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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수 한계 느낀 닛케이의 글로벌 구상 … “수익보다 영향력”

중앙선데이 2015.07.26 01:30 437호 18면 지면보기
FT 기자들은 트위터에 놀랍다는 반응을 올렸다. ‘우리 팔린 거야? 다들 TV 앞에 모여 있기에 크리켓 보는 줄 알았네(조슈어 채핀 유럽뉴스 에디터)’. 일본 언론사에 매각되는 데 대한 패러디도 섞여 있었다. ‘난 그것도 모르고 하루종일 독일어 공부했는데…(피터 스피글 기자)’. ‘지금부터 칼럼은 전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자(로버트 암스트롱 수석논설위원)’. 2009년 로이터로 이직한 피터 탈 라슨 기자는 “1987년 (FT의 모기업인) 피어슨그룹은 FT 본사 건물을 일본 매수자에게 팔고 신문은 지켰다. 이번엔 건물은 갖고 신문을 팔았다”고 적었다.

막판에 1억 파운드 더 불러 FT 인수한 닛케이

닛케이, 2013년부터 FT와 제휴
세계 미디어 지형을 바꿔놓은 닛케이의 FT 인수가 많은 관심과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FT는 왜 매물로 나왔나. 닛케이는 왜 13억 달러(1조5200억원)나 주고 FT를 샀나. 독일 악셀 슈프링어는 어떤 곳이기에 막판까지 닛케이와 경합했나. 앞으로 세계 미디어 업계는 어디로 가는 것인가.

따져보면 닛케이가 FT를 인수한 건 놀라운 일은 아니다. 닛케이와 FT는 2013년 3월 콘텐트 교류, 임직원 교육, 각종 국제행사, 중국 사업을 함께 하는 포괄적인 협력 관계를 구축했다. 최근까지 두 신문의 모바일 에디션은 초기화면이 똑같았다. 닛케이와 FT의 경영진은 이번 딜 이전부터 두터운 친분관계를 맺어왔다. 닛케이는 원래 월스트리트저널(WSJ) 소유주인 다우존스와 1997년부터 협력관계를 맺어왔다. 하지만 다우존스는 2007년 미디어 재벌 루퍼트 머독이 인수한뒤 닛케이와 관계를 끊고 요미우리(讀賣) 신문과 파트너십을 맺었다. 닛케이·FT와 WSJ로 양분된 새로운 경제미디어 지형의 배경엔 그런 아이러니도 있다.

닛케이는 몇 년 전부터 일본어의 한계를 느껴왔다. 일본 매체이니 일본어로 일본 독자들에게만 기사를 제공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발동한 것이다. 그렇다고 닛케이 기사를 그냥 영어로 번역만 해선 글로벌 독자들에게 다가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2013년 태국 방콕을 거점으로 하는 ‘닛케이 아시안 리뷰’라는 영어신문을 만든 것도 이 때문이다.

영어 수요가 넘치는 동남아 시장을 공략해 보려고 한 것이다. 하지만 이 신문이 FT·WSJ와 같은 영향력을 갖기엔 역부족이었다. 닛케이는 이후 FT 인수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같은 시기 유럽 최대 미디어그룹으로 타블로이드지 빌트(Bild)와 정론지 벨트(Welt)를 보유한 악셀 슈프링어는 이미 FT의 모기업인 피어슨그룹과 접촉 중이었다. 세계 최대의 교육·출판기업인 피어슨그룹이 미디어 사업에서 손을 떼고 싶어한다는 것을 간파한 것이다. 악셀 슈프링어는 올해 초부터 FT 측에 공고한 파트너십을 맺자고 제안했지만 사실은 인수를 노리고 있었다. 피어슨은 FT의 호가를 높이기 위해 매수 가능성이 있는 다른 미디어그룹에도 제안을 넣었다. 프랑스의 비방디, 미국의 블룸버그 등이다. 하지만 역시 FT 인수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인 곳은 악셀 슈프링어와 닛케이 둘로 좁혀졌다. 지난 20일 블룸버그가 악셀 슈프링어가 FT의 가장 유력한 매수자로 떠올랐다고 단독 보도를 터뜨렸다. 양측의 협상은 급물살을 탔고 곧 타결 될 듯했다. 하지만 블룸버그가 간과했던 사실은 5주 전 FT 측이 닛케이를 자문하는 투자은행 로스차일드를 통해 매수의향을 타진한 사실이었다. 악셀 슈프링어와의 협상 타결 발표를 한 시간여 앞두고 닛케이 측은 매수가격을 1억 파운드(1812억원) 높여 불렀고 상황은 순식간에 뒤집혔다.

