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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다가도 모를 재벌가 후계의 법칙] 능력은 기본에 가족관계도 원만해야

온라인 중앙일보 2015.07.26 00:01
[이코노미스트] 재계 5위 롯데그룹의 굳건했던 후계 구도 변화가 감지된 것은 지난해 말에서 올해 초 사이였다. 그동안은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건재한 가운데 그의 장남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일본 롯데를, 차남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한국 롯데를 물려받는 구도였지만 이 불문율이 깨진 것이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지난해 말 일본 롯데 계열사인 롯데상사와 롯데아이스 등의 임원직에서 해임된 데 이어 올 1월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직도 내려놓아야 했다.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서였다. 신동빈 회장은 당시 기자들과 만나 “아버지가 하시는 일이라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형의 해임이 아버지의 뜻이었음을 인정한 셈이다. 이후 신 전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 경쟁에서 동생인 신 회장에게 밀렸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그룹 경영권 승계 경쟁에서 형인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원 안)을 제치고 승자가 됐다. / 사진:중앙포토




신동빈 회장은 결국 형을 제치고 아버지의 최종 선택을 받았다. 신 회장은 7월 15일 열린 일본 롯데홀딩스 정기이사회에서 대표이사로 선임되면서 향후 한국 롯데에 이어 일본 롯데까지 진두지휘하게 됐다. 이는 사실상 신 회장이 롯데그룹의 공식적인 후계자가 됐음을 의미한다.



신 회장은 이날 주요 계열사 사장단회의에서 “이번 이사회 결정을 겸허하고 엄숙하게 받아들인다”며 “총괄회장님의 뜻을 받들어 한국과 일본의 사업을 모두 책임지는 자세로 최선을 다하는 한편, 리더로서 그 책임과 의무를 다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제껏 롯데그룹 측은 후계 구도의 변화 기미에도 “확실히 정해진 것은 없다”며 말을 아꼈지만, 신 회장이 후계자로 낙점 받았음을 이번 이사회 결정으로 국내외 재계에 알렸다.



앞서 재계는 신 전 부회장이 일본에서의 사업 부진으로 신격호 총괄회장의 눈 밖에 났다는 분석을 내놨다. 신 전 부회장이 추진했던 껌 리뉴얼 등의 경영 행보가 탐탁찮은 결과로 이어지면서 껌 사업에 애착이 강한 아버지의 신망을 잃었다는 이야기다. 일본 롯데는 지난해에 껌을 발매한 지 57년 만의 대대적 리뉴얼에 들어갔지만 결과는 시원찮았다. 쓰쿠다 다카유키 일본 롯데홀딩스 사장과 경영 방침을 놓고 대립하다가 해임됐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 사이 신 회장이 한국에서 아버지의 숙원이던 제2롯데월드 사업을 뚝심 있게 밀어붙여 조기 개장을 이뤄낸 것도 신 전 부회장에게는 악재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 언론은 신 전 부회장 해임의 또 한 원인으로 신 총괄회장과의 불화 가능성을 제기했다. 일본 산케이(産經)신문은 올 1월 19일자 기사에서 업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신 총괄회장과 신 전 부회장 간에 재산 문제 등으로 갈등이 있었다’며 ‘신 전 부회장이 신 총괄회장을 소홀하게 대했거나 반항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아버지의 노여움을 샀다’고 보도했다.



신동빈 회장 한·일 롯데 후계자로







신 전 부회장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아버지의 비위를 건드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정황상 여러 방면에서 신 총괄회장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게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신 전 부회장은 아버지가 만든 ‘일본 롯데=장남, 한국 롯데=차남’ 구도에도 아랑곳없이 한국 롯데 계열사의 지분을 사들이면서 동생과의 경영권 승계 경쟁에서 주도권을 잡으려 했다. 신 전 부회장은 2013년 8월에 한국 롯데제과 주식 643주를 사들이면서 자신의 지분율을 기존 3.48%에서 3.52%로 높인 바 있다. 2003년 이후 10년 만의 한국 롯데 계열사 지분 매입이었다. 이후 지난해에도 롯데제과 주식을 연달아 매입, 지분율을 3.96%로 높이면서 동생과의 지분율 격차를 줄였다.



