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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2035] 한 달짜리 오로라 여행 꿈꾸는 간 큰 직장인

중앙일보 2015.07.24 00:03 종합 28면 지면보기
이 현
JTBC 국제부
6박7일. 평범한 대한민국 직장인이라면 열에 아홉은 휴가 기간이 6박7일이다. 매일 뉴스를 만들어 내보내는 방송국 기자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수년 전부터 뜨거운 차 한 잔을 손에 들고 오로라를 바라보는 내 모습을 꿈꿔왔다. 캐나다 북부 옐로나이프로 목적지를 정하고 휴가 때마다 궁리를 해봤다. 캐나다까지 오고 가는 게 2일, 몇 개 도시를 거쳐 마을을 드나드는 데 2~3일은 걸리니까 오로라를 즐길 시간은 겨우 하루 이틀밖에 안 남는다. 그것도 환승편이 원하는 요일에 딱 맞게 있고, ‘캐나다까지 갔는데 밴쿠버는 돌아봐야지’라는 욕심은 깨끗이 접어야만 가능한 일정이다. 비행기 값만 200만원인데 1박2일 오로라 구경만 하고 오는 여행은 차마 지를 수가 없었다.

 일할 때도 부지런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휴가지에서도 민박집 주인보다 부지런히 움직인다. 동트자마자 일어나 관광 명소를 홍길동처럼 돌아다닌다. 그렇게 2~3일 만에 여행지를 속성으로 둘러본 뒤 황급히 짐을 싸서 또 다른 지역으로 숙소를 옮긴다. 크게 마음먹고 비행기 타고 왔는데, 한곳에만 머물기는 너무 아까운 마음이다. 숙소에서 만난 외국인들 눈에는 어제 와서 인사를 나눴는데 내일 아침 떠난다는 내가 희한했는지 “휴가가 며칠이기에 벌써 떠나느냐” 묻는다. 일주일이라고 답하면 깜짝 놀란다. 며칠 전 읽은 미국 월스트리트저널 기사는 핀란드 정신분석학자의 연구 결과를 인용해 “휴가의 긍정적인 효과가 8일째에 최고조”라며 짧게 여러 번 휴가를 가라고 조언하고 있었다. 짧은 열흘짜리 휴가 여러 번이라니….

 1년 365일 중에 15일 연차도 다 못 쓸 만큼 내가 회사의 핵심 인력인 걸까. 미국에 사는 친구 동생이 여름휴가로 한국에 나왔다. 한 달이나 머문다는 이야기에 친구도 나도 ‘모든 직원이 저렇게 휴가를 다니면 업무가 마비되지는 않나’ 걱정이 됐지만 회사는 동생의 휴가 신청에 어떤 제동도 걸지 않았다. 하긴, 국제부에서 근무하면서도 직원들이 휴가를 너무 오래 간 탓에 회사가 망했다는 뉴스는 들어본 적이 없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시절 입사한 선배들은 못 쓰고 버리는 연차만 한 달에 육박한다. 여름휴가를 앞두고 한 선배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보려 했다. 슬그머니 윗분께 “우리는 휴가를 2주 붙여서 가면 안 되느냐” 물었는데 단호하게 “안 된다”는 답이 되돌아왔다. 그리고 또 우리는 스스로를 납득시킨다. ‘그래 내가 없으면 동료들이 힘들지…’.

 그래도 나는 여전히 북쪽 하늘의 오로라를 꿈꾼다. 내가 관절염에 백기를 든 호호(皓皓) 할머니가 되기 전에 “휴가는 당연히 2주 이상 가는 거 아니야?”하는 시대가 오길 바란다. 토요일 아침, 당연히 출근 준비를 하던 우리 부모님들이 이제는 주말 여행에 익숙해졌듯이 말이다.

이현 JTBC 국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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