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경제 view &] 농업·의료 … 주식회사를 허하라

중앙일보 2015.07.28 00:02 경제 5면 지면보기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몇 년 전 중국중앙방송(CCTV)에서 방송된 한 다큐프로그램이 경영자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 다큐멘터리는 한 때 세계를 호령했던 스페인·포르투갈·네덜란드·영국·프랑스·독일 등 주요 9개 강대국의 흥망사를 다뤘다. 이들 국가들 중 가장 눈에 띄던 국가는 네덜란드였다. 국토면적이 남한의 반도 안 되는 소국(小國) 네덜란드는 무슨 힘으로 세계 무역의 반을 독점하며 해상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을까?



 그 힘은 바로 ‘주식회사’의 탄생에 있다. 네덜란드 정부는 영국·포르투갈과의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상인들을 통합하고, 1602년 세계 최초로 주식회사 ‘동인도 회사’를 설립했다. 정부와 상인, 자본가들이 출자했고 현재 증권의 효시라 할 수 있는 권리증서도 배포됐다. 동인도회사를 기반으로 네덜란드는 세계 제일의 무역국으로 발돋움하며 17세기 황금시대를 맞이하였다.



 지금 우리나라는 한류의 전성시대를 맞고 있다. 지난해 미국 LA에서 개최된 ‘케이콘(K-CON)’ 한류 콘서트&컨벤션에 참석한 적이 있다. 놀라웠던 것은 4만 명이 넘는 관객 중 대다수가 미국 현지인이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한류는 대규모 투자자본과 전문적인 분업 시스템을 갖춘 주식회사가 있기에 가능했다. SM·YG 등 엔터테인먼트 기업은 재능 있는 예비 가수, 배우들을 모아 조직적인 시스템을 통해 세계에서 통할 스타를 길러낸다. 과거 끼 있는 개인이 그저 자신의 능력만으로 가수나 연예인이 됐다면, 지금은 기업들이 든든한 투자자금을 기반으로 오디션(구매), 연습(R&D), 공연(생산), 마케팅(유통) 각 단계 별로 전문가들을 동원해 세계적인 스타로 만든다.



 네덜란드와 한류 사례처럼 주식회사는 대규모 자본과 분업 시스템을 통해 개인이었다면 할 수 없었던 일을 가능하게 한다. 위험을 무릅쓰고 새로운 사업에 도전하는 주식회사가 없었다면 아마도 글로벌 시대는 열리지 못했을 것이다. 주식회사는 자본주의가 낳은 위대한 발명품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주식회사 설립이 어려운 분야가 있다. 이런 분야는 세계적인 산업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영세한 수준에 머무른다. 대표적 사례가 농업이다. 우리의 농업은 고령의 농부들이 소규모 농지를 운영하는 자영농 중심이다. 반면 미국·프랑스·스위스 등 선진국 중에는 농업 강국인 나라들이 많다. 선진국의 농업은 글로벌 곡물기업 카길(미국)을 비롯해 드레퓌스(프랑스)·가낙(스위스) 등 대규모 농업 주식회사를 기반으로 발전해왔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규제에 가로막혀 제대로 된 농업 주식회사가 나오지 못하는 실정이다.



 의료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의료는 세계 최고의 인적자원과 기술력을 인정받는다. 그런데 왜 세계적인 병원이 나오지 못할까? 이유는 간단하다. 주식회사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법적으로 기업형 영리병원을 금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크다는 아산병원만 봐도 국내 8곳에서만 운영되는 우물 안 개구리다. 반면 말레이시아의 IHH병원은 3년 전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주식거래소에 상장된 주식회사로 10개국에 진출해 36개의 병원을 지닌 아시아 최대 병원이다.



 우리 사회는 정서상 ‘기업화’에 쉽게 반감을 가지는 듯하다. 가령 의료기관·금융기관·교육기관이란 용어는 익숙한 반면 의료기업·금융기업·교육기업이란 단어는 생소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농업기업이란 단어도 낯설게 느낀다. 그만큼 이 분야의 기업화가 발달하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우리가 머뭇거릴수록 외국 기업들이 국내외 시장을 장악할 것은 뻔하다. 다행히 우리는 기업화로 성공한 경험이 있다. 이제 해외 어디를 나가도 만두·라면 등 한국 음식을 현지 마트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을 만큼 케이푸드(K-food)가 해외 시장에서 경쟁력을 얻고 있다.



 농업·의료 등에서도 주식회사가 나온다면 우리도 다른 나라처럼 농업강국·의료강국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전문화·대형화된 기업이 탄생하지 못한다면 무한경쟁의 글로벌 시장에서 더 이상 살아남을 수 없다. 기업화라는 큰 물결을 거스르느냐 마느냐의 선택은 지금 우리 손에 달렸다. 답은 하나다. 기업화가 살 길이다.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