지난 23일 파이낸셜타임스 기자들이 자기 회사가 니혼게이자이신문에 인수됐다는 뉴스 속보를 보고 있다. [트위터]
홈페이지 꾸미는 건 디지털 전략 아니다
닛케이가 추구한 또 다른 노림수는 디지털이다. 닛케이는 일본 언론으로선 거의 유일하게 디지털 유료독자 확보에 성공한 곳이다. 돈을 내고 닛케이의 기사를 읽는 독자 수가 40만 명이 넘는다. FT는 50만 명이어서 일견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유료 독자 포함 FT 뉴스 사이트 회원이 전세계에 걸쳐 640만 명에 달하는 점을 생각해보면 영미권 언론의 힘을 알 수 있다. 또 FT는 전체 매출의 70%가 디지털에서 나온다. 종이신문은 30% 뿐이다. 매출에서 구독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광고수입보다 크다. 닛케이 입장에선 충분히 투자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

닛케이의 디지털 전략은 이게 끝이 아니다. 이번 인수전에서 경합했던 악셀 슈프링어와 마찬가지로 실리콘밸리에서 사업 아이디어를 갖고 온다. 악셀 슈프링어는 기자들이 실리콘밸리에 1년 동안 살며 배워온 아이디어로 베를린에 창업 인큐베이터인 악셀 슈프링어 플러그 앤 플레이도 만들었다. 닛케이는 지난해 말 세계 최대 메모 서비스인 에버노트에 2000만 달러를 투자했다.

앞서 글로벌 정세 및 라이프 스타일 잡지인 ‘모노클’의 지분도 인수했다. 최근엔 ‘커스터머 DNA’라는 데이터 지표도 개발했다. 독자들이 어떤 기사를 읽는지 파악하고 프로필 데이터를 분석해 관심상품이나 콘텐트를 소개해 주는 디지털 마케팅 기법이다. 닛케이는 이렇듯 글로벌·디지털 전략에 충실해 왔다. 영어를 하고 홈페이지를 보기좋게 꾸미는 게 글로벌·디지털 전략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닛케이의 FT 인수로 FT 내부는 물론 서양 언론에서 우려하는 점은 편집권 독립이다. 일본의 언론사는 흔히 정부나 기업과 유대관계가 있어 언론 본연의 비판 기능을 수행하기가 어렵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기타 쓰네오(喜多恒雄) 회장은 24일 기자회견에서 “닛케이는 닛케이대로, FT는 FT대로 성장할 것이며, 편집권 관여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FT를 더 강하게 만들기 원하며, FT의 편집장인 라이오넬 바버에게 큰 신뢰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영국 일간 가디언은 “2011년 올림푸스의 대형 분식회계를 고발한 최고경영자가 해고됐을 때 FT는 이를 특종으로 보도했지만, 닛케이는 기사를 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도 “닛케이가 출입처인 기업에 대해 도전적인지는 회의적”이라며 “기업비리는 보통 외국매체 등이 먼저 쓰면 따라가는 경우가 많다”고 평가했다. 일각에선 닛케이가 사원지주회사여서 FT의 편집권에 관여할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제프 베조스 아마존 회장이 2013년 워싱턴포스트(WP)를 2억5000만 달러에 인수한 점을 고려하면 닛케이가 FT 인수에 들일 돈 13억 달러는 터무니없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미디어 평론가인 켄 닥터는 “FT의 영업수익이 3000만 달러에 달하는데 그런 신문사는 최소한 미국엔 없다”고 말했다. 충분히 투자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루퍼트 머독은 2007년 다우존스를 인수할 때 50억 달러를 지급했다. 오카다 나오토시(岡田直敏) 닛케이 사장은 “우리는 신문사다. 수익을 늘리려고 인수한 게 아니다. 우리 저널리즘의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 인수한 거다”라고 말했다.

FT, 가치 높여 시장에서 인정 받아
닛케이의 FT 인수엔 피어슨그룹이 갖고 있던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지분 50%와 런던 본사는 포함되지 않았다. FT 측은 “올해 안에 새로운 본사 건물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닛케이는 FT 인수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도 온라인 미디어 등을 인수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닛케이 스스로 글로벌·디지털 전략을 펴는 것보다 인수합병을 통해 얻는 시너지가 훨씬 크다는 것이다. 닛케이는 FT 인수로 온라인 절대 강자로 떠올랐다.

닛케이의 FT 인수에 대해 이준웅 서울대(언론정보학) 교수는 “언론사가 시장에서 보는 것보다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하는 기업이라는 사실을 보여줬다”며 “FT의 모기업인 피어슨그룹은 광고매출에 연연해 클릭수를 늘이기보다 FT의 품격과 가치를 높여 시장에서 제대로 인정받았다”고 평가했다.

일각에선 워싱턴포스트가 매각 직전 디지털 전략을 강화한다며 말초신경을 건드리는 콘텐트를 대량 생산했다 오히려 값어치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론지의 특성을 활용해 고급 독자와 기업에 초점을 맞춘 FT의 전략이 더 유효했다는 말이다. 임정욱 스타트업 얼라이언스 센터장은 “한국 언론도 세계로 나가야 한다”며 “갈라파고스처럼 세계의 흐름과 단절된 한국 언론은 디지털 마케팅, 뉴스 알고리즘 등을 활용할 줄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닛케이는 실리콘밸리와 링크를 맺어 온라인 기술을 키웠다”며 “한국 언론도 콘텐트건 광고건 글로벌 시장에서 활동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성우 기자 ·조희형 인턴기자 bla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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