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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의 시시각각] 메르스 징비록 … 이젠 전문가를 믿자

중앙일보 2015.07.28 00:02 종합 30면 지면보기
이철호
논설실장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이 사실상 종식됐다. 22일째 확진자가 안 나오고, 격리자는 ‘0’명이다. 확진자 186명과 6729명의 격리자, 그리고 36명이 희생된 메르스 사태. 분명 비극이지만 그렇다고 사회 전체를 뒤흔들 대역병은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는 뿌리째 뒤흔들렸다. 발작을 일으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메르스 사태는 광우병 파동, 세월호와 똑같은 운명을 밟고 있다. 엄청난 사회적 손실을 남긴 채 그 피해를 돈(추경 예산)으로 때우고 있다.



 메르스는 ‘감염병은 심리학으로 시작해 통계학을 거쳐 의학으로 끝난다’는 공식에 한 치의 어긋남도 없었다. 메르스보다 공포 바이러스가 훨씬 무서웠다. 높은 치사율에다 백신이 없다는 점, 그리고 방역당국의 정보독점이 사회 불안을 부채질했다. 낮은 건강보험 수가로 인한 다인실 중심의 입원실, 시장통과 다름없는 응급실, 가족 위주의 간병 문화도 최고의 숙주였다. 정부의 불통과 비밀주의, 그리고 확진자 발생 6일 만에 대통령에게 처음 보고된 뒷북치기도 사회적 불신을 불렀다.



 또 하나 분명한 사실은 이번에도 전문가들의 진단이 맞아떨어졌다는 점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한국은 메르스를 통제할 수 있다”고 했고, 미국 질병통제센터(CDC)의 “메르스는 낮은 전염성-위험한 질병”이란 분류도 틀리지 않았다. 실제 메르스는 병원 내 감염과 일부 가족 간 감염에 그쳤다. 루머로 나돌던 공기전파나 지역사회 감염은 나타나지 않았다. 마스크만 쓰고 손만 열심히 씻으면 되는 전염병이었다.



 전문가의 말을 무시하면 과잉반응을 낳기 마련이다. 교육부와 일부 교육청의 마구잡이 휴교와 수학여행 취소가 대표적이다. 아파트 주민이나 학부모끼리 쉬쉬하며 ‘의사·간호사 가족’을 왕따 시켰고, 선의의 피해자인 ‘수퍼 전파자’들도 애꿎은 희생양이 됐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심야 긴급브리핑에서 “35번 의사 환자가 1500명을 만나고 다녔다”고 공개했다. 그는 “정직이 최선이며 늑장 대응보다 과잉 대응이 낫다”고 했다. 당시 감염 병원명조차 공개하지 않은 정부의 비밀주의를 깨트린 시원한 한 방이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다소 오버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우리 사회는 대형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정치권과 비전문가의 목소리가 너무 큰 편이다. 진짜 전문가들은 숨 죽이고, 그들의 의견은 묻히기 일쑤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납세자의 몫으로 돌아간다. 정치권은 생색만 낸 뒤 슬그머니 알맹이는 다 챙겨간다. 2009년 추경 때 이명박 정부는 녹색성장 2조원과 4대 강 사업비 1조원을 끼워넣어 재미를 봤다. 이번 메르스 추경도 마찬가지다. 절반 가까이가 만성적인 세입결손 보전에 충당됐고 총선을 앞둔 지역구 의원들의 ‘쪽지 예산’도 난무했다. 대한병원협회가 요구한 피해병원 보상비는 2500억원으로 반 토막 났다. 앞으로 제2의 메르스 사태 때 최일선 의료진이 이번처럼 최선을 다해줄지 의문이다.



 대형 사건·사고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미리 예방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어떻게 수습할지도 중요하다. 우리는 경제에 극심한 충격을 미치고 국가적 위기를 자초하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소모적인 정치공방과 과민반응만 반복된다. 우리는 다원화 사회가 된 지 오래다. 정보 통제도 불가능하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타고 루머와 사실이 뒤섞여 광속으로 퍼지는 세상이다. 이제 정부부터 능력의 한계를 인정하고 진실된 정보를 최대한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그래야 여론이 사실을 몰고 가는 게 아니라 사실이 여론을 이끌어 가는 민주주의가 완성된다.



 무엇보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인정하고 그들의 의견을 존중했으면 한다. 전문가일수록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의견을 낸다. 그런 만큼 SNS 얼치기들의 가시 돋친 주장에 밀리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그들의 낮은 목소리를 귀담아 듣는 게 쓸데없는 사회적 비용을 절약하는 지름길이 아닐까 싶다. 현명한 사람은 들어서 알고 어리석은 사람은 당해 봐야 안다는 말이 있다. 우리는 이미 광우병과 천안함, 그리고 메르스 사태로 충분히 당해보지 않았는가. 이제 전문가를 믿어보자.



이철호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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