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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발전 기대 속 개설 두 달 넘도록 입주업체 ‘0’인 곳도

중앙선데이 2015.07.26 00:24 437호 6면 지면보기

인천창조경제혁신센터가 22일 문을 열면서 전국 17개 창조경제혁신센터(이하 창조센터) 구축이 마무리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신년 기자회견에서 계획을 밝힌 지 1년7개월 만이다. 기대는 크다. ‘한강의 기적’이 모방을 활용한 빠른 추격자 모델의 성공이라면 ‘제2한강의 기적’은 창조적인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돼 글로벌시장을 선도해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중앙SUNDAY는 지난 15~24일 1호 개설지인 대구를 포함해 서울·경기·충남·경북·강원·제주 7곳의 창조센터를 돌아봤다. 입주기업·운영진·지역민의 목소리와 벤처·창조경제 전문가 의견도 함께 들었다. 이들은 창조센터의 성과와 효용, 기대를 말하면서도 정권이 바뀐 뒤에도 사업이 지속될지 우려했고 기존 창업·벤처육성책과의 중복 가능성도 지적했다. 지원 속도와 효율성을 높이고 정부 간섭은 최소화해야 할 것이라고도 했다.

[창조경제혁신센터 17곳 구축] 현장에서 들어본 기대와 우려


지난 22일 오후 강원도 춘천시에 있는 강원대 한빛관 내 강원창조센터. 정보기술(IT) 서비스·빅데이터 사업을 특징으로 내세워 지난 5월 문을 열었다. 네이버가 전담 대기업이다. 컴퓨터 4대에 10여 개의 의자와 테이블이 있는 ‘빅데이터 랩(실험실)’은 썰렁했다. 아르바이트 대학생 한 명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컨설팅룸·미팅룸은 비어 있었다. 박 대통령 앞에서 시연했던 ‘스마트 팜’은 꺼져 있었다. 농작물의 생장환경을 관찰하고 데이터를 수집하는 기기다. 예비창업자와 벤처기업을 위해 마련된 사무공간 8곳엔 개소 두 달이 지났지만 입주업체가 아직 하나도 없다. 이 센터의 백승호 사무처장은 “공모전을 통해 입주 예정업체 5곳을 선정해 놨다. 조만간 입주할 예정”이라며 “도내 창업 수요가 많지 않고 그마저도 서울·수도권 지원사업에 공모하는 경우가 상당수”라고 했다.

“펀드 조성 서두르고 빨리 집행해야”
대구창조센터는 창업 지원 프로그램인 시랩(C-lab)을 통해 올해 상반기 1기 18개 팀의 창업을 지원했다. 삼성에서 파견된 2명의 부장급 멘토가 도우미 역할을 했다. 1기에 참여했던 P사 A씨는 “창업공간이 유익했다. 다만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시작해 미비한 점이 있었다”고 말했다. 뭔가 필요한 상황이 생기면 부랴부랴 대처해 나가는 식이었고, 원래 12월 말에 받기로 했던 지원금 2000만원도 1월 말에야 받았다고 했다. 그는 “투자를 받기 위해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피칭 데이’ 행사가 있었다. 하지만 18곳 가운데 실제 투자가 이뤄진 곳은 없었다. 지원펀드가 있다지만 어려움을 호소하는 기업이 적지 않다”고 했다. 약속한 기업 지원용 펀드를 통한 신속하고 충분한 투자가 있어야 하는데 아직은 부족하다는 주장이다.

 정부 통계로 본 전체적인 큰 그림은 괜찮은 모양새다. 지난해 9월 대구센터가 문을 연 이래 전국의 창조센터가 이룬 성과는 적지 않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미래창조과학부에 따르면 그동안 자본 투자, 기술 이전 등을 통해 지원한 창업기업은 모두 250개. 기존 중소기업 125개도 지원했고, 75명의 신규 채용과 171억원의 매출이 이뤄졌다는 게 미래부의 설명이다. 68개 기업은 299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정부는 2017년 말까지 창업·중소기업 5000개를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중요한 건 앞으로 실질적인 지원과 육성이다. 지역별 전담 대기업·지방자치단체 등이 앞으로 5년 내 투융자를 위해 조성하겠다고 밝힌 금액은 1조8000억원 수준이다. 아직 규모를 정하지 않은 서울창조센터를 포함하면 2조원에 육박한다. 충남센터가 1525억원 중 100억원을 조성한 것을 비롯해 전체적으로 예정 금액의 10%가량 조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민간 창업지원회사를 운영하는 C사의 D 대표는 “정부·대기업이 약속한 펀드를 빨리 조성하는 것뿐 아니라 이를 적극적으로 소진시키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일부만 조성해 지원하다 정권이 바뀌면 흐지부지돼선 안 된다”고 했다. 민관합동창조경제추진단 고형권 정부 측 단장은 “펀드 조성은 자산운용사 선정 등에 시간이 걸린다. 한 번에 조성할 필요도 없다. 투융자를 위한 자금 조성은 예정대로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중앙SUNDAY가 찾아간 7곳의 창조센터 가운데 입주기업 공간이 비어 있는 곳은 강원센터만이 아니었다. 서울창조센터처럼 입주공간이 차 있고 다수의 창업자가 찾은 곳도 있지만 충남·제주·경기센터 등은 썰렁했다.

