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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청와대-재계 간담회 방식, 창조적일 수 없나

중앙선데이 2015.07.26 00:02 437호 2면 지면보기
박근혜 대통령과 대기업 총수 17명이 나란히 서 있는 사진 한 장이 주말 아침 거의 모든 국내 조간신문의 1면에 실렸다. 전국의 창조경제혁신센터 조성 사업이 마무리되자 박 대통령이 24일 이를 지원하는 대기업 총수들을 청와대에 초청해 간담회를 하면서 찍은 단체 기념사진이다. 삼성·현대차 등 주요 대기업 총수들을 한꺼번에 청와대로 초청한 건 박근혜 정부 들어 처음인 데다 광복절 특별사면에서 기업인 포함 여부를 놓고 관심이 집중된 터라 더욱 주목되는 자리였다.

 박 대통령은 이날 “혁신센터가 창업 생태계의 중심이자 지역 혁신의 거점, 대·중소기업 상생 발전의 접점으로 꺼지지 않는 혁신의 원자로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재계 총수들에게 “앞으로 지역별, 산업 분야별로 본격적인 성과를 내달라”고 당부하며 “유망한 청년들에게 일자리가 많이 제공될 수 있도록 신규 채용에도 적극 나서주기 바란다”고 했다. 간담회는 당초 예정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창조경제의 성공을 다짐하는 각오 발표를 마지막으로 3시간10분이 넘어서야 끝났다.

 대통령이 재계 총수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뭔가 ‘당부’하는 건 1970년대부터 익히 봐 왔던 광경이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수출진흥확대회의는 수출 드라이브 정책에 따라 기업들을 독려하고 관리하는 데 힘을 발휘했다. 민주화 이후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부로 이어지는 동안에도 대기업 빅딜, 규제 개혁, 일자리 창출과 같은 국정 과제를 추진하기 위해 대통령이 간담회 형식으로 재계 총수들을 한자리에 불러모으곤 했다. 이 자리에서 대통령의 ‘말씀’은 언론에 ‘당부’나 ‘요청’으로 표현됐지만 실제론 지시나 다름없었다. 그때마다 대기업 총수들은 정부 정책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답변을 제창하곤 했다.

 대통령의 정책 의지가 중간 단계 없이 그대로 대기업 총수에게 전달된다는 점, 그리고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이 직접 의사소통을 한다는 점에선 나름 효율적인 자리일 수 있다. 하지만 국민의 눈엔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만큼 바쁜 여러 대기업 총수들을 한날한시에 집합시킨 대통령의 강력한 권력을 각인시켜 준 장면이기도 하다. 대통령이 직접 창조경제의 중요성을 장시간 설파하고 기업들을 일일이 거명해가며 문답하는, 집체교육 강의장 같은 분위기는 자유롭고 창의적인 토론과는 거리가 멀다.

 국민은 창조경제를 주창하고 나선 박 대통령에게 이전 대통령들과는 다른 창의적인 스타일을 기대한다. 세계가 디지털 광속 경제로 바뀌고 있는 시대에 경영 일선에서 바쁘게 뛰어야 할 재계 리더들을 한자리에 모아 장시간 간담회를 하는 것은 이젠 낡은 방식이다. 대통령이 주요 기업인을 불러모으는 건 자유시장경제 체제에선 보기 어려운 풍경이다. 미국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빌 게이츠나 마크 저커버그 같은 기업인들을 백악관에 모아 놓고 간담회를 한 적이 있나. 대통령의 ‘총수 집합’이 자연스러워 보이니까 규제 부처 장관은 사장들을, 국·과장은 임원들을 집합시키는 것 아닌가. 이게 시장경제, 창조경제의 진면목인가.

 경제 활력은 최고 권부의 일방통행적인 의사결정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투자환경 개선, 규제 혁파를 통해 민간의 창의력과 야성적인 기업가 본능을 살려줘야 한다. 대기업 총수들이 대통령을 중심으로 도열해 있는 장면이 더 이상 신문에 실리지 않을 때가 바로 창조경제가 시작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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