나무에는 마디도 많고/ 쾌지나 칭칭 나네/ 솔나무에는 굉이도 많다/ 쾌지나 칭칭 나네”에서 “쾌지나 칭칭 나네”는 받는 소리이고 나머지는 메기는 소리다. 메기는 소리를 돌아가면서 하기도 하지만 즉흥적으로 곡조에 맞춰 흥겹고 재미나는 메김을 만들어 부르는 것이 간단하지 않다. 역시 메김은 소리 잘하는 리더가 부르고 받음은 모두가 하는 것이 제격이다. 힘든 노동이 많았던 옛 시절 노래 잘하는 리더가 구성지게, 또 맛깔나게 소리를 메기면 함께 일하던 사람들이 한결 힘이 덜 들었다고 했다.



 메기고 받는 노래 형식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아프리카·아시아를 비롯해 전 세계 음악에 고르게 나타난다. 노동요, 축제의 노래처럼 공동체가 같이 부르는 노래일 경우가 많다. 서양에서도 많이 불려 그 자취는 후렴구 있는 노래에 남아 있다. 즉 후렴구는 각 절의 ‘메김’에 대한 ‘받음’인 셈이다. 우리나라의 민요에서는 메기고 받는 노래 아닌 것이 없을 정도로 이 형식이 많다. 흔히 아리랑을 한 절만 부르지만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 대신 “청천하늘엔 잔별도 많고 우리네 가슴엔 근심도 많다”로 메길 수 있다. 그러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는 받는 소리가 되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던 ‘쾌지나 칭칭’을 보면 처음에 느린 장단에서 시작해 빠른 장단까지 꽤 길게 이어진다. 야외에서 마을 사람들이 놀면서 부르던 민요였으니 당연 춤도 추었을 것이다. 점점 빨라지다가 마지막에는 흥겨움의 끝까지 올라간 후 다시 처음의 느린 장단으로 풀어주는 잘 꾸며진 한판 놀이, 소리마당이다. 소리 잘하고 입담 좋고 대중의 마음을 잘 읽어내는 리더가 메기는 소리를 맡아 이끌어 주면 이 한판 놀이로 하루의 고단함을 씻고 내일 다시 살아갈 힘을 되찾곤 했으리라. 아쉽게도 이제는 이 노동과 이 놀이가 거의 사라져버려 메김 노래 잘하는 이들도 찾기 어려워졌다.



 오늘 우리에게 무엇이 부족한 것일까. 제 가진 기량보다 곱절 잘할 수 있도록 리더를 추어주는 정교한 추임의 방식을 가지고 있는데…. 공동체 전체에 신명을 불러일으켜 그 마음에 쌓였던 시름을 풀어주고 새로운 의욕을 일깨우는 메김의 노래를 불러왔는데….



이건용 작곡가·서울시오페라단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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