 15일 오후 4시40분. 충남테크노파크 생산관 1층에 있는 충남창조센터. 지난 5월 문을 연 곳이다. 859㎡(약 260평) 크기인 창조센터 1층엔 책상 서너 개와 크고 작은 프린터, 제품 케이스 제작용 기계가 놓여 있었다. 사용하는 사람은 없었다. 바로 옆 BI룸(보육실) 5개는 한 곳을 제외하곤 모두 비어 있다. BI룸에 들어가니 대학생 2명이 애니메이션 제작 작업을 하고 있었다. 입주업체에 현장 실습을 나왔다고 한다. 센터 함수연 주무관은 “전체 7개 입주공간 중 5개가 비어 있다. 심사를 통해 8월께 입주를 완료할 계획”이라고 했다.

 23일 찾은 경기창조센터, 24일 찾은 제주창조센터 역시 상당한 공간이 비어 있었다. 올 들어 문을 연 인천·울산·세종창조센터도 입주공간의 상당 부분이 비어 있다고 밝혔다. 센터 관계자들은 “아직 문을 연 지 얼마 되지 않아서다. 심사를 통해 기업을 곧 입주시킬 것”이라고 했다.

지역 테크노파크와 기능 중복 우려도
제주창조센터는 제주시 이도동의 테크노파크 3~4층에 자리 잡고 있다. 넓고 쾌적했다. 탁구를 칠 수 있는 핑퐁실 같은 공간도 있다. 강경식(무소속) 도의원은 “제주 테크노파크와 창조센터는 기본적으로 역할이 비슷하다. 테크노파크가 인력·자금 부족으로 어려운데 창조센터에 자금이 지원되면 앞으로 더 어려워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유사한 지적은 그에 앞서서도 나왔다. 이병우 충남혁신센터장은 지난 8일 전국 센터장 간담회에서 “유관기관들의 업무 범위가 서로 중복되는 경우가 많다. 중복으로 인한 낭비를 초래하지 않기 위해 추진단과 미래부의 적극적인 조정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창업·중소기업 지원을 위한 공간은 창조센터 외에도 지역별 테크노파크, 지역지식재산센터 등 여러 곳이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초 창조센터 구축과 관련해 미래부에 보낸 의견 공문에서 “기존 지역 관련 사업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경우 지역별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고, 지역경제 활성화 방안 수립과 사업 지원 기능을 할 경우 자칫 기존 지역사업과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국회 창조경제활성화특별위원회 이개호(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전국에 지역별로 있는 테크노파크와 창조센터와의 업무 중복 가능성이 큰데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며 “필요하다면 테크노파크와 창조센터를 합치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 시각은 다르다. 기관들 사이에 중복 문제는 없다는 게 공식 입장이다. 창조경제추진단 고형권 단장은 “테크노파크와는 협력 관계다. 테크노파크는 이미 성장한 기업, 창조센터는 창업 초기·벤처기업이 지원 대상”이라고 했다.

지역별 기계적 분산도 문제
창조센터는 대기업이 창업·벤처 지원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돕는 독특한 모델이다. 국내 주요 대기업이 대부분 참여했다. 자발적 참여라곤 하지만 ‘유·무형의 압박’ 또는 ‘기부 삼아’ 참여한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전국 17개 시·도에 골고루 배치한 기계적 지역 배분, 지역별 연고가 있는 대기업에 할당하는 모델로 자생력을 갖춘 창업생태계를 조성할 수 있겠느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창조센터의 대기업 파견 간부는 “3년 후엔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정권이 바뀌면 센터가 없어질 거라는 얘기가 있는데 기업들도 한시적일 거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고 했다.

 정권의 역점사업으로 추진한 정책이 다음 정권에서 폐기 처분되는 선례는 많다. 김대중 정부는 ‘벤처’와 ‘신지식인’으로 상징되는 경제혁신정책을 폈지만 이미 잊혀졌다. 노무현 정부도 ‘비전 2030’과 10대 차세대 성장동력산업 육성을 들고 나왔지만 지금 흔적도 없다. 이명박 정부는 ‘녹색성장’을 기치로 내걸면서 대통령 직속 녹색성장위원회를 만들고 22조원을 투입해 4대 강 사업을 벌였다. 하지만 4대 강 사업은 재감사까지 받아 ‘실패한 사업’으로 낙인찍혔고 서울 광화문에 세웠던 녹색성장체험관은 박근혜 정부 들어 서울창조경제센터로 문패를 갈았다. 전 정부의 한 장관급 인사는 익명을 전제로 “정권 차별화를 위해 의도적으로 이전 정부의 사업을 중단하거나 억제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정책의 연속성과 효율 면에서 매우 좋지 않은 관행”이라고 지적했다.

 벤처협회 초대회장을 지낸 이민화 창조경제연구회 이사장은 “정부는 센터를 좌지우지하면 안 되고 대기업·중소기업·벤처기업이 합심해 자생력을 갖춰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권이 바뀐 후 사업은 흐지부지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대기업에 대해서도 “힘을 앞세워 영업비밀 침해 등과 같은 불공정한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대기업 등이 약속한 펀딩(투융자 지원)이 실질적인 지원 없이 숫자놀음에 그치면 창조경제센터의 실패는 불 보듯 뻔하다는 지적이다.

 ‘서울창조경제콘퍼런스’에 참석차 최근 한국을 찾았던 세계적인 창조경제 전문가 존 호킨스 창조경제연구센터장은 “창조센터의 성공은 효율적인 운영에 달려 있다. 정부는 기업에 도움을 주되 그들을 리드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특별취재팀 염태정 팀장, 오이석·이충형·김경미 기자, 조희형 인턴기자(이화여대 언론정보4) yonn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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