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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추·넥타이·차키 … “구멍만 있으면 몰카 설치 식은 죽 먹기”

중앙일보 2015.07.25 02:30 종합 15면 지면보기









11세기 중엽 영국 코번트리의 영주 레프릭은 농민들에게 과도한 세금을 부과하며 폭정을 일삼았다. 이를 안타깝게 생각한 영주의 부인 고다이바(Godiva)는 남편에게서 ‘나체로 말을 타고 저잣거리를 한 바퀴 돌면 주민들의 세금을 낮춰 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내 바로 실행에 옮겼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거리로 나선 고다이바 부인을 주민들 중 그 누구도 쳐다보지 않았다. 그것은 ‘존경의 표시’였다. 오직 재단사 톰(Tom)만이 욕구를 참지 못하고 부인의 ‘알몸 순례’를 몰래 훔쳐봤다. 관음증 환자를 뜻하는 영어 ‘피핑 톰(Peeping Tom)’의 유래는 이렇게 시작된다.

 어느 시대에나 ‘톰’은 존재했다. 그런데 요즘 톰들은 이전의 톰과는 또 다르다. 최첨단 정보기술(IT) 기기들로 무장해 몰래 타인의 사생활을 엿보고 이를 온라인에 공유까지 한다. 갈수록 진화하는 ‘최첨단 관음증’ 몰래카메라 얘기다.


김성훈 인턴기자가 착용해 본 몰래카메라. 카메라 8개가 숨겨져 있다. 이 차림으로 거리에 나섰지만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한 남성이 셔츠 단추를 여민다. 셔츠 앞 포켓에는 언제 쓸지 모르는 볼펜을 꽂아뒀다. 거울을 쓱 한번 보더니 넥타이를 다듬어 맨다. 거울 속에 비친 남성의 검정 안경테가 반짝인다. 왠지 허전한 왼쪽 손목에 메탈 시계를 차고 그가 차키를 집어 들었다. 지금 이 남성의 몸에는 ‘패션 소품’을 가장한 초소형 카메라가 6개 달려 있다.

 지난 21일 서울 용산전자상가를 돌아봤다. 상점에 들러 몰래카메라를 찾고 있다고 말하니 업자는 물건들을 주섬주섬 꺼내 보여주기 시작했다. 넥타이·단추·차키·안경·시계 등 온갖 모양의 ‘몰카’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가격대는 대부분 20만~40만원 선. 망설이는 기색을 보이자 업자가 서둘러 말을 건넨다. “요새 물건들이 다 잘 나와. 저렴하게 해줄 테니 하나 장만해요.”

 서울 문정동에서 7년째 카메라·녹음기 등을 판매 중인 장성철 오토정보통신 대표는 “신제품이 계속 나오다 보니 아주 기발한 몰카가 등장해도 6개월만 지나면 구형이 된다” 고 말했다. 그가 갖고 있는 몰카 중 하나를 시연해 보니 얼굴의 잡티까지 잡아낼 정도로 화질이 선명했다.

 용도는 다양하다. 법원에 제출할 ‘증거’용으로, 사업 계약 시 ‘번복 불가’용으로, 불법을 잡아내는 ‘파파라치’용으로, 상점에서는 ‘도난 방지’용으로. 그리고 요즘처럼 노출이 많아지는 계절에는 ‘음란용’으로도 빈번하게 사용된다. 카메라 기술이 발전하다 보니 관련 범죄 건수는 해마다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2009년 807건이었던 몰카 관련 범죄는 지난해 6623건으로 8배 증가했다. 파일공유(P2P) 사이트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몰카 사진이나 영상들이 무분별하게 떠돌아다닌다. 한 카메라 판매업자는 “요즘엔 온라인으로 구매하는 사람이 많은데, 수취인 이름이나 용도는 다 비밀로 해서 보낸다”며 “그들이 어떤 의도로 카메라를 구입하는지는 우리도 알 수 없다”고 밝혔다.

 올해만 해도 각종 몰카 범죄가 끊임없이 매스미디어에 오르내리고 있다. 지난 3일 홍익대 여자 화장실에서는 스위치형 몰래카메라가 발견됐고, 15일에는 여대생 자취방에 몰카를 설치한 남성이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올 5월에는 지하철역에서 여성의 치마 속을 몰래 촬영한 혐의로 대형 교회 목사가 입건된 일도 있었다.

 길거리에서 몰래카메라를 사용했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를 눈치챌 수 있을까. 본지는 시중에서 파는 몰래카메라 몇 대를 구해 작은 실험을 해봤다. 기자의 몸 구석구석에 넥타이·시계·안경 등 몰카를 설치하고 길에서 불특정 다수에게 질문을 던졌다. 물론 카메라는 모두 끈 상태였다. 먼저 ‘특정 건물을 찾고 있는데 어떻게 가야 하나’ 등 단순한 질문을 던지고 몇 마디 대화를 나눴다. 대화 말미에 기자의 몸에 카메라가 있음을 밝혔다. 길에서 만난 20여 명의 시민 중 아무도 기자가 밝히기 전 몰카가 있다는 걸 알아채지 못했다. 뒤늦게 사정을 알고 나서야 셔츠 포켓에 부자연스럽게 꽂아둔 볼펜, 기자 팔목에 비해 지나치게 큰 시계 몰카 등을 찾아냈 다. 실험에 참여한 직장인 박세리(28·여)씨는 “처음 길을 물었을 때 전혀 짐작도 하지 못했다”며 “카메라가 너무 교묘하게 감춰져 있어 무서울 정도”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는 ‘몰카주의보’가 돌고 있다. 지난 6월에는 한 트위터리안이 ‘공중화장실 문이나 벽에 나사가 보일 때 일단 옷 내리기 전에 의심하고 이단은 팍 뽀개기’라는 글과 함께 나사 모양으로 생긴 카메라 사진을 올려 논란이 됐다. 확인 결과 이 몰카 역시 상점에서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다. 업계 관계자는 “어느 물건이든 작은 구멍만 확보되면 나사못·옷걸이·거울 등 모양과 상관없이 몰카를 설치하는 건 ‘누워서 떡 먹기’”라 고 말했다.

