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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부 24시] '3000억 원짜리 사인'의 속사정

중앙일보 2015.07.23 15:29
김나한 기자
“3000억 원짜리 사인입니다!” 지난 21일 오전 11시 서울시청 기자실 브리핑룸. 박원순 서울시장과 유덕렬 자치구협의회장이 합의문에 서명하려는 순간 누군가 외쳤다. 박 시장과 유 회장이 깜짝 놀라 고개를 들자 브리핑룸이 웃음바다가 됐다.



이날 서울시와 서울 25개 자치구가 ‘서울시 자치분권 실천을 위한 약속’ 기자설명회를 열었다. 이 합의로 서울시는 자치구의 기준재정수요충족도를 현재 97.1%에서 100%까지 채워준다. 기준재정수요충족도는 자치구가 자치구 예산만으로 자치행정을 몇 퍼센트나 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비율이다. 100%를 맞추기 위해 서울시는 내년 자치구별 평균 119억원 총 2862억 원의 재정교부금을 추가 지원한다. ‘3000억 사인’은 여기서 나온 말이다.



하지만 좋은 분위기는 여기서 끝났다. 이날 설명회에 불참한 강남구는 설명회 직후 서울시 기자단에게 ‘서울시의 허울 뿐인 자치분권 실천약속에 동참 거부!’라는 이메일을 보냈다. 서울시의 자치분권 실천약속에는 자치구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내용이 다 빠졌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면서 실질적인 자치분권을 위해 시세목으로 돼 있는 자동차세와 주민세 등 2개 세목을 자치구세목으로 바꿔달라고 요구했다.



우선 서울시의 이번 실천약속이 자치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강남구의 주장은 틀리다. 올해 서울 25개 자치구의 재정자립도는 평균 31.5%다. 기준재정수요충족도도 평균 66.7%에 불과하다. 기준재정수요충족도를 100%로 채워준다는 서울시의 약속은 대다수 자치구의 살림살이에 큰 도움이 된다.



강남구가 이번 정책에서 홀로 소외된 것은 맞다. 강남구의 기준재정수요충족도는 이미 150%다. 100%를 이미 넘어서니 100%를 맞춰주기 위한 조정교부금도 못 받은지 오래다. 즉 강남구는 이번 서울시의 조정교부금 인상 혜택과도 상관이 없다. 이런데다 원래 요구했던 세목 이전도 반영되지 않으니 강남구 입장에서는 서울시의 기자설명회가 '허울'로 보인 것이다. 서울시의 반응은 담담했다. 시 관계자는 강남구의 불만에 대해 "원래 자치구의 살림살이를 평균수준으로 맞추기 위한 것이 조정교부금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강남구의 항의와 서울시의 무대응. 이번 기자설명회와 이메일 사건은 최근 강남구와 서울시 사이에 반복적으로 벌어지는 일의 한 단면이다. 강남구는 서울시로부터 역차별을 받는다는 인식이 강하다. 지난 해 구룡마을 개발 건부터 최근 한전부지 공공기여금 문제까지 서울시가 잘 사는 강남구에만 불리한 결정을 한다고 여긴다.



서울시는 강남구의 이런 항의에 특별한 반응을 보이거나 설득의 노력을 하지 않는다. 이에 강남구와 서울시의 갈등의 골도 점점 깊어지고 있다. 박 시장과 자치구청장 간 회의에 신연희 강남구청장이 오지 않는 건 이미 서울시 출입 기자단 사이에 공공연한 사실이다.



시와 자치구 갈등의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이 입는다. 시 정책의 효과가 시민에게 정확히 가 닿게 하려면 자치구와의 협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난 6월 메르스 사태가 한창일 때 서울시가 큰 대책을 발표하면 각 자치구 보건소들이 발로 뛰었던 것이 이를 보여준다. 서울시가 강남구와의 갈등에서 보다 적극적인 설득의 노력을 보이지 않는 것이 아쉬운 이유다.



김나한 기자 kim.na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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