당시 재계는 롯데그룹에 경영권 분쟁 조짐이 일어난 것으로 해석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신 전 부회장이 눈독을 들인 롯데제과는 그룹 내에서 ‘롯데제과→롯데쇼핑→롯데알미늄→롯데제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의 핵심 역할을 하는 계열사다. 이경주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롯데제과는 롯데쇼핑보다 매출과 자산 규모가 작지만 지배구조상 지분 확보가 중요한 계열사”라고 설명했다. 롯데제과 지분을 늘린다는 것은 곧 한국 롯데 모든 계열사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한다는 의미다.



신 총괄회장은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려는 장남의 ‘야심’을 썩 달가워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재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신 총괄회장이 2013년에 고관절 수술을 받으면서 건강이 악화된 사이에 신 전 부회장이 한국에 잘 오지 않고 아버지의 지시도 몇 차례 무시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며 “경영 수완도 좋고 아버지의 지시를 잘 따르는 신동빈 회장이 자연스레 후계자로 결정된 것이 아니겠느냐”고 추측했다.



통상 한국의 재벌가에서 후계자는 장남으로 낙점되는 경우가 많다. 예로부터 장자 승계의 원칙을 중시하는 한국적 정서 때문이다. 이 경우 장남이 아닌 나머지 자녀는 그룹 내 일부 기업의 경영권만 가져가는 경우가 많다. 본지 집계 결과 우리나라 30대 기업 중 오너의 경영권 소유가 확실한 22곳 가운데 7곳은 장남이 창업주로부터 경영권을 물려받았다. 오너가 창업주의 손자나 조카로서 가업을 이었으면서 아버지의 장남인 7곳을 합하면 총 14곳이 장자 승계의 원칙에 충실했다. 오너가 창업주 본인인 3곳을 제외하면 19곳 중 14곳, 즉 74%가 장자에게 경영권을 승계한 것이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자리를 이을 것이 확실시되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이 회장의 장남이라는 점에서 일찌감치 후계자로 낙점을 받았다. 삼성그룹이 지난해 말에 삼성종합화학과 삼성토탈·삼성테크윈(이상 기존 사명)을 비롯한 화학과 방위산업 부문 계열사를 한화그룹에 매각하는 등 사업 재편을 가속화하고 있는 가운데 이 부회장은 전자·금융 등 그룹의 핵심 사업 부문을 물려받는 절차를 밟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등도 집안의 장남으로서 별 어려움 없이 후계자가 된 경우다.



이맹희 전 회장, 장자승계 관행에도 부친 눈 밖에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왼쪽)은 ‘왕자의 난’ 이후 자동차 사업 부문을 승계해 현대차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웠다. 형인 박용현 전 두산그룹 회장의 뒤를 이어 그룹 총수를 맡고 있는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 / 사진:중앙포토




다만, 이번에 롯데그룹 후계자로 차남이 낙점을 받았듯 가문의 장자라고 해서 후계자가 될 것을 낙관할 일은 아니다. 경쟁자가 될 만한 형제가 있다면 치열한 생존경쟁이 불가피하다. 무엇보다 경영 수완 등의 능력을 인정받아야만 한다. 장남이더라도 무능하다면 후계자로 낙점되지 못할 공산이 크다. 여기에 또 하나 중요한 변수가 있다. 그룹 경영의 최종 결정권자인 오너의 비위를 잘 맞추지 못할 경우 언제든 후계 구도에서 밀려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재벌가 자제로서 후계자가 되려면 외적인 능력을 키우는 것 못지않게 아버지 등 가족과의 관계를 원만히 유지하도록 노력하는 일 또한 중요하다는 것이다.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장남인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은 능력 면에서 신임을 얻지 못하고 아버지와 대립하는 등 가족관계에서도 낙제점을 받아 후계 구도에서 밀린 대표적인 예다.



