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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독서 많이, 빨리” 엄마가 재촉하면 책이 싫어져요

중앙일보 2015.07.23 00:33 종합 22면 지면보기
아이들은 책을 읽다 집중하지 못하고 게임기를 만지작거린다. [오종택 기자]


주부 김모(40·여·서울 송파구)씨는 초등 3학년 아들이 책을 잘 읽지 않으려 해 고민이다. 책을 쥐여줘도 아들은 읽다 말고 금세 딴짓이다. 김씨는 “다른 집 아이들에 비해 우리 애가 책을 적게 보는 것 같아 방학 동안 최소 다섯 권이라도 읽히려는데 제대로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꿈꾸는 목요일] 아이들 방학 독서, 이건 안 돼요



 양모(46·여·경기도 용인 수지구)씨는 아이가 너무 어려운 책을 읽으려 해서 걱정이다. 초등 4학년 딸이 자기보다 여섯 살 많은 언니가 읽는 책만 따라 읽으려 한다. 둘째가 『데미안』을 읽고 있는 것을 보고 ‘독서 영재가 아닌가’ 하고 기특해한 적도 있다. 하지만 “무슨 내용이냐”는 물음에 딸은 “나도 언니랑 똑같은 책 읽을 수 있어”라며 엉뚱한 답을 했다. 양씨는 “독서습관이 잘못된 건 아닌지 모르겠다”고 난감해했다.



 논술과 논리적 사고력이 강조되면서 독서교육이 꾸준한 인기다. 방학을 앞둔 학부모들은 ‘최소 몇 권은 꼭 읽히겠다’고 목표를 정한다. ‘무엇을’ 그리고 ‘어떻게’ 읽혀야 할지가 문제다. 전문가들은 “다독(多讀)과 속독(速讀)의 함정에 빠지지 말라”고 입을 모은다. 독서량에 집착해 자녀에게 책읽기를 강요하면 자녀가 독서에 부정적 인식을 갖게 될 우려가 크다. 『독서교육, 어떻게 할까』의 저자 김은하씨는 “청소년기와 성인기 사이 독서율 차이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한국이 가장 크다”며 “독서교육에선 글과 말에 대한 긍정적인 경험을 갖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책은 어떻게 고르는 게 좋을까. 김씨는 ‘다섯 손가락 기법’을 추천한다.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자녀가 책을 집어오면 아무 페이지나 펼쳐 거기에서 자녀가 이해하지 못하는 어휘가 몇 개인지 세본다. 한 개 이하면 아이에게 쉬운 ‘간식책’, 2~3개면 아이 수준보다 다소 높은 ‘밥책’, 4개 이상이라면 읽기 쉽지 않은 ‘보약책’이라 할 수 있다. 김씨는 “간식책은 자녀 스스로 읽게 하고, 밥책 이상은 초등 고학년이라도 부모가 읽어주는 게 좋다”고 알려줬다.



 자녀가 독서를 자연스럽고 재미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게 중요하다. 서울 숭인초는 6학년이 1학년에게 책을 읽어주게 한다. 6학년은 보다 의젓해지고 1학년은 선배를 책 도우미로 만나 책과 친해진다. 독서캠프를 열어 가족 모두가 책 읽기에 참여하게도 한다. 이 학교 이소정 교사는 “독서가 곧 놀이라는 인식을 갖게끔 유도한다. 책을 강요하는 순간 아이들은 책을 재미없어 한다”고 말했다.



 집 안 곳곳에 책바구니를 두고 ‘부모가 책을 언제든지 읽어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아이에게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책읽는사회문화재단 이경근 총괄실장은 “어린이 독서교육은 읽어주기로 시작된다”며 “책을 읽어주면 아이는 부모가 자신을 예뻐한다고 느끼며 읽는 즐거움을 깨닫게 된다”고 분석했다.



 ‘필독서의 함정’도 주의해야 한다. 정은주 한우리열린교육 연구소장은 “학년별 필독서보다는 자녀의 독서 수준에 맞는 책을 골라주는 게 맞다”며 “책을 안 읽던 고학년 아이가 흥미를 느낀다면 저학년 수준의 책을 읽게 하고 칭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자녀 독서 습관 이렇게 지도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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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아이들이 의외로 많다. 자녀가 독서 편향아·불안정아·조숙아·과다아에 해당하는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특정 분야 책만 읽으면 독서 편향아에 해당한다. 김모(12·서울시 노원구)군은 역사에 푹 빠져 임진왜란 등을 다룬 역사책을 특히 좋아한다. 반면 과학이나 일반사회 분야엔 조금도 흥미가 없다. 김군에겐 비슷하거나 연관된 분야의 책으로 흥미를 유도하고, 생소한 분야라면 드라마나 영화 등으로 먼저 접하게 하는 게 좋다. ‘거북선이 물에 뜨는 원리를 알아보자’며 과학 분야의 책이나 영화를 보여주는 식이다.



 책 한 권을 끝까지 읽지 못한다면 독서 불안정이라 할 수 있다. 독서 불안정아에겐 부모가 책을 읽어줘 독해의 부담을 줄여 책에 집중할 수 있게 도와주면 된다. 책을 끝까지 다 읽으면 칭찬 스티커를 붙여줘 성취감을 높여준다. 수준 높은 책만 읽으려는 독서 조숙아에 대해선 책 내용을 이해하는지 부모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주제 문장을 찾거나 감명 깊은 문장을 필기하면서 자녀가 생각을 표현하게 하면 이해 여부를 알 수 있다.



 책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많이 읽는 것에만 만족한다면 의미 구성은 못하고 글자만 줄줄 읽는 ‘페이크 리더’(fake reader)일 가능성이 크다. 이런 아이에게 책 한 권을 다 읽고서 책 내용을 놓고 토론하거나 그림을 그려보게 하는 통합 활동을 권할 만하다. 좋은 문장은 밑줄을 긋고 그 옆에 자기 생각을 적어가며 여유롭게 읽게 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경근 총괄실장은 “‘책을 많이 읽으면 아이가 똑똑해진다’는 생각에 부모가 ‘책=공부’ 식으로 접근하면 아이는 책이 싫어진다”며 “부모 스스로 책 자체의 즐거움을 깨닫고 이를 자녀들과 나누는 게 바람직하다”고 전했다.



글=노진호 기자 yesno@joongang.co.kr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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