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평화 오디세이 릴레이 기고] (5) 성과 검증된 금강산 사업을 제자리로

중앙일보 2015.07.28 00:02 종합 29면 지면보기
압록강 하구의 중국령 섬 웨량다오(月亮島)에 건설되고 있는 고층 빌딩들. 강 건너 신의주의 허름한 시가지와 대조적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조건식
현대아산 사장

릴레이 기고 ⑤ 조건식 현대아산 사장·전 통일부 차관

전 통일부 차관
신의주와 맞닿은 단둥(丹東)의 아침은 활기가 넘쳤다. ‘아침 해가 뜨는 붉은 도시’라는 이름 그대로 고층 빌딩 사이로 길게 늘어선 차량 행렬과 사람들이 분주히 대륙의 아침을 열고 있었다.

 이곳을 처음 찾은 1994년만 해도 단둥은 식사할 만한 음식점도 제대로 찾기 힘든 중국 변방의 작은 도시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20년이 지나 다시 찾은 단둥의 화려한 빌딩 숲과 간판들, 휘황한 자동차 불빛과 사람들의 세련된 옷차림은 과거에 멈춰 선 필자의 생각을 바꾸었고, 그 어떤 통계보다 도시의 발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로 다가왔다.

 사실 단둥은 과거 북측 신의주에 기대 살아가던 작은 어촌에 불과했다. 60~70년대 공업도시 신의주와의 무역과 교류를 통해 도시의 명맥을 유지하고, 많은 조선족 동포가 생계를 위해 신의주 친인척들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던 단둥, 그러던 이 도시가 불과 몇 십 년 사이에 중국 최대의 국경도시로 발돋움했다. 기본적으로 중국 정부의 동북 3성 부흥정책이 있었지만, 남북 관계와의 연관성을 떼놓고 이 도시의 발전을 온전히 설명할 수는 없다. 바로 이 점이 우리가 단둥의 발전을 각별하게 생각해야 하는 이유라 하겠다.

 98년 금강산 관광으로 본격화된 남북 간 교류협력은 또 하나의 거점인 개성공단을 개척하면서 다양한 분야로 확대, 발전되었다. 이 과정에서 북측 내륙에 공장을 운영하거나, 북측의 농수산물 등을 수입하는 남북 교역 또한 호황을 누렸다. 이 시기 남북 교역의 중심지 중 하나가 단둥이다. 현지 교민에 따르면 한때 3000여 명의 한국인이 상주하며, 단둥의 부흥에 이끌었다고 한다.

 이후 남북 경협사업은 금강산 관광 중단을 시작으로 힘을 잃기 시작하고, 급기야 2010년 5·24조치로 남북 교역이 전면 중단되면서 단둥의 한국인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하지만 이제는 그 자리를 중국 기업들과 북측의 노동자들이 채우고 있고, 여전히 단둥은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현지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북·중 교역의 70~80% 물량이 단둥을 통해 오가고 있고, 북한을 관광하기 위해 나선 중국인 80%가 단둥을 거치며, 북측에서 파견한 1만 명 이상의 인력이 중국 기업 70여 곳에서 일하고 있다고 하니, 실로 북·중 교류의 최대 거점이자 관문이라 할 만하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남북 관계가 좋을 때는 남측이, 나쁠 때는 북측이 단둥의 발전을 돕고 있는 모양새다. 중국이 남북 경색의 틈을 파고들고 있다는 시각도 있지만, 북·중 협력의 확대를 부정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남북의 미래를 위해 바람직한 일이다. 다만, 남북 경협의 기반이 된 남·북·중 3각 협력을 이뤄내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못내 아쉬울 따름이다.

 그렇다면 정작 남북 관계의 당사자인 남북의 현주소는 어떤가. 금강산 관광을 비롯해 모든 남북 경협이 7년 이상 멈춰 선 채로 개성공단만 가쁜 숨을 내쉬며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 길목에 서 있는 수많은 사업자와 가족들의 고통은 차치하더라도 남북이 수년째 한반도의 미래를 향해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우려스럽다.

 이제는 더 지체할 시간이 없다. 하루빨리 남북이 마주 앉아 얽히고설킨 실타래의 매듭을 풀어야 한다. 서로가 시작도 못한 채 화려하고 원대한 목표만 되뇔 것이 아니라, 금강산 관광과 같이 이미 성과가 검증된 사업들부터 제자리에 돌려놓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17년 전 동해항에서 첫 닻을 올린 금강호의 감동을 기억한다. 그날의 진정한 감동은 북녘 땅을 밟는다는 단편적인 감상을 넘어 7000만 겨레가 염원하는 ‘한반도 평화와 통일 오디세이’의 첫걸음을 남북이 함께했다는 희망에 있다.

 금강산은 바람대로 분단의 역사를 바꾸어 놓았다. 200만 명의 남측 주민이 금강산을 다녀왔고, 1만5000여 명의 이산가족이 이곳에서 가족 상봉의 기쁨을 맛보았다. 남북의 각계각층이 금강산에 모여 통일을 논의했고, 이런 과정에서 쌓인 남북의 신뢰는 개성공단을 비롯해 굵직한 남북 경협을 잉태시키며, 갈등과 대결의 한반도를 화해와 협력, 평화의 한반도로 바꾸어 놓았다.

 연초 많은 사람이 올해가 남북 관계의 골든타임이라고 입을 모았다. 실제로 한반도를 둘러싼 대내외 환경을 고려할 때 올해가 남북 관계의 전기를 마련할 적기임에 틀림없다. 이제 어느덧 7월을 지나고 있다. 남은 5개월 반드시 좋은 소식이 들려오길 기대해 본다.

조건식 현대아산 사장·전 통일부 차관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