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읽기] ‘혼자 있게 내버려 둬 달라’는 북한

중앙일보 2015.07.24 00:03 종합 28면 지면보기
[일러스트=김회룡]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
북한은 지난 19일 한국의 서울안보대화 초청을 “유치하다”고 폄하하며 거절했다. 동시에 정의화 국회의장이 제안한 8·15 광복 기념 남북의장회담도 거부했다.



 “미국의 ‘전략적 인내’ 정책은 북한과 대화하지 않는 것이냐”고 버락 오바마 행정부 관리에게 묻는다면 “미국이 대화할 의지가 없는 게 문제는 아니다”란 대답이 돌아올 것이다. 1·2기의 오바마 행정부는 6자회담에서 비밀 방북까지 북·미 대화를 개시하기 위해 시도하지 않은 채널이 없다. 모두 거절한 것은 평양 정권이다.



 북한을 대화 테이블에 앉히려는 중국의 노력도 모두 헛수고로 끝났다. 고위급 특사를 보내려 했으나 평양이 막았다. 지난 5월 러시아의 전승기념일 행사에 김정은이 갈 것처럼 보였다. 러시아만 좀 진전을 이루는가 싶었지만 김정은은 마지막 순간에 러시아 방문을 철회했다.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납치자 조사 재개를 위한 새로운 기회를 북한에 줬으나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21일 평양은 최근 타결된 이란 핵 협상같이 “일방적인 핵 동결이나 핵 포기를 강요하는 어떤 대화에도 관심이 없다”는 뜻을 밝혔다. “우리의 핵 억제력은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을 흥정물이 아니다”고도 했다. 북한과 이란은 비교할 수 없으며 북한은 비핵화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대화를 거부하고 있는 북한은 동시에 상당히 잠잠하다. 예상과 달리 지난해부터 북한은 대대적인 탄도미사일 실험이나 핵 실험을 하지 않았다. 2010년 천안함 침몰이나 연평도 포격 이후에는 대규모 도발을 감행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지금 북한은 도발 주기(週期)에도 외교 주기에도 속하지 않는다. 북한의 맹렬한 수사 속에는 대화를 향한 욕구도 공격의 전조(前兆)도 담겨 있지 않다.



 평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해 몇 가지 ‘이론’이나 설명이 가능하다.



 한 가지 가능성은 오바마 정부, 박근혜 정부에 대한 북한의 판단과 관련 있다. 한·미 양국 정부 모두 다른 문제에 몰두하고 있다. 게다가 평양의 과거 체험에 따르면 양국 정부의 전임자와 어떤 타결에 도달할 수는 있지만 후임자가 타결을 무효화한다. 오바마 대통령이나 박 대통령이나 새로운 임기가 없다. 어쩌면 북한은 이란의 경우에도 차기 미 행정부가 협상을 원점으로 돌려놓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두 번째 이론은 김정은에게 국내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최근의 인민무력부장 숙청을 포함해 그는 집권 후 90여 명의 고위층 인사를 처형했다. 숙청은 북한에서 새로울 게 없다. 하지만 거의 집권한 지 4년이 지났는데도 숙청이 너무 잦다. 게다가 숙청 대상은 최측근 그룹에 속한다. 아직도 내부적으로 상당한 어려움이 남아 있음을 시사한다. 군과 당 사이에 문제가 있거나 노동당 조직 지도부와 김정은 일가 사이에 갈등이 있는지도 모른다. 북한 체제 내부에서 발생한 문제는 북한의 국제관계 행태에 영향을 미친다.



  세 번째 설명은 북한의 내부 취약성이 아니라 오히려 내부 안정을 지목한다. 미국이 이란·쿠바·이슬람국가(IS)와 국내 문제 때문에, 대한민국이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수습과 경제 회복 때문에 겨를이 없는 틈을 타 북한이 조용히 체계적으로 능력 신장을 꾀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미국과 유엔은 북한이 새로운 도발을 감행하면 새로운 경제 제재를 가하겠다는 의향을 북한에 명백하게 전달했다. 그러니 새로운 도발은 별로 북한에 유리할 게 없다.



 한편 평양이 외교로부터 어떤 이득을 얻을 수 있는지 그 누구도 명백하게 말하지 않았다. 그래서 북한은 탄두 소형화, 우라늄 기반 핵무기 제조, 사이버 능력 제고, 미사일 개발 등에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런 배경에서 최근 스콧 스위프트 미군 태평양함대사령관이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연에 대해 한 말은 옳다. 지난 5월의 시험 발사가 진짜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위협적이다. 북한의 비대칭 능력이 답보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외교와 도발 사이의 막간을 이용해 북한은 현대화된 첨단 핵 능력을 확보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네 번째 설명은 북한이 내부 균열 해결이 아니라 내부 경제 개혁과 재건에 힘을 쏟고 있다고 주장한다. 김정은이 호화 스키장과 워터파크를 건설하는 가운데 농업 분야에 개인 인센티브를 도입하고 있다는 징후들이 조금씩 보인다는 것이다. 이는 북한의 개혁 의도를 반영하는 것일 수 있다. 북한이 지금과 같은 은둔자 태도에서 벗어나 궁극적으로는 외부 세계와 상호작용을 늘려 나갈 것이라고 전망하는 주장이다.



 물론 우리는 이들 설명 중 어느 게 옳은지 알 수 없다. 이들 설명을 모두 조합하면 어떤 답이 나올지 모른다. 북한은 당과 군과 김씨 일가의 기념일을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북한의 현 상황에 대한 통찰을 얻으려면 다가올 2개의 기념일을 주시해야 한다. 8월 15일 광복절과 10월 10일 노동당 창당 70주년 기념일이다.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