집안의 장남으로 유력한 후계자 후보였던 이 전 회장은 1966년 일명 ‘사카린 밀수사건’ 때 경영 전면에 나섰다. 이병철 창업주가 사건의 책임을 지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언하자 뒤를 이어 삼성의 주요 계열사들을 진두지휘했다. 한때 삼성전자·삼성물산 등 주력 계열사의 부사장·전무·상무 등 17개 직책을 맡기도 했다. 이때 이병철 창업주는 이 전 회장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는 자서전 <호암자전>에서 ‘맹희에게 그룹 일부의 경영을 맡겨보았으나 6개월도 안 돼 그룹 전체가 혼란에 빠졌고 또 본인이 자청해 물러났다’고 적었다. 이어 ‘3남 건희(이건희 회장)가 자질도 있고 기업 경영에 열심히 참여하는 것이 보여 후계자로 정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아버지의 비위를 계속 거스른 것도 결정적이었다. 이 전 회장은 가문의 차남이자 동생인 이창희씨가 청와대에 삼성의 비리를 고발하는 탄원서를 제출했을 때 여기에 연루됐다는 의심을 받으면서 아버지와 사이가 나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이병철 창업주는 1977년 일본 닛케이비즈니스 인터뷰에서 “신문과 방송 쪽 이사직을 맡고 있는 3남 건희를 후계자로 결정했다”고 공식 선언했다. 이 전 회장은 이후 “아버지와 여러 번 대화를 시도했지만 서로 양보하지 않아 끝내 화해하지 못했다”며 “아버지와의 사이에 상당한 틈새가 있었지만 언젠가는 내게 ‘대권’이 주어질 것이라 믿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이병철 창업주의 후계자 선택은 탁월했다. 이건희 회장은 1987년 경영권을 물려받은 이후 삼성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워냈다. 재계 관계자는 “재벌가 자제들은 편하게 입사해 탄탄대로를 걷는 듯 보이지만 이때부터 치열한 경영권 승계 경쟁이 시작된다”며 “강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약육강식의 논리는 기업들뿐 아니라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흔하게 적용된다”고 말했다.



더러는 창업주나 선대회장의 뜻을 거스른 ‘왕자의 난’ 또는 ‘형제의 난’이 일어나기도 한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대표적이다. 정 회장의 아버지인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는 장남인 고 정몽필 회장이 불의의 교통사고로 먼저 세상을 떠나면서 차남인 정 회장과 5남인 고 정몽헌 회장을 놓고 후계자 자리를 저울질했다. 애당초 낙점된 사람은 정몽헌 회장이었지만 정주영 창업주가 와병 중이던 2000년 공동회장직을 놓고 왕자의 난이 일어났다. 정몽구 회장은 아버지의 공백을 틈타 보복성 인사를 단행해 정몽헌 회장의 심복들을 전보(轉補)시키며 포문을 열었다. 두 형제의 이전투구 끝에 정주영 창업주가 계열사 지분 정리와 현대차 지분 매입에 나서게 된다. 이때 현대그룹 삼부자는 정부와 채권단의 지배구조 개선 및 경영진 문책 요구에 모두 임원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정몽구 회장은 현대자동차 등을 중심으로 새 그룹을 꾸려 오늘날 재계 2위 현대차그룹의 수장으로 거듭났다.



두산그룹도 2005년 형제의 난으로 홍역을 치르면서 재벌가의 후계자 선정이 녹록하지 않은 일임을 드러냈다. 두산그룹은 창업 2세인 고 박두병 창업주가 현재 그룹의 모태를 일군 이후 3세대부터 이례적인 형제 경영을 시작했다. 박두병 창업주의 장남인 박용곤 명예회장이 1981년부터 1996년까지 그룹 총수를 역임한 이후 차남인 고 박용오 성지건설 회장이 1997년부터 2004년까지 회장직을 맡았다. 그러나 그는 2005년에 동생인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창업주의 3남)이 그룹 총수로 추대되자 이에 반발, 검찰에 그룹이 경영 과정에서 편법을 써 비자금을 횡령했다는 내용의 진정서를 제출하며 형제의 난을 일으켰다. 형제들은 그를 가문에서 제명했고, 박용오 회장은 2009년 자살했다. 현재 두산그룹 총수는 창업주의 5남인 박용만 회장이다.



왕자의 난·형제의 난으로 얼룩지기도



LG그룹은 1999년부터 LG와 GS, LS, LIG 등으로 계열 분리됐지만 오너 가족 간에 별 잡음이 없었던 사례로 꼽힌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왼쪽)과 허창수 GS그룹 회장. / 사진:중앙포토




이밖에 금호그룹도 고 박인천 창업주 뜻에 따라 형제 경영을 시작했지만 3남인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4남인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 사이에 갈등이 지속되면서 지금은 계열 분리됐다.



이에 반해 LG그룹처럼 모범적인 형제 경영 사례도 있다. LG그룹은 형제와 친인척들이 모두 경영에 참여했지만 LG와 GS, LS, LIG 등으로 나뉘는 계열 분리 과정에서 이렇다 할 잡음이 생기지 않았다. 고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장남인 구자경 명예회장이 지금의 LG그룹을 맡았고 나머지 아들들은 LS그룹을, 창업주의 처가인 허씨 일가는 GS그룹을 각각 맡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창균 기자 lee.changkyun@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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