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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경기 골문 지킨 김병지, 힘내라 '사오정'

중앙일보 2015.07.26 18:45
1970년 4월 8일생. 만 45세 김병지(전남)는 세 아들의 아버지다.



26일 전남 광양축구전용경기장. 김병지는 등번호 700번을 달고 그라운드에 섰다. 전남 드래곤즈와 제주 유나이티드의 K리그 클래식 23라운드에 출장하면서 그가 골문을 지킨 경기는 700을 채웠다. 부인 김수연(42)씨와 세 아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김병지는 날아오는 공을 향해 몸을 날렸다.



1992년 9월 6일 프로 무대 첫 골문을 지킨 지 22년10개월. 5개 팀을 거쳐 김병지는 프로축구 최초 통산 700경기 출장 기록을 세웠다. 월급 80만원으로 시작한 연습생이 숱한 실패와 좌절을 겪은 끝에 쌓은 금자탑이었다. 통산 700번째 경기에서 김병지는 골문을 듬직히 지켜 전남의 3-1 승리를 이끌었다. 전남 선수들은 전반 4분 공격수 이종호(23)의 선제골 직후 손가마를 만들어 김병지를 태워 대선배를 축하했다. '사오정(45세면 정년)'이라는 씁쓸한 신조어가 유행하는 시대에 김병지는 축구선수의 정년을 훌쩍 넘겨 또다른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 지난 23일 김병지를 만났다.



-프로 선수 24년에 대한 점수를 매긴다면.

"재미있는 골키퍼였다. 20대 땐 머리 염색도 하고, 모험적인 경기 운영을 좋아했다. 시대를 거스른다며 비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때론 즐거움을 선사했다. 돌이켜보면 80점 정도 한 것 같다."



-선수 생활을 이렇게 오래할 줄 알았나.

"절대 아니다. 프로 데뷔 때 34세에 은퇴한 최강희(56) 전북 감독을 보고 32~34세 쯤에 은퇴하는 걸 머릿 속에 그렸다. 처절하게 나 자신을 다스린 덕분에 11년을 더 했다."



밀양초등학교 3학년 때 축구를 시작한 김병지의 청소년기는 순탄치 않았다. 키가 작고, 별다른 경력이 없어 고교·대학 진학 때마다 밀려났다. 고교 졸업 후 경남 창원 금성산전에 취직해 직장인 팀에서 꿈을 키웠다. 테스트를 거쳐 국군체육부대에서 뛴 그는 1992년 7월 울산 현대의 추가 지명으로 프로가 될 수 있었다.



-축구를 계속 하려고 직장에 들어갔는데.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돈을 벌어야 했다. 엘리베이터를 만드는 회사에 취직해 와이어로프, 도르래 등 부품들을 관리하는 검사실에서 근무했다. 낮에 일하고, 밤에 개인운동을 하는 날 보고 주변 사람들이 다 '미쳤다'고 했다. 그래도 그 덕분에 프로에 갈 수 있었다. 축구를 하면서 돈을 버는 게 신기했다. 프로 첫 계약금 1000만원은 전부 부모님께 드렸다."



-24년동안 몸무게 78.5㎏을 유지했다. 자기 관리가 철저한데.

"프로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거다. 술·담배를 하지 않고, 저녁 8시 이후 사적인 약속을 잡지 않는 등 100가지 금기 사항을 만들어 지켜왔다. 술·담배를 안 해도 잠을 자거나 아내와 대화를 나누면서 스트레스를 풀었다. 한 분야의 고수가 되려면 남들처럼 누릴 수 있는 걸 포기해야 한다. 스스로와 싸웠고, 나 자신을 라이벌이라 여겼다."



김병지는 1998년 미대 출신 김수연 씨와 결혼해 아들 셋을 뒀다. '태백산맥'의 정기를 이어받으라는 뜻에서 첫째는 태백(16), 둘째는 산(13), 막내는 태산(8)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세 아들 모두 축구를 한다.

"고등학생 태백이는 공격수, 중학생 산이는 미드필더, 초등학생인 막내 태산이는 골키퍼를 한다. '김병지의 아들'이라는 부담이 클텐데 아들들이 '우리 멘토는 아빠'라고 당당히 말한다. 내가 "은퇴할까"하면 "아빠, 더 할 수 있잖아요"라고 응원해준다. 아빠를 자랑스러워하는 아이들이 있기에 행복하다."



김병지는 "사람들이 기억하기 쉬운 행운의 숫자를 모았다"며 777경기 출장을 다음 목표로 잡았다. 은퇴 후엔 지도자·에이전트·행정가 등 축구 관련 일을 할 예정이다. 그러나 그는 "좋은 아빠, 좋은 남편으로 남는 게 내 인생의 마지막 목표"라고 말했다.



-40대 가장으로서 책임감이 느껴진다.

"'사오정'이라는 신조어가 유행하고 있다. 40대면 자식들이 고등학생·대학생이 될 나이여서 경제적으로도 부담이 많은 시기다. 타의에 의해 일을 그만두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가족을 생각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대신 자신과 싸우고 나만의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40대 가장들에게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계속해서 전해드리고 싶다."





김지한 기자 han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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