 경찰도 수사에 도움을 받기 위해 종종 업자들을 찾는다. 장성철 대표는 “인근 경찰서에서 찾아와 범죄 현장에서 발견된 몰카의 실행 방법을 묻거나, 요샌 어떤 제품들이 나오는지 살펴본다”고 말했다. 때로는 몰카가 설치된 것으로 의심되는 장소에서 수사팀을 도와 몰카를 찾아주기도 한다. 장 대표는 “얼마 전에는 한 모텔에 단골로 찾아오던 남성이 설치한 몰카를 발견한 적도 있다”고 귀띔했다.

 창이 있으면 방패도 있어야 하는 법. 숨겨놓은 카메라를 찾는 휴대용 몰카 탐지기도 있다. 대부분 적외선으로 카메라 렌즈를 찾거나 무선 전파를 감지하는 방식이다. 통신보안업체 금성시큐리티 남형종 이사는 “ 카메라의 열을 잡는 열화상장비, 회로를 찾는 반도체 탐지기 등도 있다”며 “ 규모가 큰 숙박업소나 빌딩들은 업체에 의뢰해 정기 점검을 받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 모든 기술을 사용했을 때 잡아낼 수 있는 몰카는 99.99%라고 했다. 하지만 개인이 사용하기엔 가격 대비 효율이 현저히 떨어진다. 서울 강남에서 카메라 등 전자기기를 판매하는 상인 김모씨는 “값싼 휴대용 탐지기로는 갈수록 진화하는 몰카를 잡아내기 쉽지 않다”며 “40만~50만원 정도는 줘야 그나마 효용성 있는 탐지기를 구할 수 있는데 누가 그 가격을 주고 탐지기를 사겠느냐”고 반문했다.

 누군가를 은밀히 들여다보고 싶어 하는 감정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문제는 그 욕구가 정상적인 단계를 넘어 병(病)적인 단계가 됐을 때다. 몰카 범죄가 계속 늘어나는 원인은 이 비정상적인 욕구를 풀 수 있는 방법이 갈수록 많아져서다. 이나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과거 문풍지를 뚫고 신방을 훔쳐보던 옛 선조들의 모습도 관음증의 한 예”라며 “현대에는 그 호기심이 기술 발달과 결합해 범죄로 전락하는 사례가 많다”고 분석했다.

 현행법으로는 몰카 등으로 다른 사람의 신체를 그 의사에 반해 촬영했을 때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릴 수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 범죄를 포착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동국대 최응렬(경찰행정학) 교수는 “단순히 처벌의 강도를 높이는 건 큰 의미가 없다”며 “뒤늦게라도 신고가 들어왔을 때 경찰이 철저히 수사해 ‘몰카를 찍으면 무조건 처벌받는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 옛날 훔쳐보던 톰은 결국 어떻게 됐을까. 부인의 몸을 본 순간 신의 벌을 받아 눈이 멀고 말았다.

글=홍상지 기자, 김성훈·황수현 인턴기자hongsam@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 BOX] 해킹 통한 ‘사이버 몰카’도

2년 전 영국 사회는 ‘사이버 몰카’ 공포로 발칵 뒤집혔다. 다른 사람의 노트북에 악성 프로그램(맬웨어)을 몰래 깔아 노트북 웹캠이 보여주는 화면을 은밀히 지켜봤던 사건이었다. 당시 BBC 라디오에서는 목욕 중 노트북으로 DVD를 보다 웹캠이 켜져 피해자가 됐다는 한 여성의 증언이 나왔다.

 그리고 지금, 한국 사회도 ‘사이버 몰카’ 공포에 휩싸였다. 국정원이 이탈리아 보안업체로부터 구입했다는 해킹 프로그램 ‘RCS(Remote Control System)’는 기기에 접근해 주요 문서·e메일은 물론 웹캠과 마이크 기능을 모두 활성화할 수 있다. 아직 피해 사례는 접수되지 않았지만 지난 16일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이 프로그램을 스마트폰에 깔아 직접 시연해 보니 정말 가능한 일이었다.

 보안업계는 ‘이 정도 기술은 업자라면 다 알고 있는 내용인데 이제야 터졌다’는 반응이다. 한 보안업체 관계자는 “예전에도 사설 심부름센터에 의뢰하면 원하는 사람의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에 해킹 프로그램을 쉽게 깔 수 있었다” 고 말했다.

 이런 ‘사이버 몰카’를 방지하려면 악성 프로그램이 설치될 수 있는 루트를 원천 차단하는 수밖에 없다. 알 수 없는 출처의 링크나 파일 등은 열지 말고 안티스파이웨어 등 백신 프로그램을 깔아 수시로 업데이트해 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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